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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Sep 06. 2023

E면서 I라 그렇습니다만?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요즘은 세대를 막론하고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혈액형을 묻던 세월을 관통한 이 질문 한마디에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정의가 내려진다.

'내향형이고, 경험을 중시하는구나. 감성도 풍부하고, 즉흥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네?'


알파벳 몇 가지 조합에 따라 16가지 성향으로 분류되는 덕에 혈액형을 물어볼 필요도, 어떤 성향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어지는 요즘이다.


 나에게는 두 가지 성향이 존재한다. ESFP와 ISFP. 외향적임을 나타내는 E성향과 내향적임을 나타내는 I성향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특별한 사람이다.



친한 사람과 함께 있거나 모임에 참석하면 E성향이 짙다. 주목받고 싶어 하는 관종끼가 다분한 데다 나로 인해 즐거워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SNS의 재밌는 패러디를 외우고, 학생들의 부탁에 축제 무대에 서는 걸 꺼리지 않으며 수업시간엔 아이들을 재밌게 해 주고픈 욕심에 땡칠이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한다.(연기란 걸 아이들이 몰라서 억울하다;;)


하지만 혼자 있게 되면 정확하게 I로 돌변한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향형이라는 나의 대답에 흠칫 놀라곤 하지만 나와 정말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I의 성향도 짙게 깔려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테다.


I성향의 나로 말하자면 한 번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가는 건 무리요, 침대는 내 몸과 한 몸일지어니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면 속으론 쾌재를 부르고 누구에게든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자리를 하고 나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방방 뛰는 술집 보단 차분한 카페가 더 좋다. 속 깊은 얘기를 남에게 하는 걸 싫어하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엔 형식적인 관계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나는 타인과의 관계보단 본인에게 더욱 집중하고픈 I의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나의 지난 10대와 20대를 생각해 보면 금쪽이가 따로 없었다. 시도 때도 없는 장난과 잠시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몸뚱이, 이 사람 저 사람 누구든 나와 만나면 몇 시간 안에도 의형제가 되곤 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방에 있는 시간이 아까워 다양한 모임에 가리지 않고 나서며 스스로 핵인싸로 불리우길 자처했던 몸이었다. 그러니 선배들에게는 말썽꾸러기의 이미지가 강했고, 동기들에겐 너무 재밌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E성향의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성향이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파워 E의 청춘을 보냈다.


지인들과 MBTI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본인도 사실은 E성향이 강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I의 성향으로 변해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과거의 나로부터 많이 침착해지고 잔잔해진 이유가 존재한다. 몇 번의 인간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그로 인한 실망으로 타인에게 거는 기대가 낮아졌다. 그들은 주목받는 나를 못마땅해하고 인정해주지 않으려 애를 썼다. 기쁨을 나누고 싶어 이야기하면 시기와 질투의 화살이 내게 날아왔고, 슬픔을 나누고 싶어 깊은 이야기를 꺼내면 뒤에서 조롱거리나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사회에서 만나는 모두가 그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흉을 보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나와는 다르다고 하여 그 사람들을 욕하고 싶진 않지만 확실한 건 다른 성향의 사람들 틈에 끼어 나의 감정을 망치게 둘 순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나를 더욱 돌아보게 되는 선택적 I가 되어버린 가장 크고 확실한 이유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여전히 E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웃게 만들어 주고 싶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가슴떨림을 즐기며 어떤 모임에서든 리더가 되고 싶다. 학생들에겐 인기 많은 교사가 되고 싶고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로 인해서 즐겁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들의 감정 때문에 나의 감정이 흔들리는 상황을 줄여나갈 것이다.

타인이 보는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비추어 질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채워나가며 나의 조그마한 성장에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나를 질투 하는 사람을 보듬을 것이다. 보듬다 지치면 과감하게 끊어낼 것이다. 다양한 인연에 정을 두지 않고 내게 도움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대들이여 미안하다! 지금껏 동료라는 이름으로, 또는 같은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 주던 모든 것들을 냉정하게 쳐낸다고 하여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단지 당신들과 성향이 다르고 조금 더 나답게 살고 싶은 선택적 I의 성향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당신들은 당황스러울 테지.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훗, E면서 I라 그렇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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