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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Jun 04. 2022

이제 좀 인도 같아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90일차(2022.06.04)

델리만 가면 슈퍼스타가 된다. 한 걸음 내딛기가 무섭게 따라붙는 열렬할 사진 요청을 물리치는 건 어느 정도 적응을 끝냈지만 나를 쳐다보는 수백 개의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활짝 웃으며 사진 찍는 건 차마 못 하겠다. 이리저리 여러 각도로 찍어봐도 얼어붙은 입꼬리가 영 부자연스럽다.

구루그람과 델리의 온도 차는 상당하다. 구루그람에서는 단 한 번도 같이 사진 찍자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외국인이 지나갈 때마다 무서울 정도로 쳐다보는 사람도, 슬그머니 옆에 따라붙는 사람도 없다. 그저 가볍게 흘깃 확인하고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진땀 뻘뻘 흘리며 실랑이할 일이 없어 마음이 편안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복작복작 델리가 재밌기는 더 재밌지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한국인과 일본인많이 사는 지역이다 보니 마트에서 마주치는 동북아인 따위 신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동네는 외국인의 존재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 영어도 어느 정도 유창하고, 해외여행도 몇 번 나가 보고, 외국 거래처와 미팅도 하고, 유학도 다녀왔을 만한 그런 인도인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신도시가 구루그람이다. 전통옷보다는 드레스와 청바지, 허리까지 내려오는 땋은 머리 대신 굵은 펌을 넣은 레이어드 컷, 가냘픈 팔다리 말고 훤칠한 키에 두툼한 덩치가 어울린다.

잘 먹고 잘 살아 배에 넉넉하게 기름이 낀 인도인에게 그깟 외국인이 뭐 그리 재미난 구경이겠는가. 관심도 없는 게 당연하다. 델리는 다르다. 델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미디어가 담고 싶어하는 인도와 가깝다. 대다수의 여성이 알록달록 전통복을 입어 현대복 입은 이를 찾기 어렵고, 한결 까무잡잡한 피부에 하얀 안광을 내뿜는 키 작은 청년이 가득하다. 이제 좀 인도 같아. 구루그람은 영 재미가 없어. 참으로 인도에 최적화된 인간이란다. 맞는 것 같다. 


수줍은 듯 대담한 듯 팔을 뻗어 폰을 내미는 이들에게 고개를 저으면 이내 순순히 을 거두지만 아쉬운 마음에 눈길마저 거두지는 못한다. 대차게 까여놓고 끝까지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다. 평생 인도 땅을 벗어나 보지 못했을, 유일한 주말인 일요일에 온 가족이 손을 잡고 난생처음 델리 관광지에 놀러 왔을, 꽤나 피부가 하얀 동북아인을 유튜브 화면이 아닌 실사판으로 처음 봐서 흥분했을 사람들. 그들은 델리에 산다.

지난 일요일 오후,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적지 '레드 포트(Red Fort)'에 다녀왔다. 이래저래 바빠지는 바람에 한 달 만에 나간 올드 델리였다. 성문을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끝이 보이지 않는 인파 속에서 어김없이 러브콜이 쏟아진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나 외국인이었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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