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통부 망했으면
영문을 모르겠으나 이 글 조회가 많이 되는 것 같은데, 한국 도착 당일에 해결한 이야기도 글로 남겼으니 궁금하신 분은 아래 주소 참고해주세요.
https://brunch.co.kr/@jungsikkimm/79
아내가 새 휴대폰을 사달라고 조른 지는 한참 됐다. 새것을 사기 부담스러웠던 나는, 내 휴대폰(아이폰 14 프로)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곧 싱가포르 출국 예정인지라, 해외에서 기기변경이 될지 확인해 보니 '온라인 셀프 개통'이 가능했다. KT 회선을 사용하던 나는 몇 가지 인증 만으로 해피콜 없이 기기변경이 가능해 보였다. 여기까지만 알아본 것이 패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냥 망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한국에서 esim으로 개통했고, 싱가포르에서 선불 유심을 추가해서 듀얼심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심칩은 빼서 서로 교환하면 될 테고, 아이폰이니 esim은 알아서 백업되고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내 작업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1. 아이폰 14(내 폰)에서, 사진과 앱 데이터 일부를 정리하고 백업한다. 옮겨야 할 아이폰 11(아내 폰)은 64GB 모델이라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2. 아이폰 14를 맥북에 백업한다. 맥북과 아이폰을 연결하면 Finder에서 할 수 있다. 10년 전의 아이튠스 화면과 똑같다.
3. 아이폰 14를 공장초기화한다.
4. 아이폰 11을 아이폰 14로 옮긴다. 가까이 두면 빠른 시작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5. 아이폰 11을 공장초기화한다.
6. 맥북에 백업해 둔 내 폰의 정보들을 아이폰 11에서 복원한다.
나는 이 순서로 내 폰과 아내 폰의 정보를 교환하는 데 성공했다. 싱가포르 선불 유심도 바꿔 끼워서 잘 인식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 esim은 복원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쩐지 공장초기화할 때, esim을 유지할 것인지 물어봤었는데 그게 그 이유였나 보다. 바보. 그제야 허둥지둥 찾아보니, 한국 esim은 화이트리스트와 동일단말 복수명의 제한 정책 때문에 esim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기변경할 때도, 새로 sim을 발급받아야 한다는 사실. 나중에 휴대폰을 중고로 판매할 때도, 통신사에 연락해서 imei 값을 등록취소해야 한다고 한다. 편하려고 esim을 쓰는데, 오히려 물리 유심만 못한 것 같다.
한국 통신사와 연결이 끊어지니, 휴대폰 인증이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금융앱들은 단말기가 변경된 것을 인식하고 휴대폰 인증을 요구했다. 요즘에는 공동인증서를 거의 쓰지 않는다. 금결원의 금융인증서, 네이버/카카오/PASS 등에서 제공하는 간편 인증도 모두 휴대폰 인증 기반이었다. 졸지에 외국인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이젠 휴대폰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인증서를 퇴출했더니, 휴대폰 인증이 그 자리를 대체해 버렸다.
편리해진 대가로
다른 것에 종속되어 버린 셈이다.
두 단말에서 esim을 삭제해 버리니 셀프 개통도 불가능했다. 이곳저곳 알뜰폰 가입도 시도해 봤는데, 해피콜 방식이라 해외에서는 불가한 곳도 있고, 마지막 단계에서 뭔지 모를 에러로 튕기기도 했다. 결국 대행사를 통해 알뜰폰을 개통하고 금융앱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심력을 낭비했다.
이번 일로 얻은 교훈은 세 가지다.
하나. esim은 휴대폰 귀속템(?)이다. 단말을 자주 바꾸는 사람은 절대 esim 개통하면 안 된다. 듀얼심 사용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메인회선을 esim으로 쓰는 것이 좋다.
둘. 편리해진다는 것은, 어떤 것에 종속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단 휴대폰 인증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은 절친의 휴대폰 번호를 외우지도 못한다. 비밀번호 저장 기능 때문에 내가 만들었던 비밀번호도 모른다. 삼성페이와 통화녹음 때문에 갤럭시를 벗어날 수 없고, 애플 기기간의 연속성 때문에 아이폰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의존성은, 조금만 상황이 바뀌어도 적응할 수 없는 취약한 존재를 양산하는 것 같다.
셋. 어설픈 계획/지식은 무계획/무지식보다 못하다. 내 얘기다. 알아볼 거라면 좀 제대로 알아보고 저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