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배우자를 찾는 식스센스
나는 '아빠의 반의 반만큼 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 이 바람을 이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성공했다고 답할 것이다.
남편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정말 솔직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재지도 않고, 망설임도 없다. 함께한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눈빛과 표정, 몸짓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언어로 그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떻게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 사람을 알아봤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빠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편과 나는 드라마와 노래 제목처럼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대학교 선후배로 만났다.
선배는 여러모로 내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사랑과 애정이 묻어나는 모습에 반했다.
그리고 선배는 굉장한 금사빠에 직진남이었다.
사귄 지 100일 되는 날, 63 빌딩에 가자는 제안에 나는 아쿠아리움 데이트인 줄로만 알고 따라갔는데 그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목적지는 63빌딩에서 열리고 있는 결혼박람회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선배는 연애 기간 100일을 조금 넘겼을 때 우리 부모님과의 만남을 제안했다.
그는 곧 러시아 유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떠나기 전에 부모님을 뵙고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엽고 당돌한 스물다섯이다.
나는 선배의 이런 뜻을 부모님께 전했지만 결국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엄마는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딸의 남자 친구를 만나 밥을 한 끼 사주셨지만, 아빠는 만나주지 않으셨다.
어렴풋이 들었던 아빠의 콧방귀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때
그리고 선배와 연애한 지 어느덧 6년이 넘어섰을 때 나의 두 남자가 처음으로 만났다.
아빠는 타고났지만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 술고래다.
스스로 술을 잘 드시는 걸 아시기에 저녁식사 자리에서부터 선배에게 계속해서 주의를 주셨다.
"나랑 속도를 맞춰 마시려고 하지 말아라.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
"내가 잔을 든다고 잔을 들 필요도 없고, 네 페이스에 맞게 천천히 마셔."
아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선배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아빠의 손이 술잔에 닿기 무섭게 본인 잔을 가져다 부딪치고는 원샷을 해댔다.
저녁을 먹은 뒤엔 아빠가 자주 가시는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부터 선배의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난 잊지 못할 순간을 마주했다.
내가 슬슬 피곤해하기 시작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선배가 걱정 말라며 본인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노라 했다.
'지금 나의 동거인이자 보호자인 아빠가 이 자리에 함께 계시는데 아빠와 같이 집에 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던 건지 그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집에 가라고 하셨다.
이때부터 길고 긴 예비 장인과 예비 사위의 혀 꼬인 말씨름이 시작됐다.
"내가 데리고 가면 되니 걱정 말게."
"아닙니다! 제가 데려다주겠습니다."
"아니, 내가 데리고 살잖아. 나랑 같이 갈 거야."
"제 여자 친구입니다!"
"알아. 안다고. 근데 내가 데리고 갈 거야."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선배가 술에 취해서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두 사람이 티키타카를 거듭해 갈수록 대화는 점점 유치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제가 사랑하는 여자입니다."
"내가 더 사랑해. 내 딸이야. 내가 키웠고"
"그래도 집에 잘 들어가는지 제가 눈으로 봐야 합니다."
"내가 집에 데리고 간다는데 뭘 네 눈으로 봐. 웃긴 녀석이네."
아빠는 이런 모습을 귀엽게 보시면서도 그치지 않는 집요함에 슬슬 기가 차신 듯했다.
어릴 적부터 아빠 앞에서 까불까불 한 모습을 보이면 웃으시며 딱밤 때리는 시늉을 하시곤 했는데 진짜 딱밤을 맞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도 맞아본 적 없는 아빠의 딱밤을 결국 선배가 맞은 것이다.
누가 나를 데려다줄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누가 나를 더 사랑하는지까지, 두 남자의 입씨름은 딱밤으로도 끝나지 않았고 그날 밤 길고 길게 이어졌다.
어이없으면서도 참 든든하고 행복에 겨웠던 밤이었다.
두 사람의 입씨름은 애초에 결론이 날 수 없는 주제였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일이이니까.
하나는 부모의 사랑이고, 하나는 이성의 사랑이다.
이 두 가지는 분명히 다르지만 명확하게 구분 짓기는 어렵다. 특히 십 대, 이십 대, 사랑 경험이 부족할 때일수록 분명한 구분이 어렵다.
반면, 이 두 사랑이 다르기도 하지만 분명히 상관은 있다. 부모의 사랑에서 이성의 사랑을 배우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이 되었다고 해서 혹은 스무 살이 되는 순간,
‘사랑은 이런 거야!’ 깨닫게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이유 없이 받아본 가장 큰 사랑인 부모의 사랑과 비슷한 형태를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아빠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볼 때는 이런 눈빛이구나, 이런 말을 해주는구나, 이렇게 아껴주는구나'와 같은 것들.
자라면서 쌓인 이런 기억과 경험들이 지금의 남편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줬다고 믿는다.
좋아한다고 고백하거나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잘해준다. 몸이 안 좋다고 하면 약을 사다 주고, 수업이 끝날 때에 맞춰 기다렸다가 밥을 같이 먹거나 집에 데려다주려고 한다.
하지만 같은 행동을 해도 묘하게 다르고,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다. 말이나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지기보다는 얼른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목표의식이 언뜻언뜻 보이기도 한다.
사람을 잘 알아보는 데에는 오감을 뛰어넘는 식스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여섯 번째 감각은 아빠가 쌓아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생겨난 것 같다. (아쉽게도 내가 다양한 이성을 만나보면서 후회도 하고 눈물도 흘려보며 스스로 쌓은 데이터는 아니다.) 그저 내가 무얼 하지 않아도 이유 없이 받았던 사랑에서 나의 진심 그리고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 게 아닐까.
아빠는 나에게 ‘날 사랑해주는 사람’의 기준이었다.
그럼에도 아빠만큼 날 사랑해줄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건지, 그저 아빠와 닮은 혹은 아빠의 반의 반만큼 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자 했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앞두고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의 반만큼이나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야!”
그래서 지금 매일 넘치게 사랑받으며 살고 있다. 그러니 내 걱정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기 전에 늘 남편에게 먼저 쓴 글을 보여준다. 항상 조용히 글을 읽고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가 아빠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느낌이야’, ‘여보의 글은 여보처럼 솔직하고 담백해’ 등의 피드백만 주는 사람이 이번에는 읽는 내내 소리를 내며 웃어댔다.
본인이 장인어른에게 술주정을 한 부분에서 말이다. 그리고는 한 마디 했다. “XX놈이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