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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글 Oct 14. 2022

ひとりを越えてゆけ

도망쳐도 괜찮지 않나요?

© 최동글

“도망쳐도 괜찮지 않나요?”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한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각자의 사정으로 계약 결혼을 맺은 두 주인공은, 가사 노동을 대가로 매달 급여를 주고받는 고용 관계이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 ‘시간 외 근무’에 해당하는 부부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하는데, 그날도 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남자 주인공인 츠자키 히라마사가 ‘부모님을 안심시켰다는 점에서도 이 결혼은 의의가 있다’고 말을 꺼내자 여자 주인공 모리야마 미쿠리는 크게 안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라마사 씨가 후회할까 봐 무서웠어요. 결국 주위를 설득할 자신이 없으니까 평범한 결혼인 척 연기하는 것도, 도망이라면 도망인 거잖아요.”


그러자 히라마사는 되묻는다.


“도망쳐도 괜찮지 않나요? 헝가리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소극적인 선택이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살아남는 편이 중요하고 그 점에 있어서는 어떤 이론도 반론도 인정할 수 없어요.”


요코하마의 야경을 등지고 선 미쿠리는 나지막이 되뇐다. 도망쳐도 괜찮다.


어떤 갈림길에 다다를 때마다 그곳에 ‘도망’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망설여지는 순간에는 앞사람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제 몫을 다할 때면 어느 정도 성취와 보람도 느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선택해 나아갈 순간을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작은 선택에도 책임이 따르는 만큼 선택을 미루는 일에도 ‘뒤쳐진다’는 부담이 뒤따랐다. 그 ‘때’에 맞춰 어제 했던 노력을 오늘 또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였다. 가치 있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나. 무용한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나. 그런 나는 ‘아직’이란 말 앞에 크게 좌절했다.


도망쳐도 괜찮다.” 되뇌는 미쿠리의 얼굴이 밤낮없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자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수께끼 같은 미래와 막연한 불안을 상자 속에 몰아넣고  위에 ‘보류라고 적었다. 그동안의 선택  가장 무책임하고 허무맹랑해 보였지만 딱히 겁나지는 않았다.  상자를 침대 밑에 숨겨두고 도망쳤다. 자기소개서와 친구들의 취업 성공 후일담, 기대하는 눈빛들로부터. 아리송한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다만  때를 정하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 했다. 유실물은 무사히 주인에게 돌아갔다.


“나도 요코하마로 가겠어.”


그렇게 부끄럽지도 않은 듯 엄마 아빠의 시간과 돈을 훔쳐 달아났다.


“아 진짜, 다녀와서는 취업한다니까.” 이 말만을 남기고 두 번째 세계를 향해 도망쳤다. 그 도시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미쿠리를 떠올리면 이상한 힘이 났다. 아마도 살아남는 힘일 그것이.


© TBS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Remaster (doram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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