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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n 29. 2023

심리상담, 비밀 서약이 파기되었습니다

새끼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

마지막 일 것 같았다.

너무나 버거운 삶.

상담실을 방문한 나는 50분이라는 상담이 끝나갈 무렾, 내 앞에 앉아계신 선생님의 얼굴을 열심히 머릿속에, 두 눈에, 마음속에 저장시키고 있었다.


극단적인 선택. 다음 주에는 상담실, 지금 이 자리에, 이 세상에 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마지막 순간에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그래서 선생님의 얼굴을 많이 많이 쳐다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상담이 마무리될 무렾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ㅇㅇ씨, 오늘 저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오늘 느낌이 이상한데, 상담도 겉도는 느낌이 드네요."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것 같은데"라고 말이다.

시간이 마무리되고 있지만 지금 그 이야기 좀 해보자며 자리를 뜨려던 나를 붙드셨다. 


"상담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 얼굴이 생각이 안 나서요. 그래서 기억하고 싶어서 오늘은 열심히 선생님을 쳐다봤어요." 순간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께서는 내게 다시 물으셨다.

"ㅇㅇ씨, 지금 흐르고 있는 눈물의 의미가 뭐예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었다. 직접 시도하려 준비까지 마무리해놓았던 상황이었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고, 트라우마로 인한 재경험과 순간을 마주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제는 그만 편안해지고 싶었다.


20년을 이렇게 살아왔으면,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고 선생님께 되물었다. 잠잔다고 생각하면 편안하지 않겠냐고. 편안해지고 싶다고 말이다. 다음 상담에 내가 이 자리에 없을  같다고, 그런데 집에 가면 선생님 얼굴이 생각이 안 난다고. 마지막 순간에 선생님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오늘 잘 기억하고 돌아가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안 되겠네요. 저는 오늘 이렇게 ㅇㅇ씨를 집으로 보내드릴 수가 없겠어요"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평일 오후 8시에 시작된 상담은 그 시간이 9시, 10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내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신 선생님께서는 결국 보호자 연락처를 꺼내 들었다. 비밀서약이 파기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내 상황은 병원에 긴급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강한 목소리톤으로 이야기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나는 오후 11시가 넘어갈 시간까지 상담실을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선생님과 나눈 3시간여의 상담 시간은 나를 다시 내 삶 속으로 돌려놓아주었다. 

(결국 그날 나는 보호자와 함께  상담실을 나올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나 자신을. 내 삶을 이렇게 까지 긴박하게, 온 맘 다해 걱정해 주고 마음 아파해주던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선생님께서 흘리시던 눈물과 눈물을 닦아내던 휴지조각, 상담실 안에서의 공기, 선생님의 제스처,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스냅사진처럼 내 머릿속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손가락을 걸고 했던 약속.

그날 이후 현재까지 선생님과는 매일 아침 모닝 문자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그런데 아침부터 괜히 선생님께 신경을 쓰이게 해 드리는 것 같았다. 죄송한 마음도 컸고 말이다. 그래서 모닝 문자를 보내지 않기도 해 봤다.


"ㅇㅇ씨, 모닝 문자가 없네요~"

"선생님 신경 쓰이게 해 드리는 것 같아서요"


"ㅎㅎ 또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셨네요. 제가 신경 쓰이면 말할게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알아요. 때로는 다른 사람의 ㅇㅇ씨에 대한 배려, 관심, 돌봄, 사랑도 온전히 받아보세요~"


눈물이 흘렀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런데, 아무런 미련도 걱정도 없이 죽을 수 있었던 내가, 앞으로는 걱정 없이 죽지 못하는 이유가 한 가지 생겨버린 것 같아서, 그게 선생님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이렇게 죽어버리면 선생님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클 것 같았다. 그래서 투정도 부려봤다.


"하루에도 안 좋은 생각들이 몇 번이나 울렁이는데 배려, 관심, 돌봄, 사랑에 제가 선생님께 계속 계속 붙잡혀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벌써 편안해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어요."라고 말이다.

.

.

.


지금 내가 써내려온 글이 앞뒤 문맥이 있는 글인가.

주저리 주저리 기억을 끄집어 내 보았다. 그 순간의 감사함을, 지금 이 시간들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글로나마 내 마음을 저장해 놓고 싶었다.

2023.06.20(화) 오후8시~오후11시.


#선생님께.

선생님. 지금 저는 하루하루 힘겨운 내 삶을 붙잡게 도와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함과 불평의 마음 두 가지를 가지고 있어요. 놓아버리고 싶은 삶을 계속 붙잡아야만 하는 이유, 삶의 소중함을 매일매일 일깨워주시는 선생님께 말이죠. 참 나쁘죠..


그래도 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냈어요. 트라우마의 기억을 없앨 수는 없다는 거 알아요. 런데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너무나 버겁고 힘에 겨워요. 그래서 계속 저는 삶이 흔들리네요.


그런데요 선생님.

그 흔들림을 곁에서 꽉 붙잡아 주셔서. 많이 느리지만 힘겨운 여정을 함께 동행해 주시고 걸어주셔서.

날..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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