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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재 Apr 06. 2022

맹지반의 겸손

                            사진=pixabay


옛날 중국 노나라에 맹지반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한번은 노나라 군대가 제나라 군대를 공격했다. 맹지반은 가장 선두에 서서 적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노나라 군은 패해서 후퇴를 하게 되었다. 이 때 맹지반이 맨 후미에 섰다. 만약에 뒤따라올지도 모르는 적을 막아 아군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날아드는 화살에 자칫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자리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결국 패배한 군대의 일원이라는 비난을 뒤집어쓰는 것 외에는 돌아올 것이 없었다.

   

마침내 노나라 군대가 무사히 빠져나와 성문으로 들어왔다. 그 때 맹지반은 말에게 채찍을 가해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면서 ‘이놈의 말이 느려서 어쩔 수 없이 뒤로 쳐져 버렸네’라고 했다.  

   

누군가의 인정도 솔깃한 박수소리도 없지만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서 생색을 내지 않는 건 더더욱 어렵다. 용기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겸손이라 말한다.

   

겸손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고들 한다.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PR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훌륭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자기 PR이다. 동시에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를 보다 가깝게 해서 함께 공생하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것이 단시간에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적절한 전술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때문에 자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조그만 것도 크게 부풀려야만 인정을 받고 성공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묵묵히 내실을 다지며 때를 기다리는 이들은 오히려 흐름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되어지곤 한다.

   

자신을 크게 드러내려다 보니 자연히 다른 사람의 능력에 흠집을 내고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겨난다. 상대방을 비판하여 발전된 방향을 모색한다는 미명하에 교묘한 비난을 뱉어내는 사람들의 행태는 자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적어도 나의 PR을 위해서 남에게 해를 입히는 건 멈춰야 하지 않을까.

   

야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LA다저스라는 팀이 있다. 우리나라의 류현진 선수가 뛰었던 팀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 팀에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로 일컬어지는 커쇼라는 선수가 있다. 실력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선수로 이 선수가 나가는 날은 승리라는 공식이 성립 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데, 야구는 투수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닌지라 아무리 잘 던져도 동료 타자들이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커쇼는 빈곤한 타자들 덕분에 쉽게 승리를 챙길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내가 좀 더 잘 던지지 못해서 미안하지 타자들의 탓이 아니다’라며 동료들을 다독였다.

   

또한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팀을 이끌자 류현진의 투구를 보며 오히려 배우는 점이 많고,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 자신이 미안하다라는 이야기를 해 사람들을 훈훈하게 했다. 팀의 가장 뛰어난 선수가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은 팀을 더 똘똘 뭉치게 해주는 역할을 했고, LA다저스가 부진을 털고 리그 우승을 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된다.

   

겸손은 모든 것을 다 내가 하겠다는 무조건의 헌신과는 다르다. 모든 것을 다 받지 않겠다는 무조건의 사양과도 다르다. 적어도 내 자리에 최선을 다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나눌 것은 함께 나누면서 함께 가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의 미덕이 아닐까.

   

앞서 얘기한 맹지반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의 행동은 수많은 군사를 거느린 장수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자세였다. 거창하게 내가 군사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영웅의 심리가 발동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 충실하고 그것을 내세우지 않은 맹지반의 모습, 거기에서 맹지반의 겸손은 빛을 발하는 것이다.


※ 참고 : 맹지반의 이야기는 《논어》<옹야> 편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자랑하지 않았다. 싸움에 져 달아날 때 맨 뒤에 있었는데, 성문에 들어설 즈음에 그의 말을 채찍질 하며 말하기를 ‘감히 뒤에 있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말이 나아가지 않아서이다.’ 라고 하였다.”)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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