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번째 글
요즘 가는 길마다 연말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곳이 없다. 어딜 가나 크리스마스 트리부터 반짝이는 전구들, 선물이나 눈송이 모양 장식들이 한가득이다. 이렇게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르는 것은 달갑지 않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도 그다지 반길 만한 일은 아니라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 차디찬 날씨와 상반되는 따스한 연말 분위기는 언제나 내 기분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곤 한다.
며칠 전, 길에서 우연히 선물상자 모양의 장식을 보았다. 그 장식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Happy End of the Year!' 보통 연말에 무언가를 축하하는 영어 문구를 적는다면 'Happy New Year!'가 대부분일 텐데, 그 문구는 조금 색다르게 'Happy End of the Year'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문구가 좋았다. 내년에 행복하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연말을 행복하게 보내라는 의미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행복한 연말을 보내라는 문장을 직역해서 그렇게 쓴 것일 수도 있지만.
연말은 여러 모임이며 약속들이 많아서 가장 바쁘게 보내는 시기이면서도 또 가장 허비하게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연말이 되면 내 안에서 '내년부터'라는 속삭임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는 2024년부터 무언가를 시작하라고, 지금은 그냥 가만히 기다리라고, 조금 더 이대로 있자고, 그런 속삭임이 나를 유혹하려 든다. 그래서 내년부터 하자는 변명을 하며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일들을 미루게 되기도 하고. 사실은 지금 당장 시작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연말에는 내년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어 정작 올해의 마지막 시간들을 흘려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년에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내년에 맞춰서 계획을 세우고 내년의 의지를 불태우고 내년을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레 지금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이 2023년에 소홀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래의 나를 생각하느라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지 않게 되고,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 순간들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내년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2023년 12월 31일에서 2024년 1월 1일로 넘어간다고 해서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애초에 이 날짜라는 것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Happy End of the Year!'라는 문구가 정말 좋았다. 내년을 잘 시작하자는 메시지가 아니라, 올해를 잘 마무리하자는 메시지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그냥 넘겨 버리기 쉬운 부분을 짚어 주는 것 같아서다. 현재지향적이면서 '나'지향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