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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Sep 14. 2023

별이 된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서이초 선생님을 비롯하여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또는 누군가와 마찰로 인해 세상과의 인연을 가슴에 품고 하늘에 별이 된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매일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가끔씩 가슴에서 꺼내어 보겠습니다. 당신께서 남기고 간 조그마한 불빛이 대한민국 아이들의 올바른 교육을 위한 커다란 횃불이 되길, 꺼지지 않는 정열적인 불꽃으로 타오르길... 남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당신만큼 아이들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그곳에선 안녕하세요.



요즘 교사들의 자살 소식이 잇따라 이어진다. 우려하던 베르테르 효과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젊은 교사부터 충분한 경력이 있는 교사까지 아이들의 문제행동에, 부모들의 터무니없는 악의적인 괴롭힘에, 아무리 호소하고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 무책임한 관리자나 윗사람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외딴 별로 지고야 말았다.


선생님, 내가 어렸을 적 기억하던 선생님은 너무도 무서운 존재였다. 쌍욕을 들어 먹거나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기억은 예사이고 문제아이의 부모님은 자기 집 드나들듯 학교에 불려 와 선생님께 혼나가며 눈치보기 바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내가 기억하던 선생님이란 본인의 의지대로 교육을 정당화시키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은 제대로 된 훈육은커녕, 오히려 학생에게 교사들이 구타당해 실신당하는 사례까지 일어난다고 하니 참으로 교육하기가 어렵다. 사실은 교육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환경에 직면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교육이 올바르고 정당한 방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본인들범주'에 벗어나 기분이 상했다 민원으로 대응한다. 공론화시켜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학교에게 힘을 과시하려 든다. 교사들이 점점 학생에 대한 교육을 놓게 되는 이유이다.


물론 예전 문화로의 무조건적인 회귀를 바라는 건 아니다. 모욕이나 신체의 구타 속엔 분명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었을 테다. 미성숙한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선생님의 기준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을 테니 그럴 때마다 어른이 가하는 고통을 참아내기란 매우 힘들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반드시 필요로 한다. 구타나 체벌로 학생들에게 비정상적으로 고통을 주자는게 아니고, 정확한 방향의 교육에 대한 정당성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학교는 공동체 생활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함께 모여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같은 반에서 수업을 받고 같은 시간표로 하루를 보낸다. 화장실도 공용이며, 밥도 함께 먹는다. 이런 공간에서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정,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서의 배양되는 '함께하는 마음'이 지식 암기보다 우선되거나 함께 가야 한다. 마땅한 교육이 자꾸 외부의 압박에 의해 막힌다면, 해당 학생은 물론 교육을 원하는 아이들까지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외면된다. 대한민국이 OECD 57개 국가 중 행복률이 가장 최하위를 차지하는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포기하고 도망가버리며 대립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 교육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다. 그러니 더욱 아이들의 아비투스가 형성되기 전에 배워야 하는 교육을 놓치지 않고 받아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더욱 바꿔내기 어려울 따름이다.


요즘의 부모들은 과연 어떤 생각일까? 애를 보면 부모가 보인다고? 나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문제를 반복해서 일으키는 학생의 학부모는 소위 말하는 '진상'이라는 사실을. 콩 심은 데 어떻게 콩이 안 날쏘냐, 팥 심은 데 어떻게 팥이 안 날쏘냐, 시들어 피우지 못할지언정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예쁜 민들레가 필래야 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고 조그마한 씨앗을 예쁜 꽃으로 피워 학교로 보내는 부모님들이 많다. 잘못된 행동엔 따끔한 교육을 원하고 응원의 문자나 전화로 용기를 북돋아주며 교사와 '함께' 아이들의 교육을 이끌어 가고자 하는 그들을 우린 교육공동체 라고 한다. 스승의 날이나 생일이 되면 꼬깃꼬깃 예쁜 손 편지를 전달하는 아이들을 보거나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 제자를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아이들의 잘못은 없다. 이건 미성숙한 아이들을 더 이상 교육하지 못하는 환경으로 만들어 버린 어른들이 바꾸어 나가야 할 문제이다. 아주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세대를 막론하고 어떻게든 교육의 패러다임은 변화해야 된다. 더 이상 교육에서 소외받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길, 별이 된 당신들의 희생이 그 의미를 잃어 무채색의 바탕으로 변하지 않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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