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 집으로 이사한 지 정확히 111일이 되는 날이다. 무릇 세상 일에 공짜가 없듯 인도살이 적응에도 나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눈물 한 줌, 땀 두 바가지, 돈 세 주머니, 분노 네 주먹, 그리고 웃음 다섯 봉다리.
하루는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잘 살고 있는 거야? 통 연락이 없어서 걱정되기고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아뿔싸. 그러고 보니 인도에 건너온 후 한 번도 H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꽤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인도에 온 뒤로 한국을 생각한 적이 없다. 더 정확히는 한국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나날을 보냈다.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 감칠맛까지. 인도에서의 삶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맛을 안겨준다. 그럼 나는 마치 과일 베기 게임에 몰두한 사람처럼 어제는 저기서 얍! 오늘은 여기서 얍! 징글징글하게 날아오는 짠 바나나와 쓴 사과를 칼로 두 동강 낸다. 그야말로 요절복통 인도 정착기의 정석이다.
6월에는 델타인지 오미크론인지 아니면 어떤 신종인지 모를 코로나에 걸렸고, 한 달 내내 죽을 날짜 받아놓은 사람처럼 기침에 시달렸다. 곧이어 결막염에 걸렸고,왼눈과 오른눈에 번갈아 다래끼가 올라왔다. 머리칼이 많이 빠져 희한한 탈모 클리닉을 다니기 시작했고, 비장의 무기 쌍화탕을 한 솥단지 끓여 매일 아침 보약처럼 마셨다.
7월에는 비 안 오는 주말마다 델리에 나가 호갱 같은 입장료를 내며 유적지를 훑었고, 코넛 플레이스에서 수상한 구두닦이에게 돈을 뜯겼다.시크교 사원에서 터번 할아버지를 만나 짜이를 얻어마셨고, 어느 마사지숍에서는 비싼 돈 주고 머리털만 쥐어 뜯겼다. 로컬 미용실에서 손 안 대고 자르는 단발 커트도 받았고, 벌떡 일어나 '자나 가나 마나'(인도 국가)를 부르는 영화관에서 미니언즈2를 관람했다.
인도인의 행동에 복장이 터지다가도 인도인의 눈빛에 뭉클해지고, 한국인의 권모술수에 오만 정이 떨어지다가도 한국인의 마음씀에 따뜻해졌다. 그렇게 어제가 쌓이고 오늘이 더해져내일이 다가온다.
인도 살이에서 무엇이 잘사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이신기하고도재밌는나라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