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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뜻 Jul 14. 2022

수면 위에서-2

그 곳은 겨울에도 절대 춥지 않다. 사계절을 가진 국가의 국민으로 한평생 살아온 탓일까. 포르투갈의 겨울은 축축하고 때로는 비가 흩날리기는 해도, 춥지는 않다. 비가 오면 에이, 젖으라지. 라는 마음으로 걸어다니면 된다. 


짐은 간소하게 하기로 한다. 나를 위한 짐은 최소로, 반려 고양이를 위한 짐을 최대한 챙겨본다. 나의 반려 고양이는 유난히 예쁘고 유난히 예민하다. 나에게 의지하고, 나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해한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이 부응을 하려 더 주고 더 주고 싶다. 나의 불편함은 헤아릴 수 있는 것이지만 고양이의 불편함은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니 최대한 노력을 해봐야 한다. 내 고양이는 유럽에 가기 위한 백신 과정도 마쳤다. 그녀의 인생에 불필요한 몇가지 접종을 더 했고, 그에 감사하고 미안하다. 


떠나는 시기는 언제든 상관없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추위를 지독하게 싫어하여, 성인이 된 이후로는 겨울이면 실내에 콕 틀어박혀 스스로를 잠식시키곤 했다. 하지만 그 곳은 춥지 않다. 그러니 언제라도 괜찮다. 때를 노려야 하는 서울과는 달리, 포르투는 따뜻하고 안온하다.


집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본다. 작은 테라스와 주방이 딸려있고, 침실이 분리된 작은 공간을 찾아 클릭에 클릭을 반복한다. 한 달 정도의 기한이면 사백만원 쯤 예상해야 한다. 입술을 비죽거리며 웹을 휘적이다, 작고 밝은 방이 백만원 중반정도에 나와 있는 것을 본다. 이 쯤이면 어떨까. 어차피 나는 가면 할 것도 없고, 내 몸은 공짜고, 부지런하면 부족한 것들을 메꿀 수 있을 것 같다.


비행기표도 뒤적여본다. 떠날 날을 짚어낸다. 나를 붙잡아 두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탈하고 간결한 마음이다.


가구를 처분하는 것은 번거롭지만 쉬운 일이다.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무겁고 단호한 일이다. 한 번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기에, 말을 고르고 고른다. 누군가는 왜 관계를 정리해야 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보던 영상을 멈추어 놓듯, 멈춰놓았다가 언젠가 돌아와 다시금 재생버튼을 누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혹여나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을 지 모르는 누군가의 마음을 살짝 여며주고 싶다. 나는 아주 지쳤고, 아주 오래 떠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옛날에 어떤 고래는 아주 긴 거리를 여행하며 살기 때문에, 초음파로 서로 말을 건넨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엄마 고래가 '아가, 어디쯤 왔니?' 하면 '새우 조금만 더 먹고 갈게요' 하고 답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정하지만 건조한 거리 감각을 담아 말을 건넨다. '바다 조금만 더 보고', '돌아가고 싶을 때', 나는 갈게. 그러니 너도 항상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주 행복하길 바라.


물건들이란 참 이상하다. 반짝거리던 생기는 금새 빛을 잃는다. 고개를 모로 비틀어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는 물건이 아니라 내 욕심이었다는 것이 금새 눈에 보인다. 그런데도 손에 넣지 못하였을 때는 발을 동동거리게 하는 것이다. 손에 쥐었다가 하릴없이 풀어내어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기를 반복한다. 바닷가에서 모래를 꼬옥, 손끝이 하얘지도록 쥐어보았다가 놓는 것과 같다.


풀어헤쳐진 일들이 아직 많다. 쓰지 못한 논문도, 열리지 못한 전시도 있다. 그대로 얌전히 땅에 내려놓기로 한다. 물건은 이리저리 쓸려다니지만 어떤 것들은 그대로 놓아주어야 한다. 예전에 이사를 나오면서 집 근처 자투리 땅에 오랫동안 키워왔던 수국을 묻어주고 나온 일이 있다. 수국은 나와 함께 한 때를 보냈고 이제는 새로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안녕도 있다. 저런 안녕도 있다. 모든 이별이 뒷맛이 상쾌하지는 않다. 그 마저도 그러려니 하고 삼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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