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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글 Oct 17. 2022

신고식 1

외국에서는 한국인을 제일 조심하라던데?

© 최동글

외국에서는 한국인을 제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본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을 보고 한국에서 가계약을 걸어 놓는 방식과 현지 부동산에 직접 방문해 계약하는 방식이다. 막상 워킹홀리데이 준비를 시작하자 타지살이에 대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와중에 적어도 집만큼은 미리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러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 알아본 부동산 중개 업체와 가계약을 맺었다. 일본인 선생님이 직접 통화도 해준 덕분에 집 상태나 필요한 서류 목록에 대한 재확인도 마쳤다.


요코하마에 도착한 첫날, 제일 먼저 가나가와 주민센터에 들러 재류 카드를 발급하고, 계약한 집 주소를 등록했다. 한 시간 정도 열차를 타고 담당 영업사원이 있는 신주쿠 지점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부터 계약 건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담당자는 막상 만나보니 한국 사람이었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를 듣고 있으니 일본어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끙끙대던 순간이 떠올라 울컥 배신감이 일었다.


‘그냥 한국어로 했으면 됐잖아?’


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담당자 K 씨가 내민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서류 몇 장을 건네받았다. 


“열쇠는요?”


내가 묻자 K 씨는 요코하마 지점에 가서 받아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폐점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는 편이 좋을 거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에게 속았다고 볼 수 있다. 애초부터 나를 요코하마 지점과 연결해주었다면 구태여 신주쿠까지 올 필요도 없었을 터였다. 짐작하건대 실적을 위해 관할 지역도 아닌 신주쿠 지점을 통해서(심지어 현도 다르다) 무리하게 계약을 진행한 것이었다.


K 씨는 나를 데려다준다며 신주쿠 역사 안까지 동행했다. 나는 들어오는 급행열차 위로 뛰듯이 올라탔고 그는 열린 문틈 사이로 계약서 한 장과 인주를 불쑥 내밀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다급히 지장을 찍었고 곧이어 출입문이 닫혔다. 의심스럽긴 했지만 열차마저 이미 출발한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깜빡했다던 그의 말을 믿는 수밖에. ‘사기라도 당하겠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쫓기듯 요코하마 지점으로 향했다.


“아니, 잠깐. 이거 사기 아니야?” 


나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요코하마 지점에 도착해 직원에게 계약서를 내밀며 열쇠를 요청하자, 그가 키보드를 뚝딱뚝딱 두드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불길한 고갯짓에 무언가 잘못됐다는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는 다른 직원과 한참을 상의하더니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현재 영업소 내에는 해당 주소와 일치하는 열쇠가 없습니다. 신주쿠 지점에서 미리 계약 내용을 전달해줬다면 저희도 사전에 준비를 했을 텐데요.”


K 씨의 둥그런 얼굴이 경고등처럼 눈앞에서 깜박였다.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식은땀이 흘렀다.


“오늘 꼭 열쇠를 받아야 해요.”


나는 사정하듯 부탁했다. 번듯한 사무실을 빙 둘러보고서도 사기에 대한 의심은 걷히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그들의 난처한 얼굴을 지켜보는 내내 미안함과 불안감이 뒤엉켜 나를 조여왔다. 다짜고짜 열쇠를 내놓으라는 내가 어지간한 민폐인 건 충분히 알았지만 이를 감수하더라도 열쇠를 받아내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결국 폐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어디선가 굴러온 열쇠를 손에 쥐고서 그곳을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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