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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Oct 02. 2022

기다리지는 않을 거 같은데...

요즘, 나는 출장을 가는 남편과 자주 동행한다.

대구를 는데, 큰오빠가 작은 외삼촌이 아파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내게 별다른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작은 외삼촌이랑 내가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은 엄마도 돌아가신 뒤니까 오히려 그나마 있던 어떤 끈마저도 끊어진 듯했다.

남편이 볼일을  보고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불현듯 외삼촌의 병문안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어른들의 병문안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사람인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문상을 가는 것보다는 얼굴을 한번 더 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흔쾌하게 동의를 하니, 나는 병원에 전화를 했다. 코로나 때문에 혹시나 했더니 병문안이 가능하단. 한참을 달려 주차를 하고 병원 안으로 가니 안내원이 입구 쪽의 방으로 들어가 기다리라고 .  방에서 투명판을 사이에 두고 면회를 하는 거란다. 외삼촌이 벽을 사이에 두고 마스크를  나를 알아볼 수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상한 병문안이 아니다.

잠시   안내자는 외삼촌이 내려오기 귀찮아한다고 병실로 올라갈 거냐고 물었다. 올라가도 되는    방으로 안내한 걸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도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뭔가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병실로 올라가려면 코로나 때문에 비닐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귀찮아졌다. 점점 싫어지는 조건들이 늘어난 셈이니,  남편에게 말했다.

"가지 말까?"

"기다리실 건데 어떻게 안 가노?"

'나를 특별히 기다리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리고 그 비닐복도 한 사람당 3천 원이라 하는데 현금이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드결제는 된단다. 어쩔 수 없는 기분으로 병실로 올라갔다. 뭔지 모르게 일이 점점 커지고 복잡해지는 기분이라 영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병실에 들어서니 키가 큰 외심촌이 환자복을 입고 새우등처럼 구부린 채 옆으로 누워있다. 그 나약한 모습에 나는 갑자기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외삼촌의 손을 덥석 잡고 안부를 물으며 그 손을 어루만지기까지 했다. 외삼촌은 병원까지 오게 된 경위를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린다. 서로가 마스크를 끼고 있어 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우리는 한참을 마주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아까는 내려오기 귀찮다던 외삼촌이 바깥공기를 쏘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외삼촌을 휠체어에 태워 병실 밖으로 나오니 안내하는 사람이 담배를 건넨다.

"아니 환자가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아드님이 주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이니 하루에 한 개만 피우기로...."

아직은 찬 바람이 부는 병원 밖 정자에서 이런저런 중얼거림과 함께 외삼촌은 아주 맛있게 담배를 피우신다.


1978년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키가 큰 외삼촌은 아침마다 빵이 든 통을 자전거에 뒤에 싣고 언덕을 걸어 올라오곤 했다. 교복을 입은 나는 그런 외심촌을 보고 보일 듯 말듯한 목례를 하고, 외삼촌은 남자답지 않은 아주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거렸다. 아침마다 그 어색한 광경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며칠 뒤 외삼촌의 임종 소식이 들려왔다. 누군가가 기다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들 그렇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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