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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Feb 15. 2023

힌디어 발음이 어쩜 그래요?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346일차(2023.02.15)

지난해 8월부터 힌디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필 왜 8월인고 하면 딱 그즈음 인도 영어에 귀가 트였기 때문이다. 3월 초 인도에 들어오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지도록 아찔하게 만들었던 마살라 힌글리시(Hinglish)에 익숙해지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새로운 문자와 신기한 발음을 받아들이기 딱 좋은 한여름이었다.

표음문자의 기적은 인도에도 있다. 가갸거겨 한글을 떼듯 까카가 데브나그리를 뗐다. 문자를 읽고 발음할 수 있기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11개의 모음과 35개의 자음을 하나하나 따라 그리며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다양한 발음 변칙과 표기 규칙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수없이 반복하며 듣고 말하고 썼다.

간단한 단어와 표현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웃 할아버지에게 건네고 싶은 안부, 집주인에게 따지고 싶은 불만, 구멍가게 직원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 조마토 배달원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 그동안 힌디어를 하지 못해 소통이 안 됐던 고난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심장이 벅차오른다. 복장 터지는 답답합은 이제 과거의 추억으로 박제되는 걸까.

힌디어 발음이 어쩜 그래요? 얼마나 공부했어요? 자주 가는 책방 주인 L이 말했다. 이제 5개월 됐어요. 힌디어, 정말 재밌어요. 나의 또박또박 발음이 귀에 선명하게 꽂힌다며 활짝 웃어주는 그녀에게 싱글벙글 감사의 말을 전했다. 새로 뚫은 음식점 아저씨도 힌디어 하는 외국인 손님이 무척 반가우신 모양이다. 주방 스태프까지 데리고 나와 내가 앉은 테이블로 와서는 한 마디씩 건네라며 직원들 옆구리를 찌른다. 입만 열었다 하면 이 구역 핵인싸가 되어버려 부담스러운 요즘이다.

지난주에는 뭄바이를 다녀왔다.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낼 기회가 몇 날 며칠이고 이어졌다. 에이티엠에서 돈 뽑을 때도, 택시값을 흥정할 때도, 경찰들이 길을 막은 건지 물어볼 때도, 힌디어는 깜깜한 밤의 북두칠성처럼 나를 구원해 줬다.


한번 입이 트였더니 걷잡을 수 없이 재미가 붙는다. 하다 하다 이제는 발리우드 히트곡을 틀어 놓고 샤워부스에 들어간다. 나는 지금 힌디어에 반쯤 미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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