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달고 짜고 맵고 기름진맛을 질색팔색하는 이방인이 인도에서 열한 번의 외식을 경험하며 나름의 결론을 도출했다.
인도 음식은 대체로 짜다. 재료 본연의 맛이 무엇인지 헷갈릴 만큼 극악스러운 놈도 종종 만난다. 그럴 땐 소금 테러에 얼얼해진 혀를 달래주기 위해 밥알이 나풀나풀 춤추는 바스마티 쌀밥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좀 더 확실한 비책이 필요할 땐 뒷골이 찌르륵 울리도록 달콤한 스위트 라씨를 곁들인다.
처음으로 먹은 커리는 카다이 파니르(Khadai Paneer)다. 메뉴판 한 바닥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커리 이름과 짧은 설명을 훑어보다 매운 토마토소스가 맘에 들어 골랐다. 웨이터가 다가와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아는 듯 보여 냉큼 덧붙였다. 덜 짜게 만들어 주세요. 흔들리는 동공을 보아하니 이해를 못 한 것 같아 좀 더 천천히 한 단어씩 말했다. Less, Salty, Please.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 그리고는 티께 티께(OK).
2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질 않자 느긋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성질 급한 한국인의 동공이 흔들린다. 주문 안 들어간 거 아니야? 다시 웨이터 불러? 배고픔 앞에악마로 돌변하는 K가 볼멘소리를 터뜨릴 때즈음 웨이터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텐 보울을 들고 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뻔한 멘트 하나 날려주고 주홍빛 가득한 커리를 서빙 스푼으로 푹 덜어냈다. 기분 좋은 첫 만남에 농익은 허기를 더해입안 가득 밥과 커리를 밀어 넣었다.
이거 레스 솔티 아닌 거 같아. 너무 짜. 밥상머리에서 인상 쓰면 소화 안 된다는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지만 손녀의 미간이 내 천(川)자로 쭈글쭈글해지는 건 할머니의 할머니라도 막을 수 없었다. 분명 내 뜻을 잘 전달했다 믿었는데 보란 듯이 더 짜게 만들어 온 이유가 무엇일까. 따져 봐야 의미없을 가설이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차올랐다.
하나,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해한 척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둘, '짜게'까지는 이해했으나 '덜'을 '더'로 이해했다.
셋, '덜 짜게'는 이해했으나 조리할 때 까먹었다혹은 다른 손님의 주문과 헷갈렸다.
셋 중 뭐가 되었든 다 말이 되는 인도다. 이미 나온 음식을 도로 무를 수도 없고 아까워서 꾸역꾸역 열심히 먹었다. 너무 짜기도 하고 배도 금방 차서 절반밖에 비우지 못했지만 남은 커리와 난 조각을 알뜰하게 포장해왔다. 다음날 점심,냉장고에서 젤처럼 굳어버린 커리를 젓가락으로 콕 찔러 혀에 갖다 댔다. 차가워졌더니 두 배로 짜다. 귀찮아서 그냥 먹으려다 식겁하고 냉큼 전자레인지에 돌려버렸다.
볼펜으로 주문을 받아 적는 직원을 볼 때마다 늘의심스럽다. 저 양반,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노파심에 두 번 세 번 천천히반복한다. 아예 영어를 못하는 눈치면 조금이라도 알아달라는 간절한 몸부림으로 이렇게 외친다. 노 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