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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an 27. 2024

마리 앙투아네트와 영부인

영부인의 디올 사건을 바라보며

 

 요즈음 뜬금없이 200여 년 전의 한 여인이 연일 화제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마리 앙투아네트'로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프랑스 왕비이다.


 그녀가 소환된 건 최근 여당 비대위원으로 영입된, 소위 자신의 신념에 따라 바른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한 때 야인사였던 한 인물의 입을 통해서였다.


 한 역사학자의 변이라며 그는 프랑스혁명이 사실은 사치스럽고 성적으로 난잡한 한 왕비에 대한 민중의 감정적 분노의 폭발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에 빗대어 최근 불거진 영부인의 명품백 수수에 관해 언급하며  감정적으로 분노했을 국민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하지만 그의 말은 영부인을 설득하기는커녕, 여야를 비롯해  각종 여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각자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급기야 '마리 앙투아네트'를 재해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차고도 넘치는 이유들로 현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에선 히 그 누구도 입에 올리기 조차 저어하는 영부인의 이름을, 이제 막 여당에 발을 담근 러온 돌인 그가, 그것도 희대의 팜므파탈로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것에 이어 사과까지 거론한 것에 대해 통쾌함을 넘어 묘한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것이다.


 반면 여당 내부에선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짜인 각본에 따른 함정 몰카 범죄에 걸려든 가련한 피해자일 뿐인 영부인을 감히 희대의 악녀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는 것도 모자진실된 사과까지 요구하는 형국이라니...


 반면 여당에 호의적인 또 한 편에선 마리 앙투아네트를 새롭게 재해석하기에 바빴다.

원래 성정이 곱고 예술을 사랑했던 그녀가 여러 가지 음모와 가짜뉴스에 의해 악마화되고, 급기야 혁명세력들이 민중을 선동하기 위해 이를 악용했다는 논외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분명, 마리 앙투아네트와 현 영부인은 다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스페인, 동유럽, 독일 등지를 아우르며 약 600여 년을 이어온 유럽의 유서 깊은 합스부르크 가문 출생으로,  최초의 여제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호를 받으며 온실 속에서 자란 그녀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다소 와전된 말로 오해받을 정도로 세상물정 모르는 귀족사회의 한 일원으로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야 말로 시대의 희생양이었는 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를 시시때때로 넘보신생 강국 프로이센이 영국과 동맹을 맺자, 어쩔 수 없이 오랜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야 했던 당시 조국의 현실 앞에서,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14살의 나이에 자신이 나고 자란 오스트리아의 모든 것을 버리고 병약한 언니대신 낯선 나라의 왕비로 팔리듯 시집와야 했다.


 애를 쓰며 프랑스에 적응하려 했던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오랫동안 원수로 지낸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가 하는 모든 행동이 못마땅했고 성에 차지 않았다.

 

 국가 재정상태 또한 최악이었다. 이미 선대부터 이어온 왕실의 호화로운 생활과 온갖 전쟁비용으로 재정은 언제 질지 모르는 뇌관이었고 급기야 적국 영국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함으로써 그녀 당대에 재정파탄과 물가폭등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에 분노한 민중은 비난의 화살을 적국출신 왕비에게로 돌렸다. 밀가루값의 폭등으로 한 달치 급여로 겨우 빵 한 조각을 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자 물가에 민감한 부녀자들까지 빵을 달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세간에 떠돌던 모든 루머들이 입과 입을 통해 기정사실화되었다. 앞서 루소가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는 그녀가 한 말로 둔갑되었고 재판에까지 붙여진 희대의 다이아몬드 사건은 그녀의 무죄가 밣혀졌음에도 아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주문했다고 하며 중간에 목걸이를 가로챈 사기꾼 부부에게 동정론이 일 정도였다. 생활이 피폐해진 민중에게 더 이상 왕비의 진실 따윈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조국을 버리고 오스트리아로 망명하기로 한 국왕 부부가 현장에서 체포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이르자, 민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국 민중은 수 백 년간 충성을 바쳤던 그들 주인들의 목을 자름으로써 모순 덩어리인 구체제(앙시엥레짐)의 상징인 왕의 존재를 지워 버리고 공화정을 택했다.


 심성이 곱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여느 귀족들처럼 그녀가 보고 배운 대로 생활했을 뿐이라고... 시대의 희생양이었다고... 아무리 그녀 편에서 변명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역사의 심판대에선 결코 무죄일 수가 없다.

순진할 만큼 현실에 무지한 것도, 국민의 형편을 피지 않고 여느 귀족처럼 평범하게 생활한 것도 그녀이기에 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한 나라의 왕비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찌감치 처세와 권력의 핵심을 미리 파악할 정도로 영리하고, 어머니께 물려받은 남다른 감각으로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 또한 타고난 우리의 영부인은 어떤가? 그녀가 과연 명품가방의 의미를 몰랐을까?

 대통령과 온 여당이 발벗고 김건희특검을 필사 방어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마리 앙투아네트는 목걸이 사건때 직접 재판을 걸어 그녀의 무죄를 밝히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사실 명품가방 수수건은 아무 일도 아닌지도 모른다. 차고 넘치는 거대한 사건들 속에서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인 저 사건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조차 코미디로 비칠 뿐이다.



 

 요즈음, 아들만 둘이라 늘 딸 가진 부모를 부러워하던 나는 새삼 딸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른다.

본연의 너의 모습을 사랑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너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뜯어고친 외모와 날조된 경력으로라도 권력의 핵심을 사로잡아 성공만 하면 된다고, 어떠한 불법을 저질러도 권력을 지닌 배우자만 얻으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롤모델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세상에서 난 딸들에게 감히 그 어떠한 말도 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지겹도록 내뱉은 말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그들의 행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법 앞에서 모두 평등할 수 없다.
공정과 상식은 우리 국민들에 속한 언어가 아니다.


 다만 그 칼날은 그들에게 향해야 할 것이다.

더욱 날카롭고 예리하게...


미우나 고우나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 늘상 존경해야 한다고 배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자 영부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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