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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Apr 02. 2022

1970년대 이야기

나는 생각한다.

1. 된장찌개

추운 겨울 아침, 우리 오 형제는 아랫목에 이불을 감고 누워 뒹굴뒹굴 티브이를 보고 있다. 웃풍이 있어 코가 시릴 정도이니 이불 밖은 위험하다. 잠시 후 엄마가 밥상을 들여온다.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고 이불만 한쪽으로 밀쳐놓고 밥상에 빙 둘러앉는다. 오늘은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구나. 나는 물에 빠진 고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된장찌개에 든 소고기는 맛있어 보인다. 형제들은 일제히 고기를 건지려고 숟가락으로 찌개를 휘젓기 시작한다. 큰오빠가 말한다. 큰오빠의 말은 법이다. "낚시질하지 마라. 숟가락으로 설거지 하나? 휘젓지 말고 숟가락을 딱 한 번만 넣어서 고기가 없으면 그만인 거다." 나는 생각한다. 고기를 먹고야 말 테다. 눈을 부릅뜨고 고기가 있을 법한 자리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꽂기 시작한다.


2. 김장무

겨울철 김장김치 속에 든 커다란 무는 그 맛이 일품이다. 방금 가마솥에 한 밥과 김장무 그리고 아궁이에서 구운 김만 있으면 환상적인 맛이다. 한겨울 김장무는 춥고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마당에 묻어 둔 장독에서 꺼내야 한다. 엄마는 커다란 대접에 김장김치와 무를 가득 담아온다. 먹음직스럽다. 침이 넘어간다. 우리 형제들은 커다란 무를 각자 한 개씩 젓가락에 꽂아놓고 먹기 시작한다. 언니는 무를 아주 크게 베어 문다. 나는 생각한다. 제발 조금씩 먹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추운 바깥에 엄마가 또 금방 무를 가지러 나가야 하는데....

 

3. 소고깃국

엄마는 소고깃국을 끓일 때 칼로 무를 비스듬한 모양으로 쳐서 넣고 끓인다. 난 이 모양이 반듯한 사각형보다 맛있어 보여 좋다. 엄마의 예술적 감성이 보이는 듯하다. 난 사실 물에 빠진 고기는 별로지만, 엄마가 안방으로 냄비채 들고 와서 고깃국을 나누는 광경을 자세히 지켜본다.  할머니, 아버지, 큰오빠에게는 각자 한 그릇씩, 그리고 고기를 가득 담는다. 작은 오빠와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고 동생은 아직 어리다. 이제 고기는 잘 안 보이고 무만 가득 담긴  마지막 국은 엄마와 언니의 몫이다. 고기는 별로 안 보여도 엄마와 같이 먹는 언니는 행복한 얼굴이다. 나는 생각한다. 엄마는 왜 그냥 고기를 골고루 나눠먹지 않는 걸까.


4. 김치볶음밥

한겨울이다. 저녁을 다 먹은 우리는 아랫목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다. 아버지는 대구에 가셨다가 밤늦게 기차를 타고 집에 오신다. 늦은 저녁, 반찬이 마땅치 않은지 엄마는 부엌에서 김치볶음밥을 한다. 잠시 후 때깔만 봐도 기름이 촉촉하니 맛있어 보이는 김치볶음밥을 엄마는 프라이팬채로 조그마한 상에 올린다. 아버지가 맛있게 몇 숟가락을 드신다. 세 딸은 아버지의 밥상을 빙 둘러싼다. 그러면 아버지는 웃으며 몇 술을 더 드시고 배 부르다며 딸들에게 넘겨준다.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는 숟가락을 들고 일제히 달려든다. 아버지가 먹던 김치볶음밥은 유난히 맛있다. 우리는 숟가락으로 프라이팬에 눌은 것까지 박박 긁어먹는다. 나는 생각한다. 엄마가 만든 아버지의 김치볶음밥은 진짜 맛있다. 우리한테 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는 걸 보니, 엄마는 아버지를 진짜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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