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레리나 Jul 30. 2022

아빠가 골라준 딸의 첫 신혼집

그리고 엄마가 가득 채워준

2014년 11월 내 결혼식은 그해 여름에 날을 잡아 4개월 만에 치렀다.

주변에 보면 결혼식을 꽤 먼 날짜로 잡고 차근차근 여유 있게 준비하는 커플들이 많다. 그에 비하면 나의 경우에는 정말 예식장의 날짜만 잡아놨지, 그나마 있었던 4개월이라는 시간마저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순간에 결혼 준비를 몰아서 했다.


나의 결혼 준비 중에서도 첫 신혼집은 엄마 아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었는데,

우리가 2년간 잘 지냈던 스물네 평 그 집은 호수도 무려 '1004호'였다.




행길 건너지 않는 집으로


나는 결혼 전부터 신도림역 근처를 신혼집 장소로 점찍어뒀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친정집은 1호선, 내 직장은 2호선이라 출근을 하려면 매일 신도림역에서 갈아타야 했고, 갈아타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아까웠다.

'지하철만 갈아타지 않아도 20분은 더 잘 수 있을 텐데…'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내가 몹시 아쉬워했던 부분이다. 그래서 난 결혼을 하면 신도림역 근처에 살면서 지하철을 갈아타지 않고 출퇴근하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신도림역에는 아침 출근시간에  '출발행 열차'가 있다. 다들 2호선 어딘가로 출근하려는 회사원들이 모여 꽉꽉 들어차 있는 열차가 아닌, 빈 열차가 신도림역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건 2호선 출근러에겐 굉장한 메리트다.


신도림이 친정집 근처였기 때문에 아빠와 둘이 부동산을 다니며 연락처를 남겼다. 난생처음 집을 구해보는 나는 '전세 대란'이라는 말도 이때 처음 들어봤다.


"전세 매물은 귀해서 나오기 무섭게 빠져요."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금방 다른 사람이 채가요."


이런 말들은 괜히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집을 구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걱정만 커졌다. 공인중개사들의 말대로 전세 매물 자체도 많지 않았지만, 매물로 나온 집들은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지하철역 도보 3분 거리' 친정집에 살고 있던 나는 어지간한 아파트들은 역세권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어떤 집은 복도식 아파트라서, 또 다른 집은 딱 한 동짜리 나 홀로 아파트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초역세권의 대단지 아파트에 전세 매물이 있다는 연락이 왔고, 부랴부랴 가서 본 집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신혼집으로 이 아파트를 선택한 데에는 아빠의 명언도 한 몫했다.


"출퇴근할 때 행길 건너지 않게 이 아파트로 해."


남편이야 차를 운전해서 다니니 상관없지만, 아빠는 다 큰 딸이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올 때까지 횡단보도나 큰길을 건너지 않았으면 하셨던 것이다.

그때 내 나이는 일곱 살이 아니고 스물일곱 살이었다.


*행길: 차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길이라는 '한길'의 방언


2022년 여름날의 퇴근길. 행길 건너지 않고 잘 왔어요 아빠





 

신혼여행 다녀왔습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때 우리 부부는 비로소 처음 신혼집을 제대로 마주했다.

남편과 나 둘 다 공교롭게도 결혼 날짜를 잡고부터 회사일이 정신없이 바빠졌다. 그러다 보니 한정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결혼식' 준비에 더 집중적으로 소모했다.

급기야 나는 '신혼집이야 뭐, 최악의 경우 신혼여행 다녀와서부터 천천히 꾸미고 한 달쯤 후에 들어가서 살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전 세입자들이 나가고 도배, 장판을 하는 날에 우리는 회사에 나가 있었고, 부모님께서 대신 집에 오셔서 도배 과정과 결과물을 확인해주셨다.

가구와 가전은 심지어 우리가 신혼여행에 가있는 동안 들어왔다. 그때도 부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설치를 지켜봐 주셨다.

이 정도면 부모님의 신혼집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현관 앞에 나란히 놓여있는 실내화 두 켤레였다.

한 쌍은 핑크색, 한 쌍은 하늘색이었는데 11월에 딱 신기 좋은 바닥이 도톰하고 폭신한 겨울 슬리퍼였다.

실내화 두 켤레는 우리가 들어가면서 바로 신을 수 있는 방향으로 놓여있었다.

아마 내가 골랐다면 고르지 않았을 법한 디자인의 슬리퍼였지만, 한 발 한 발 슬리퍼에 넣을 때 왜 그렇게 더 따뜻하게 느껴졌는지는 도저히 글 몇 자로 표현해 내기가 어렵다.


집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내가 산적이 없는 쓰레기통에 비닐이 씌워져 곳곳에 놓여있었다. 부엌, 안방, 그리고 화장실에.

사실 쓰레기통은 나의 혼수품 구매 목록에 있지도 않았다. 아마 생각지도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부엌 수납장에는 실금 하나 없는 새 식기들과 야심 차게 구매했지만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독일 브랜드의 커다란 냄비 세트들이 모두 세척 후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안방에 들어가 봤다. 내가 고르긴 했으나 세탁한 적 없는 이불이 침대에 곱게 깔려 있었다.

'아참, 침구류는 산다고 끝이 아니었지!'

순간 들었던 내 걱정이 무색하게 밝은 연둣빛 이불은 깨끗이 세탁되어 구김 없이 깔려있었고,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누가 봐도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침실답게 넓은 매트리스를 활용하지 못한 채 두 베개가 사이좋게 딱 붙어 있었다.


이쯤 되니 결혼한다고 어른인 척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요즘은 그렇게 안 해요."
"이런 색깔은 우리 집 무드랑 안 어울려요."
"무늬 있는 것들은 별로야, 심플 이즈 베스트야."

갖가지 잘난 척과 잔소리를 늘어놓고, 혼자 똑똑한 척 다 하며 결혼 준비를 했던 것 같은데

도대체 난 세탁도 하지 않은 이불을 덮고 자려했던 것일까?






나중에 남편과 이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우리 집의 커플 실내화와 쓰레기통들을 발견했다.

하나 같이 진열대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있었고, 모던함과는 다소 거리가 먼 정감 가는 무늬들이 있는 제품이었다. 부모님께서 구매하실 법한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되어 ‘풋’ 웃음이 났다.


수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의 슬리퍼는 단색의 심플한 슬리퍼로 교체되었고, 쓰레기통은 해외직구한 매트 블랙 컬러의 쓰레기통으로 바뀌었다. 모두 우리 스타일에 맞게 바꿔가고 있다. 이게 내가 잘난척했던 우리 집 무드인가 보다. :)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우리 스타일에 맞는 것들로만 완벽히 집을 채우고 시작하기란 힘들다.

쓰레기통 하나를 사려고 해도 꼭 필요한 순간에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없이 생활하는 건 또 너무 불편하다. 그러다 보니 급한 마음에 물건을 사게 되고, 곧 후회하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 스트레스를 받을 사람이 바로 나다.


우리는 일단 집에 필요한 생필품들이 모두 있으니 여유를 갖고 마음에 드는 물건들로 차근차근 바꿔나갈 수 있었다.

엄마 아빠가 준비해주신 물건들은 우리가 조급하지 않게 우리 식대로 이 집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여유를 한 스푼 뿌려주었다.


신혼집 입성은 부부로서 우리의 첫걸음이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처음은 우리에게 참 중요하다.

첫인상, 첫 직장, 첫 키스, 첫 경험, 첫 단추.

앞으로 무언가를 대할 때 내 마음가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는 우리의 첫걸음이 춥거나 불편하지 않게 먼저 집에 들러 난방을 켜 두시고, 살림살이들을 정리해주셨다. 이렇게 우리의 신혼 첫걸음에 온기를 남겨주셨다.


추운 초겨울에 결혼했지만 우리의 결혼생활만큼은 사계절 따뜻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살뜰한 배려와 보살핌 덕분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와 손 꼭 잡고 다니는 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