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짜리 쇼핑몰이 순식간에 깜깜해진다. 옷가게부터 식당까지 일부 간판이나 조명을 제외하고는 몽땅 불이 나갔지만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기한 장면을 담고 싶어 서둘러 카메라초점을 잡는 이는 나 하나.
인도와 한국의 차이점을 말해보자면 어디 한두 가지로 끝나겠냐마는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건 정전의 빈도다. 한국에서는 한여름 단골뉴스로 전력 수급난을 읽었어도 정작 내 집 전기 나가는 일이 없어 정전이 어떤 것인지조차 까먹고 살았다. 그러다 인도에 건너오니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에 4번까지도 내려가는 두꺼비집에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보금자리를 옮긴 후로는 훨씬 안정적인 전기 라이프를 누리고 있다. 5월 한 달 동안 4번 정도 아주 짧은 정전사태가 일어났으나금방 자동으로 돌아왔다. 전자제품이 반복해서 예고없이 꺼지면 결국 수명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천장 선풍기나 에어컨 정도는 그리 문제가 아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건 플레이스테이션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플선생께선 느닷없이 전기가 끊길 때마다 넉다운되는 험한 꼴을 당하셨다. 화가 잔뜩 나셔서는 시커먼 화면으로 돌변하시어 그딴 식으로 무례하게 전원을 뽑지 말라는 경고장을 날리신다. 딱 한 번, 5분 안에 연속 3차례 후드려 맞으신 날은선생도 나도 게거품을 물 뻔했다.
불 나간 쇼핑몰이 언제 다시 환해질지 궁금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일, 이, 삼, 사, 그리고 육십. 와아! 불 들어왔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분 안에 온 세상이 환해진다. 좋다고 깔깔거리며 손뼉 치는 이방인을 지나가는 인도 할아버지가 심드렁하게 쳐다본다. 뭐가 그리 재밌냐 묻고 싶은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