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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May 26. 2022

밤까지 얼마나 시끄러운지 말도 못 해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81일차(2022.05.26)

음주가무 즐기기로 유명한 한국도 인도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집 저집 파티 스피커 꽝꽝 울리는 소리를 각오해야 한다. 온통 시꺼먼 늦은 밤까지 잠실경기장 콘서트 뺨칠 발리우드 비트가 아파트 11층까지 쳐들어오는 날도 있다. 에이, 설마 하니 그러겠냐고? 나도 처음엔 못 믿었다.

인도에 온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봄 축제 '홀리(Holi)'가 찾아왔다. 모두가 뛰쳐나와 오색찬란한 고운 가루를 온몸에 뿌리며 신나게 춤추고 먹고 마시는 날이었다. 점심 나절부터 시작된 댄스음악이 오후 내내 멈추지 않았고 동네 사람 모두 모여 마스크 벗고 낄낄깔깔 즐거워했다. 더럽혀도 좋을 여분의 옷이 있었다면, 코로나에 걸려도 상관없을 자신이 있었다면, 나도 슬쩍 끼워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옷도 자신도 없는 소심한 이방인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부러운 눈으로 첫 번째 축제를 지켜봤다.


쟤네들은 뭐 하나 했다 하면 장난 아니에요. 밤까지 얼마나 시끄러운지 말도 못 해.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던 장기 투숙객 S가 베란다 유리창 너머로 홀리 행사장을 쳐다보며 한껏 아는 척을 했다. 인도에 1년 넘게 살아본 바로 현지인들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주말에는 좀 조용히 쉬고 싶은데 남의 집 스피커 소리 때문에 정신사나워 죽겠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S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코로나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홀리를 즐기는 모습만 봐도 인도 사람들이 얼마나 흥부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설마 하니 그 정도로 시끄러울까. 인도살이 신참에게 약간의 허세를 섞어 겁을 줬을 테지. 인도 사람들도 노는 걸 좋아하나 보네요.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맞장구를 쳤다.


새 주소로 이사 온 후 부쩍 음악소리가 자주 들린다. 덩실덩실 스텝 좀 밟아줘야 할 것 같은 멜로디가 고층까지 선명하게 전달된다. 설거지하는 부엌에서도 들리고, 샤워하는 화장실에서도 들리고, 공부하는 책상에서도 들린다. 집안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기분이 좋은 날은 베란다로 나가 오늘은 또 뉘 집에서 풍악을 울리는고 기웃거린다. 마음이 시끄러운 날은 저 놈의 스피커 앰프 부숴버리는 주문은 없나 시부렁거린다.

지난주 일요일에는 동네 주민을 위한 작은 파티가 열렸다. 이날은 디제이까지 불렀다. 간드러진 인도산 비트에 화려한 믹싱이 섞여 무아지경에 이르러버린 음악이 10시까지 멈추지 않았다.


S의 심정이 이해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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