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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Dec 02. 2022

매달렸던 그 나무

지금, 엄마는 없고 오빠만 있는 그 집.  그 집이 있는 왜관을 나는 자주 간다.  요즘  그곳의 농산물을 가지러 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작년 겨울쯤, 새언니가 고맙게도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거기에 이런저런 푸성귀를 키우고 있었다. 겨울이라 야채 가격도 가격이지만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직접 키운 것의 소중함이 있다. 그리고 어차피 농사란 것이 상품성이 있게 만들긴 어려워도, 혼자 먹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양이 생산되는 것을 알고 있다.



5월 어느 날, 밤늦게 왜관에 도착했다. 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문안인사를 하듯이 하우스에 가려고 대문을 열었다. 그 대문을 열면 뒷동네로 연결되는 길과 바깥마당이 붙어있다. 대문을 여니 눈에 들어오는 첫 광경은, 바깥마당 가장자리에서 큰오빠가 그릇을 들고 산딸기 덩굴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었다. 웃기는 모습이다. 보통, 내가 아는 오빠는 가만히 앉아서 시켜서 받아먹는 사람이다. 뭘 먹겠다고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닌데,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 오빠, 뭐하노? “

오빠는 약간 멋쩍어하면서 말한다.

"따서 샐러드를 해 먹든지..."

"아니지. 이런 건 매달려 바로 따먹는 재미가 있는 거지."

나는 그 열매들을 보고는 흥분이 돼서 덩굴에 매달렸다. 산딸기를 따서 곧장 입에 넣으며, 동시에 고개를 돌리니 산딸기 옆에는 새까만 오디도 너무 많이 열려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쁘다.

"이게 웬 횡재냐."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고 곧 출발도 해야 하고. 양쪽 나무에 번갈아 매달리기 시작했다.

"니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니한테 시킬걸..."

"난 도시에서도 이런 나무를 보면 막 매달려 따고 싶더라. 늘 나무에 매달리던 습관이 있어서 자꾸 손이 가데."

그런 나를 보며 오빠가 말한다.

"어느 날, 마루애서 보니까 처음 보는 아지매가 바구니까지 들고 여기에 매달려 산딸기를 따고 있더라. 그래서 - 보소, 몇 개 따 먹는 건 괜찮지만 그건 주인이 있는 건데 바구니는 너무 하잖소? -라고 했더니 저 고개 위로 그냥 가더라."

"ㅋㅋ 나만큼 이런 열매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네. 이 나무가 여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있으니 아무나 따도 되는 줄 알았나 보네."


어릴 적, 난 우리 집에 있는 나무 중에서도 안마당 우물 옆에 있는 애추 나무를 진짜 좋아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산사나무를 사랑했듯이 난 그 나무를 진짜 사랑했다. 그 나무에는 아주 단단하고 검붉은 듯 푸른 빛깔의 작은 크기에 그리고 엄청난 신맛과 단맛이 나는 열매가 달려 있었다. 나는 아직 익지도 않은 열매를 따느라 초여름부터 그 나무에 몇 번이고 올라가곤 했다. 그 맛이 너무 좋아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송충이 비슷한 아주 따끔거리는 벌레, 풀쐐기에 쏘여도 난 아랑곳하지 않고 여름 내내 매달려 있었다.  4학년 여름, 갑자기 나는 공부를 하러 대구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애추 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 나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해서 매달렸던 것도 순식간에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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