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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재 Aug 11. 2022

쌀을 옮기려다

결혼 초에 있었던 일이다.

   

한참 수업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여보, 택배 왔어요. 어머님이 쌀 보내주셨네.”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알았어, 조금 있다 내가 작은 방에 옮겨 둘테니까 그냥 놔둬.” 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정리를 마치고 문 앞에 놓인 쌀 포대를 들기 위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20Kg짜리 쌀 포대가 묵직하게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평소 힘쓰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몸이 많이 마른 편이다 보니 주변에서 ‘힘이나 제대로 쓰겠어.’ 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실제로 힘쓸 일이 있으면 머뭇거리며 주저하곤 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자존심의 극복을 위해 꾸준히 등산도 다니고 헬스장에 등록해 운동도 하며 힘을 키웠다. 

   

몸에 힘이 붙고 자신감도 생기면서 점점 힘쓰는 일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뭐 이정도 쯤이야.’ 하며 쉽게 덤벼들곤 했다. 특히나 아내 앞에서는 더 능력 있는 모습으로 각인되고 싶었다. 

   

쌀을 옮기러 가는 나를 따라온 아내는 “무거울 텐데. 나랑 같이 들어.” 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걱정마! 이 정도는 일도 아니야.” 하며 끈으로 꽁꽁 묶여진 쌀 포대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여느 때처럼 쌀을 들어 올리는데 순간 허리가 섬찟한 느낌이 전해지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데 허리에 통증이 몰려들었다. 아내의 부축을 받아 겨우 일어서기는 했는데 허리가 펴지지 않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급하게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그 날 이후, 2주를 넘게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오가며 치료를 받아야했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수발하는 건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다. 모처럼의 방학도 병치료와 회복으로 끝을 맺었다.

   

예전 어머니가 별것 아닌 일을 시키면 나는 입버릇처럼 “걱정 마세요. 이런 건 일도 아니예요.” 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교만 부리지 말고 천천히 조심해서 해.” 하시며 경계의 말을 잊지 않으셨다. 왜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뒤늦게 그런 경계의 말이 떠오르는 것인지...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마속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아주 뛰어난 기량을 가진 인물로 제갈량이 자신의 뒤를 맡길 사람으로 점찍을 만큼 높이 평가를 했다. 제갈량이 누구인가. 유비를 도와 수많은 전투에서 귀신같은 지략을 발휘해 승리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가 없었다면 유비가 촉나라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제갈량에게 인정을 받은 인물이니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한번은 제갈량이 조조의 위나라를 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북벌을 계획한다. 마속은 이 때 앞장 서 중책을 자원하고 나선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의 대가인 사마의인지라 제갈량은 허락을 하지 않는다. 마속은 다년간 병법을 익혀온 자신을 믿어달라며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다. 결국, 제갈량은 허락을 하면서 대신 함부로 군대를 움직이지 말고 지시한 대로만 행할 것을 거듭 당부한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마속은 제갈량의 명을 어기고 군대를 마음대로 움직였다가 위나라 군대에게 대패를 하고 돌아온다. 이로 인해 촉나라는 모든 군대를 후퇴시킨다.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긴 것을 후회한다. 

   

평소 제갈량은 마속의 형인 마량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어 마속을 마치 친동생처럼 아꼈다. 하지만 끝내 자신의 명을 어기고 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마속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일벌백계를 위해 마속의 목을 벤다. 그 유명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들의 흔한 오판이 바로 남들은 나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장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보라. 토끼는 자신의 잘 달리는 재주를 믿고 여유를 부리다 경주에 지고 만다. 만약 중간에 자고 있던 토끼에게 지나가던 여우가 “야! 너 그렇게 늦장 부리다 거북이한테 진다.” 라고 하면, 토끼는 분명 “걱정마, 지가 뛰어봤자 벼룩이지, 날 어떻게 이겨.”라고 답했을 것이다. 

   

남의 충고도 무시하게 만들고, 자신의 역량도 조장(助長)시켜 버리는 심리의 기저가 바로 교만과 인색이다. 능력이 나를 찌르는 무기가 되어 돌아오는데도 나만 잘났다 생각하고(교만) 남의 말을 듣지 않는(인색) 태도를 고수한다. 그러면 내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관심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도 차단이 되는 것이다. 

   

남보다 높은 지위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독단과 아집에 갇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꽉 채운 채 비울 줄을 모르니 타협이 될 리 없고, 타협이 되지 않으니 하나 둘씩 등을 돌리는 것이다. 이러다 보면 고립을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겠는가. 

   

교만과의 단절은 오래되어 구태한 낡은 공식이 아니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더 높이 날아오르면 오를수록 추락은 이미 예견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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