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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May 26. 2024

마라톤의 유래는 지어낸 이야기다?

마라톤 전투, 그 뒷이야기(2)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은 육상 경기 중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기이다. 42.195km라는, 다른 경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긴 거리를, 그것도 경기 트랙을 벗어나 일반 도로를 달려야 하므로 선수들은 수시로 주변의 소음과 온도, 일정하지 않은 경사등 다양한 변수들과 싸우며 기나 긴 여정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마라톤은 이미 하나의 스포츠 경기라는 개념을 너머 자신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지의  표상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마라톤'의 유래

 

이러한 '마라톤'경기의 유래에 대해 역사를 기반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 이야기는 바로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인 '마라톤 전투'에서 비롯되었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의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기적적으로 물리친 아테네는 전령 페이디피데스로 하여금 이 기쁜 소식을 본국 아테네에 전하게 다.

 명령을 받은 페이디피데스는 마라톤에서 약 40km 떨어져 있는 아테네로 쉬지 않고 달려가서 시민들에게 승전보를 전하고는  자리에서 지쳐 쓰러져 죽고 다. 이에 감동한 아테네 시민들이 전쟁의 승리와 한 병사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스포츠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마라톤의 유래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지금껏 마라톤 전쟁을 서술한 역사서로 유명한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플루타르코스의 책들 그 어디에서도 마라톤 경기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페이디피데스는 그 당시 아테네군의 전령임은 틀림없었으나 그가 명령을 받고 달려간 곳은 아테네가 아닌 스파르타였고 거리도  240km로 마라톤 경기 거리보다 훨씬 더 길었다.

 페이디피데스는 페르시아 군대가 마라톤 근처 해안에 상륙하자 구원병을 요청하기 위해  아테네를 출발해 약 이틀 만에 스파르타에 도착했는데 때마침 종교행사 중이었던 스파르타는 즉각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라톤 유래에 대한 이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올림픽 위원회는 큰 고민에 빠졌다.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상징하면서 무언가 흥행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종목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침 프랑스의 문헌학자 미셸 브레알이라는 사람이  고대 그리스 역사 속, 마라톤 전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에게 새로운 종목을 제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마라톤의 기원이었다.


 당시 전 세계가 사회주의, 군국주의, 전체주의로 혼란스러울 때, 이에 대해 고민하던 유럽은 청년들에게 어필하는 데 있어서 고대의 한 애국 청년의 죽음을 기리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고대 그리스 역사의 한 장면을 각색하여 그럴듯한 밑밥을 깔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라톤의 거리가 42.195km가 된 사연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이 벌어진 마라톤과 아테네까지의 실제 거리는 약 36km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마라톤 거리42.195km로 정해진 것은 어떤 연유에서 일까?

 

 올림픽 초기에  40km 내외에서 다소 유동적이었던  마라톤의 완주 거리는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을 계기로 변화를 맞이한다.

 런던 올림픽 당시, 처음에는 주 경기장을 출발지점으로 해서 경기 거리를 42km로 정했는데, 영국 왕실측에서 마라톤의 출발 모습을 보고 싶다며 출발점을 윈저궁 앞으로 옮겨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 그 거리만큼 늘어난  42.195km를 달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정식 거리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당시 모든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영국의 존재가 스포츠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에서의 마라톤

 

 한편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에서그때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마라톤 경기를 보이콧한다는 있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이란은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에 꾸준히 참여해 왔고, 다만 1974년 이란에서 열린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는 자국에서 개최하는 만큼 마라톤 종목을 제외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모두는 지금 마라톤 중...

 

 근대 올림픽 초기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등 많은 부침을 겪었던 다른 올림픽 종목들에 비해  마라톤은 오늘날까지도 올림픽의 꽃으로 당당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마라톤의 위상 이면에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가장 잘 살린 감동적인 스토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인간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려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라톤이라는 종목 자체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울림은  크다.

 기나 긴 고통 속에서 발휘되는 인간의 인내와 열정은 우승자뿐만 아니라 참가자와 이를 지켜보는 관객 모두를 감동시키마치 우리 모두가 인생의 시련을 함께 겪고 있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대, 지금 고통스러운가?
우린 이제 막 마라톤의 절반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늦을 순 있지만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은 결승점에 도달하여 승리를  맛보게 될 것이다.


마치 어느 고독한 마라토너가 인생의 어느 가파른 지점에서 우리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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