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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Apr 23. 2022

그 무엇

그러나 한 순간, 윤곽을 분명히 구별하지도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못한 채 갑자기 매혹된 그는, 마치 저녁나절 습기 찬 공기 속을 감도는 장미 냄새가 우리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하듯이, 지나는 길에 그의 영혼을 크게 열어 준 악절 또는 화음을 -그는 어느 것인지 알지 못했다.-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처럼 스완이 어떤 혼란스러운 인상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음악을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인상은 오로지 유일하게 음악적이고 영역이 좁은, 다른 어떤 인상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완전히 독창적인 것이었다. 이런 인상이란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말하자면 '시네 마테리아'인 것이다..... 악절은 금방 그에게 특별한 쾌락을, 그것을 듣기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쾌락을 줬는데, 악절 외 다른 어떤 것도 그런 쾌락을 맛보게 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악절에 대해 미지의 사랑과도 같은 그 무엇을 느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인류 최초의 그림은 라스코 동굴의 벽화, 그럼 인류 최초의 음악은 뭐였을까.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였을까. 아기의 울음소리, 너와 나의 목소리였을까. 뭐였을까. 프루스트의 현미경을 갖다 댄 듯한 음악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놀랍다. 이런 음악에 대한 느낌을 말한다는 건 자신만의 경험과 무의식 저편에 가라앉아 있는 서랍 속을 뒤져야 하는 것만 같다. 그 서랍이 일순간에 확 열려버릴 때 감동은 일어나지만, 누군가와 같이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진정으로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 맞을까. 이건 아마도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랫동안 음악을 잊고 살았는데 엘피, 카세트테이프, 시디, 스트리밍 등의 빠른 변화 속에서 길을 잃고 다른 것을 보고 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음악이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세상이 나를 머무르게 하니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창가에 앉아 눈도 보고 비도 보고 햇빛도 보고, 달도 보고 바람도 본다.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그리고 산 위로 천천히 올라가 벤치에 앉는다. 바람이 내 몸과 마음을 지난다.


1. 둥둥

가요나 팝송을 들으면 내 귀에는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김동률의 노래 가사가 참 좋다고 하지만 난 도통 가사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 멜로디를 따라 마음이 자꾸 다른 데로 간다. 한 번 들어보리라 작정하고 가사에 온 힘을 주고 들어 보기로 한다. 그러나 시작하고 잠시만 주의하지 않으면 어느새 다른 길로 들어선 나를 만난다. 한두 번이 아니라 늘. 그러고 보면 난 요즘, 가수가 가사를 뭉개듯이 읊조려 멜로디만 둥둥 떠다니는 그런 음악을 꽤나 좋아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멜로디가 이끄는 세계를 한동안 이리로 저리로 기분 좋게 자유로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마음대로 한가롭게 둥둥 떠다니게 해주는 그것이 참 좋다.


2. 매끄럽게

도자기 작업을 할 때, 나는 미리 뭘 만들지 작정을 하지 않기를 즐긴다. 그냥 적당히 흙을 자르고 밀고 치대면서 흙과 만나는 내 손이 이끄는 느낌을 찾아간다. 그 느낌이 잘 안 떠오르면 흙을 더 주무르고 또 밀어 본다. 그런데 여기서 음악은 필수조건이다. 나는 음악이 가자는 대로 이끄는 대로 엎치락뒤치락, 하나의 형태를 찾아간다. 음악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그것도 아주 매끄럽게. 음악과 흙이 이끄는 미지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3. 깊숙하게

창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등 뒤에서 들리는 음악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이게 뭘까. 마음이 묵직해진다. 고민이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인지 체크해 보지만,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내가 느끼는 것은 무거운 질량을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울컥함이다. 무엇과 무엇이 만나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일까. 익숙한 멜로디가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에 담겨, 깊숙하게 숨겨진 가려진 나의 무의식의 세계를 터치한다. 사람의 목소리는 뭘까. 나는 노래하는 그의 삶을 느끼는 것일까. 그의 삶에는 수많은 시간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그의 목소리가 그런 삶의 주름을 담아 나의 깊고도 깊은 그곳을 두드린다. 특별한 쾌락을, 그것을 듣기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쾌락을, 미지의 사랑과도 같은 그 무엇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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