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의 현장, 유치원 교사로서의 기록 1st.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충격과 공포의 현장, 유아교사로서의 삶. 그 고통의 시간을 살며시 꺼내 글로 담아보려 한다. 매일이 끝이기를 기도하며 버텼던 그 힘겨운 사투... 그때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며-
‘아이가 좋아서’, 그리고 ‘부모님의 권유’로 선택한 전공 유아교육과. 열심히 공부해 들어가서, 대학시절 내내 또 열심히 공부하고 정말이지 치열하게 살았다. 몇 학점 이상이 되어야 하고, 2번의 실습 점수도 높게 따야 하며, 모든 부분에서 결격사유가 없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24살. 그 후 유아교사로서의 내 삶은, 너무나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살인적인 스케줄,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 시스템, 죽기 직전까지 아파도 반드시 출근을 해야 하고 아픈 것도 사치인 삶, 진상 학부모를 상대하는 어려움, 무엇보다 힘들었던 원장과 선배 교사의 못된 갑질과 갈굼, 성인 학대까지. 그 일을 아예 그만둔 지금. 지금에서야 난, 그 모든 것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보려 한다.
대부분의 유아교육기관은 일반적인 회사 출근 시간보다 일찍 시작해서, 퇴근 시간보다 늦게 끝이 난다. 그 회사에 출퇴근을 하는, 엄마 아빠가 출근 전 아이를 맡기고, 퇴근 후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 곳이, 바로 유아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치원, 영어유치원 등 다양한 유아교육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보통 8시까지 출근을 해서 시작되는 하루는 단 한 시도 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당직인 날에는 7시 반까지 출근을 해야 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잠시, 창밖 하늘을 볼 1초의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었다. 5살 아이들 20명 정도를 내가 책임지고 이끌어간다. 아이들의 생활지도, 모든 영역(과목)의 수업, 인성교육, 안전교육, 놀이지도, 특별활동(외부 강사 특별활동도 있고 담임 교사 특별활동도 있음) 등을 다 진행하고, 전체를 잘 이끌어가면서도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컨디션이나 마음들도 살피고, 성향이나 성장발달 관찰도 동시에 진행을 한다. 중간중간 아이들끼리 싸우는 갈등 상황은 없는지도 살펴야 하고, 갈등 상황이 있다면, 그 상황을 잘 파악하고 그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상호작용을 하고 도움을 주는 등 개입하여 지도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치거나 하는 등의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늘 긴장을 바짝 해야 한다. 부담임 교사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있다고 해도 사실 그 모든 것은 담임의 책임이다.
직장인들은 한숨 돌리는 시간인 점심시간은 제일 바쁜 시간이었다. 5분 만에 내 식사를 하는 시간은 끝났지만 그 5분마저도 온전히 앉아서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 더 주세요, 선생님 응가 닦아주세요, 선생님 도와주세요, 선생님 선생님~” 식사 도중 화장실 처리를 도와주는 일은 매일 있는 일이다. 쉴 새 없이 계속 움직이고, 그 많은 아이들을 살피고 도우며 식사지도를 한다. 식사지도가 다 끝나면 양치 지도를 한 명 한 명 다 한다. 그러나 정작 나는 양치나 화장실도 마음 편히 갈 수가 없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그렇게 아이들이 하원하는 시간까지 몸과 영혼을 갈아 일을 한다.
보통 정규반은 2-3시면 끝나는데, 언젠가부터 기관에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인지 종일반교사가(방과 후 교사가) 있는데도, 어느 정도 시간까지는, ‘종일반 도움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보게 하는 곳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종일반 일을 돕고 나면, 그 후 본격적인 제2의 업무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학부모님들께 전화로 말씀드릴 부분이 있으면 전화를 돌리며 전달을 드리고(더 길게 상담을 해야 할 때는 많은 시간이 들기도 한다.), 차량 지도(버스에 태워서 아이를 부모에게 인계하는 것)를 하고 교실로 들어오면, 저녁 6시 정도가 된다.
그러면 다시 또 제3의 업무 시작이다. 교실, 화장실, 당직 구역 청소와 교실 환경 꾸미기, 오늘 활동한 것 파일에 담기 등 사후 작업과 같은 마무리, 내일의 수업 준비, 각종 만들기, 다양한 서류 작업, 아이들 관찰 정리 등등.. 게다가 주기적으로 있는 유치원 전체 일, 행사 준비가 있으면 그것까지 다 하고 하기 때문에, 퇴근 시간은 더 늦어진다. (학부모 상담, 학부모 참여수업, 전시회나 발표회 준비, 여러 가지 파티 등 수없이 많은 행사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밤 10시가 넘는 게 부지기수였다. 그마저도 못하면 퇴근하고 와서 집에서 하거나, 그렇게 일하다가 새벽에 잠들었는데 또 알람을 새벽 5시에 해놓고 잔다. 못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눈을 뜨면 똑같은 그 하루의 시작이다. 1년을 이렇게 반복한다.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 연휴 기간도 반납하고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시간 외 수당이나 야근 수당은 당연히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은 망가져가며... 그 고통의 하루하루를 버텼다. 한 사람의 결정적 시기에, 그 존재의 평생을 책임지는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그러한 ‘보람’으로. 그리고 찰나의 좋은 순간들로. 놀라운 것은, 이 빡센 일과가 나에게 충격과 공포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 너무나 많은 일들을, 난 겪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