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감한 망고 May 28. 2022

이거 레스 솔티 아닌 거 같아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83일차(2022.05.28)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고 맵고 기름진  질색팔색하는 이방인이 인도에서 열한 번의 외식을 경험하며 나름의 결론을 도출했다.


인도 음식은 대체로 짜다. 재료 본연의 맛이 무엇인지 헷갈릴 만큼 극악스러운 놈도 종종 만난다. 그럴 땐 소금 테러에 얼얼해진 혀를 달래주기 위해 밥알이 나풀나풀 춤추는 바스마티 쌀밥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좀 더 확실한 비책이 필요할 땐 뒷골이 찌르륵 울리도록 달콤한 스위트 라씨를 곁들인다.

처음으로 먹은 커리는 카다이 파니르(Khadai Paneer). 메뉴판 한 바닥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커리 이름과 짧은 설명을 훑어보다 매운 토마토소스가 맘에 들어 골랐다. 웨이터가 다가와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아는 듯 보여 냉큼 덧붙였다. 덜 짜게 만들어 주세요. 흔들리는 동공을 보아하니 이해를 못 한 것 같아 좀 더 천천히 한 단어씩 말했다. Less, Salty, Please.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 까딱, 그리고는 께(OK).

2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질 않자 느긋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성질 급한 한국인의 동공이 흔들린다. 주문 안 들어간 거 아니야? 다시 웨이터 불러? 배고픔 앞에 악마로 돌변하는 K가 볼멘소리를 터뜨릴 때즈음 웨이터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텐 보울을 들고 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뻔한 멘트 하나 날려주고 주홍빛 가득한 커리를 서빙 스푼으로 푹 덜어냈다. 기분 좋은 첫 만남에 농익은 허기를 더해 입안 가득 밥과 커리를 밀어 넣었다.

이거 레스 솔티 아닌 거 같아. 너무 짜. 밥상머리에서 인상 쓰면 소화 안 된다는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지만 손녀의 미간이 내 천()자로 글쭈글해지는 건 할머니의 할머니라도 막을 수 없었다. 분명 내 뜻을 잘 전달했다 믿었는데 보란 듯이 더 짜게 만들어 온 이유가 무엇일까. 따져 봐야 의미없을 가설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차올랐다.


하나,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해한 척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둘, '짜게'까지는 이해했으나 '덜'을 '더'로 이해했다.

셋, '덜 짜게'는 이해했으나 조리할 때 까먹었다 혹은 다른 손님의 주문과 헷갈렸다.

셋 중 뭐가 되었든 다 말이 되는 인도다. 이미 나온 음식을 도로 무를 수도 없고 아까워서 꾸역꾸역 열심히 먹었다. 너무 짜기도 하고 배도 금방 차서 절반밖에 비우지 못했지만 남은 커리와 난 조각을 알뜰하게 포장해왔다. 다음날 점심, 냉장고에서 젤처럼 굳어버린 커리를 젓가락으로 콕 찔러 혀에 갖다 댔다. 차가워졌더니 두 배로 짜다. 귀찮아서 그냥 먹으려다 식겁하고 냉큼 전자레인지에 돌려버렸다.

볼펜으로 주문을 받아 적는 직원을 볼 때마다  의심스럽다. 저 양반,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노파심에 두 번 세 번 천천히 반복한다. 아예 영어를 못하는 눈치면 조금이라도 알아달라는 간절한 몸부림으로 이렇게 외친다. 노 솔트!




매거진의 이전글 밤까지 얼마나 시끄러운지 말도 못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