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미 Dec 17. 2023

'서울의 봄'속에  정의는 없었다.

하지만 희망은 청년들의 가슴속에...

 개봉소식을 접하자마자 보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영화 '서울의 봄'을 보러 가게 된 건, 기나긴 입시 전쟁을 치르고 귀가한 둘째의 제안 덕이었다.

 만으로 이제 막 갓 스물을 넘긴 녀석이, 그것도 역사에는 관심이 일도 없는 줄 알았는데...

 기말 시험기간이라 학원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여서 6개월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딱히 마주할 여유가 없어 둘째에게 미안하던 터였다.

 

 마침 서울에서 고생하던 동생이 왔다니까 잠깐 얼굴 보러 들른다는 첫째와 시간을 맞춰 토요일 밤 10시,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 장소로 극장을 찾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소문대로 관객이 많았고, 어린 자녀들을 대동한 가족들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상영시간을 코앞에 두고, 최초로 12,12 쿠데타를 소재로 다루었다는 영화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이미 역사를 통해 그 결말을 다 알고 있는 관객들을 어떻게 흡인력 있게 끌어당길지 궁금증이 일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 여러 가지 입소문을 통해 널리 퍼진 신드롬처럼 우리 역시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불쑥불쑥 끌어 오르는 분노를 현재 진행형의 형태로 경험하게 될는지... 약간의 기대와 셀렘을 간작한 채, 역사 속 그 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을 살해하는 바람에 국가의 핵심 권력에 공백이 생기자,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광(전두환)은 이 모든 권력을 아우르는 합동수사본부장으로 발탁되어 순식간에 국가의 중심세력으로 우뚝 서게 된다.

 

 모든 정보와 지휘권을 쥔 채, 계엄 상태인 대한민국에서, 그는 그동안 공을 들여, 군 곳곳에 심어놓은 하나회라는 사적인 조직을 치밀하게 움직이며 마침내 국가를 그의 손아귀에 장악하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물론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의 야욕을 눈치챈 군 참모총장 정상호(정승화)수도방위사령관 이태신(장태완)과의 갈등으로 전두광은 변방으로 좌천될 위기를 맞지만, 이는 그에게 쿠데타를  서두르는 빌미를 제공했을 뿐,  쿠데타에 대한 모종의 정당성까지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1979년 12월 12일부터 다음 날까지 이어졌던 반란군과 진압군 사이의 9시간의  숨 막히는 서울탈환, 아니, 대한민국 탈환 적전은 1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무색하리만치 순식간에 흘러갔고, 그에 못지않게 너무 짧 시간에, 너무 어이없이 대한민국 정부가 반란군의 수중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미 정해진 결말을 알면서도 구석구석 녹아있는 하나회라는 점조직에  어이없이 잠식당하는 군조직에  안타까워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 중에 어쩌면, 혹시나 하는 가느다란 희망이란 끈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당혹스럽기도 했다.


'서울의 봄' 속엔 그 어떠한 정의도 명분도 없었다.

이것이 나라를 위하는 이라는, 흔히 왜곡된 인물 속에서 찾아봄직한  삐뚤어진 자기 체면조차 찾아볼 수 없이, 그저  비어있는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추악한 탐욕의 화신과 그 주위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고 모여드는 하이에나 무리들만 난무할 뿐...


 하지만 정작 우리들을 열받게 한 분노의 대상들은 이미 악인으로 낙인찍힌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 어떠한 군인정신이나 국가에 대한 일말의 충성심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자기 자신의 사익과, 책임소재만 떠올리며 매번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리는 불통의 지휘체계의 우두머리들과 개인의 의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그저 지휘관의 사병으로 전락한 군인들...


 어쩌면 19여 녀간의 유신체제를 아어오던 박정희는 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얼어붙게 만든 것도 모자라,  자신이 예상했든, 아니든, 죽었어도 대한민국을 군인이 지배하는 만드는 신군부 정치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그 또한  그의 뒷일을 염려했는지 자신에게 성을 공공연히 드러낸 전두환을 총애하며, 군대에있어서는 안 되는 사조직인 하나회를 오히려 적극 장려하며 자신의 뒷배로 키우려고 했으니 말이다. 피만 섞이지 았다 뿐이지 그 아래에서 보고 배운 전두환에로의 권력 세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로 쿠데타의 주역들이 승리를 자축이나 하듯 환한 미소를 띠며 은 단체 사진을 보며, 또한 그들이  이후에도 그  어떠한 처벌조차 받지 않고 승승장구하며 천수를 누린 사실들을 자막으로  목도하고 있으려니,  난 더 이상 아래 세대에게 해 줄  말이  없다는 자각허탈감이 들었다.


 삶에 힘겨워하는 자식들에게 조차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이며 결국에는 '정의'가 이긴다고, 힘내라고, 감히 입에 올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개인들의 추악한 암투의 결과로 점철된 역사와 그들에 의해  쓰인 기록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 때 우리를 다시금 일으키는 원동력의 하나였던 정의에 대해 분간   어떠한 말도 내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낙담한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무심한 듯 내뱉던 작은 아들의  마디였다.

"아직 못 봤는데, 1987이 보고 싶네."

 영화를 보고 나서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아들은 우리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시대순으로 나열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택시 드라이버'봤다며 1987년 6월 항쟁을 모티브로 한 영화 '1987'을 언급했다.


 그래, 희망은 이제 청년에게로 옮겨져야 한다.

 아직 깊이 있는 의식은 아니지만 청년들이 이런 영화를 보며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쪼그라든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설레발일지 모르지만, 청년들의 마음속에서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은, 진정 그들을 위한 '대한민국의 봄'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같은 과거에서 탈출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