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오고 나서 일상의 많은 부분이 획기적으로 달라졌지만 그중 제일 편하면서 불편한 구석이 쓰레기 처리다. 이 나라는 쓰레기를 파란 통의 일반쓰레기와 초록 통의 음식물쓰레기 두 가지로만 구분하지만 사실 그조차도 딱 부러지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대충 아무 통에나 쑤셔 넣어도 청소용역이 군말 없이 수거해 간다. 내 한 몸만 생각하자면 편하기 이를 데 없으나 동서남북이 쓰레기 무덤으로 뒤덮인 동네 주민으로서 매일이 한숨과 죄의식으로 물든다.
어느 아파트든 사정은 엇비슷해 두 해를 살았던 이전 집이나 이제 막 두 달을 넘긴 이번 집이나 다를 건 없다. 이전 집은 각 층 복도 밖에 커다란 파란 통과 초록 통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파란 통에 일주일 치 신문지를 와라락 털어 넣기도 하고 초록 통에는 손질에 실패한 털 박힌 오리 고기를 풍덩 던져 넣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음식물만 넣어야 할 초록 통에 플라스틱이며 비닐봉지가 한가득 들어간 모습을 발견하고는 노발대발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세상천지 얼마나 게으른 놈이길래 이까짓 두 가지 기준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버려놓았느냐며 이 놈의 나라, 내가 다 미래가 걱정된다고 통탄을 했다.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자마자 제일 먼저 쓰레기통부터 찾아다녔다. 이번에도 복도 어딘가에 파란 통과 초록 통이 숨어 있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계단 위아래를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쓰레기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날 관리실에 찾아가 물어봤더니 직원 말로는 호텔처럼 집 문 밖에 쓰레기를 내다 놓으면 매일 미화원이 수거해 간다고 했다. 네 집이 한 층에 모여 사는, 그리 넓지도 않은 복도에 정말로 냄새나는 쓰레기를 놓아도 되는지 의아한 얼굴로 재차 물었지만 그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거듭 '호텔 방식'을 강조했다. 호텔에 살아본 적이 없어 호텔에서 그렇게 쓰레기를 버리는진 모르겠다만 일단 알았다고 했다.
주말에 동네 슈퍼마켓에 달려가 4천 원쯤 하는 플라스틱 쓰레기통 두 개를 샀다. 하늘색은 일반쓰레기용으로, 좀 더 작은 분홍색은 음식물쓰레기용으로 골라 우리 집 문 옆에 나란히 세워놓고 그날로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문을 열고 통부터 확인했다. 직원이 진짜로 수거해 갔을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뚜껑을 따악 여는데 정말 사라져 있었다. 우와, 이것 참 대단히 편리한 시스템이다. 게다가 걱정했던 냄새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반쓰레기통이든 음식물쓰레기통이든 뚜껑을 잘 덮어놓기 때문에 생각보다 괜찮았다. 딱 하나, 우리 집을 뺀 다른 집들은 하나같이 복도에 통을 내다 놓지 않았다는 점이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직원이 꼬박꼬박 쓰레기를 수거해 가고 이웃들도 별 말이 없으니 그렇게 잘 적응해서 살면 되겠거니 했다.
어느 날 저녁, 잘 익은 사페다 망고를 잘라먹고 껍질을 버리러 나갔다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분홍색 음식물통 안에 술병과 담뱃갑이 들어있었다. 술을 안 마셔 술의 시옷자도 모르는 내 눈에도 굉장히 비싸 보이는 양주병이었고 담배는 무려 한국산 에세(ESSE). 누구인가? 누가 내 쓰레기통에, 그것도 음식물통에 일반쓰레기를 버리고 토끼었는가 말이다. 일순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면서 목덜미를 타고 뜨끈한 기운이 올라왔다. 황당했지만 사실 좀 재밌기도 했고, 어쨌든 처음 있는 일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누가 술이라도 취해 실수로 버렸겠지 설마 하니 일부러 그랬으려고.
맞다. 그놈은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다. 며칠 뒤 보란 듯이 새로운 양주병을 또다시 분홍색 음식물통에 넣어놓은 것이다. 이야, 요놈 봐라. 한번 해보자는 거지? 나는 그 길로 집으로 쌩 하니 들어가 에이포용지, 검은색 네임펜, 셀로판테이프를 들고 나왔다. 범인의 양심에 신명 나게 채찍을 후려칠 만한 내용으로 한 장 꽉 채워 벽에 붙이고는 술병을 꺼내 복도에 전시했다. 놈이 내 경고문을 읽고 뜨끔하길 바라며, 뒤통수를 긁적이며 자신이 남긴 죄악을 슬쩍 가져가길 바라며, 상상의 나래 속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다음날이 밝았다. 세수도 안 하고 밖부터 나가 술병부터 확인했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술병은 그대로 덩그러니 놓여 있고 노란 포스트잇 하나만 경고문 하단부에 덜렁덜렁 붙어있다. 벌렁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포스트잇을 떼와 문을 쏙 닫고 안으로 숨었다. 작성자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범인이 아니지만 이 사태를 보고 있자니 자기도 할 말을 해야겠다면서, 공용공간에 당신네 쓰레기통이 있는 모습을 나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거 정말 난감하다 난감해. 분명 관리실에서는 복도에 놓으라고 하지, 저 양반은 복도에 놓지 말라고 하지, 어떡하면 좋으리.
두 번째 장문을 다시 붙였다.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나도 일부러 여기에 쓰레기통을 놓은 것은 아니다. 관리실 말을 따랐지만 어쨌든 네가 보기 불편하면 외부 계단으로 옮겨놓겠다.> 다시금 노란색 포스트잇 답장이 돌아오진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틀이 지나도 묵묵부답이라 결국 답장받기는 포기하고 내가 붙인 에이포만 멋쩍게 떼어냈다. 술병을 버린 얌체는 끝까지 자기 병을 치우지 않았고 내가 일반쓰레기통에 넣어 줌으로써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이번엔 토요일 오전에 누군가 끈질기게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두려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을 때 내 앞에 선 사람은 이웃집 남자였다. 정중한 얼굴로 인사를 하더니 외부 계단 쪽 복도에 옮겨다 놓은 우리 집 쓰레기통 때문에 자기네 집으로 냄새가 들어온다며 위치를 바꿔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현기증이 났다. 내 집 앞도 안 돼, 멀찍이 복도도 안 돼, 그럼 도대체 어디에 두라는 걸까. 나는 역으로 질문했다. 도대체 당신들은 왜 쓰레기가 안 나오는 거죠? 우리 집 빼고는 세 집 전부 쓰레기통이 없잖아요. 어디에 버리시는 건지 알려주세요. 저도 거기에 버리고 싶거든요.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직접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집안일을 대신하는 가사도우미, 즉 힌디어로 아야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퇴근하면서 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본인은 쓰레기통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배출되는지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없는 셈이다. 이제야 모든 미스터리가 풀린다. 나 빼고 다들 아야를 부리는 부잣집이라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젠틀한 남자는 차라리 통을 저쪽에 놓으면 어떻겠냐고 새로운 장소를 권했고 나는 또다시 위치를 바꿔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정착한 좁은 틈새에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두 통을 두고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인도에서 쓰레기통을 볼 때마다 이렇게 막살아도 되는 걸까 고개는 갸웃갸웃 마음은 무겁다. 오늘 밤은 어릴 적 살던 아파트가 떠오른다. 잠옷을 갈아입자니 귀찮고 잠옷을 들키자니 부끄러워 늘 잰걸음으로 후다닥 해치웠던 저녁 무렵의 분리수거가 문뜩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