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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Dec 20. 2024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

소설속에 나타난 스페인 내전의 참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20세기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동명의 영화도 꽤  인기를 끌었는데 여주인공 마리아역을 맡은 잉글리드 버그먼이 남자 주인공인 로버트로 분한 리 쿠퍼와 처음으로 키스할 때 코의 위치로 어디다 둬야 하는지 묻는 장면은 뭇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명장면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렇듯 그저 전쟁 중에 꽃 핀 애틋한 로맨스 이야기로 각인되었던 이 영화의  원본 소설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사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스페인 내전의 상을 그려낸 전쟁소설에 다름 아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 1939년까지 스페인 내에서 일어난 전쟁을 일컫는다.

 당시 스페인은 여전히 왕정체제를 유지한 채, 군부와 가톨릭 세력등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이 결탁해 모든 이권을 독차지하며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고 있었다.

 

 극도의 경제적 빈곤에 내몰린 노동자를 포함한 스페인 대중들은 급기야 왕정의 부패 척결과 독재 타도를 외쳤고, 우여곡절 끝에  실시된 선거에서 왕정을 반대하고 공화정을 지지했던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승리하며 마침내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군부는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당시 가장 영향력이 프랜시스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정부군인 공화파와 쿠데타 세력인 군부 간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은 단지 스페인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등  여러 이념들이 난무하던 시대였고, 스페인 내전은 사회적,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러한 이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충돌하는, 한마디로  온갖 이념들의  각축장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향방이 미칠 파급력 또한 적지 않았으므로  전 세계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내전을 제2차 세계대전의 리허설이자 전초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는데 이는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등 나치즘과 파시즘을 등에 업은 국가들이 군부 쿠데타 세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었고 정부 공화파는 소련의 도움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 프랑스, 미국등은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으로 표면상으로 중립을 외치며 소극적, 간접적 지원에 그쳤다.

 

 하지만 국민이 뽑은 공화정 정부가 파시스트 세력인 군부에게 유린당하는 현장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세계적 여론이 지구촌 곳곳에서 자원한 민병대들을 속속 모여들게 했고, 이들은 국제 의용군으로 불리며 파시스트 력이 대항했다.

 이때 조지 오웰, 앙드레 말로, 생택쥐페리 등 세계 각국의 지식인들도 많이 동참했는데 헤밍웨이 또한 이 전쟁에 참가한 경험을 통해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전쟁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난 1937년 5월, 미국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던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자신이 사랑하는 스페인을 파시스트들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스페인 내전에 자원한다.

 상부로부터 적군의 이동 통로인 다리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주인공이  작전을 도와줄 인근 게릴라 부대를 찾아오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독일에서 지원하는 최신식 무기들, 특히 전투 비행기등으로 무장한 적군들에게 밀려  삼삼오오 흩어져 산속에 숨어서 지내는 게릴라들은 사실 제대로 된 군사훈련조차 받지 못한 평범한 민간인들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은 그저 세월과 경험으로 터득한 노련함만을 지닌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당시 공화파인 정부군은 수도 마드리드를 사수하며 시가전을 벌이고 있었고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간인 위주의 민병대들은 전세가 악화되자 저마다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산속으로 숨어들어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었다.


로버트가 합류한 곳은 대장역할을 하는 파블로라는  인물이 채 10명도 되지 않은 인원을 데리고 동굴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전쟁 전에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던 보통 사람들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어느새 자신의 이념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투사들이 되어있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전쟁은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삶의 터전과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잃고 목숨보존 마저 위태로워진 그들에게 다른 선택이 없었다.

 이념에 의해 첨예하게 둘로 나눠진 상황에선 어떤 대화나 타협의 여지는 없었고, 그저 죽고 죽이는 극한 상황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내전의 경우 같은 민족,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도 적이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양상은 훨씬 더 처참했다.


 로버트는 그의 임무수행을 위해 사흘동안 그들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의 사연을 듣게 되는데 특히 대장 파블로와 그의 여자 필라르, 그리고 로버트가 사랑하게 된 마리아 또한 전쟁이 남긴 상처들을 지닌 채 현재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민초들은 비록 현실이 힘겹더라도 자신의 삶을 묵묵히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 몰리게 되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떨쳐 일어설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근본 원인이 위정자들의 권력과 부의 탐닉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메마른 들판에 붙은 불처럼 걷잡을 수 없는 들불로 활활 타오르게 된다.


 이념은 그다음 문제다.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들고일어났을 뿐인데 어느새  양쪽 주도세력이 명명한 이름하에 저도 모르게 줄 세워진 꼴이다.

 사상들이 채 무르익기 전의  이념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어느 쪽이 집권하든 그 한계를 드러내며 애꿎은 민초들만 도구로 이용되어 죽어나갈 뿐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상황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첨예한 이념의 대립은 서로를 향한 증오심으로 치닫고, 이는 곧 서로를 죽이는  행위로 이어지며, 다시 한층 강화된 증오심과 살인을 반복하는 악순환 속에서 어느새 인간은 사라지고 잔인한 이념의 허상만 폭주하는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일까? 21세기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세계 도처의 전쟁 속에서 허울 좋은 명분아래 스러져가는 민초들의 삶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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