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번째 글
나는 며칠 전부터 오늘 할 일들을 잔뜩 생각해 놨었다. 오늘은 휴가를 쓰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 금 같은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나는 고민했었고, 계획을 열심히 세웠었고, 날씨나 다른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서 계속 수정해 가면서 최종 계획을 완성했었다. 오늘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집에서 요리도 하고, 뱅쇼도 만들어 먹고, 보고 싶던 드라마도 챙겨보고, 전시회도 가고, 글도 좀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 계획들 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운동을 하긴 했지만 아침엔 늦잠을 잤고, 점심은 대강 차려먹었고, 드라마는 틀지도 못했고, 전시를 보려던 계획도 취소했고, 글도 거의 쓰지 않았다. 계획을 지키는 대신 나는 이불 속에서 밍기적대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찾아오자 어딘가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너무 의지가 부족한 것 같아서다. 그리고 내가 너무 뜨뜻미지근하게 사는 것 같아서. 열정도 의지도 실행력도 체력도 없이 그냥 적당히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차가워지면 오히려 편할 수도 있는데, 불안한 마음에 그렇게 차가워지지는 못하고, 또 그렇다고 해서 뜨겁게 살지는 못하고, 그냥 미지근하게.
나는 뜨거운 사람들이 부럽다. 무언가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려고 마음먹을 수 있는 의지와 마음가짐이 부럽고, 그걸 실제로 할 수 있는 체력과 부지런함, 성실함이 부럽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또 부러워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뜨겁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매 순간순간을 열렬히 살아가며 불사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렇게 불타듯 뜨겁게 살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나는 잔잔하고 미지근한 삶을 원하기도 한다. 얼핏 모순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내가 뜨거울 때는 열정적일 때가 아니라 감정적일 때이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래서 나는 내가 무덤덤한 성격이기를 바란다. 그냥 담백하게, 적당한 온도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흔들림 없이.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저 '나'로 존재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런 삶을 원한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렇게 살고자 한다. 나 자신으로 살면서 내게 열정을 쏟고 내 삶에 충실하기로. 매 순간은 열정적으로 살면서 삶의 태도 자체는 담백하게 유지하기로. 순간은 뜨겁게, 인생은 미지근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