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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n 01. 2022

탄단지의 위대한 법칙


하루에 한끼는 샐러드로 먹자고 결심하고 난 후 시작된 또 다른 고민은 바로 '토핑'이었다. 샐러드를 에피타이저로 먹을게 아니라면 단백질은 물론 탄수화물까지 야무지게 챙겨서 먹고 싶었다. 어디서 봤는데 탄단지가 적당히 갖춰지지 않으면 우리 뇌는 뭔가를 덜 먹었다고 생각해서 계속 배고픔을 느낀다고 한다. 고기를 그렇게 먹고도 냉면이나 밥을 먹지 않으면 아쉬운 것도, 라면에다가 계란부터 시작해서 참치나 치즈로 베리에이션을 추구하는 것도, 다 이 탄단지의 마법 때문이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뇌는 목이 마른 것과 배가 고픈 것도 잘 구분을 못하는데, 밥 때가 아닌 시간에 느끼는 배고픔은 사실 '목마름'일 경우가 많다. 우리가 물이 아닌 일반 음식을 먹을 때도 수분을 섭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럴 때 물을 좀 때려마시면 배고픔이 진정될 확률이 높다. 그러고보면 뇌는 참 멍청하다는(?) 생각이 든다. (뉘집 뇌인지)


한편으론 그래서 뇌를 속이기도 쉬우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양을 좀 부족하게 먹어도 탄단지만 얼추 맞춰서 먹으면 생각보다 포만감이 오래간다. 다이어트란 결국 뇌와 나 자신간의 줄다리기와 같다. 뇌는 우리 몸을 지배하지만, 탄단지의 법칙과 함께라면 우리는 다이어트의 쿠데타(?)를 성공시킬 수 있으니 다들 힘내시길 바란다.




탄단지의 첫번째 주자, 탄수화물은 해결하기 쉬웠다. 중고등학교 주입식 교육의 훌륭한 수혜자로서 탄수화물이란 밥이나 빵, 고구마, 감자와 동의어라고 여겨왔다. 지금도 우리 부모님은 탄수화물을 밥으로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 다이어트에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단호박이나 바나나 같은 식단의 단골 손님들도 탄수화물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반찬(이를테면 김치라든가, 뿌리채소로 담근 장아찌류)이 탄수화물이었다. 잎사귀만 뜯어 먹을게 아니라면 칼로리도 꽤 높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과일이었는데, 과일의 칼로리는 정말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부모님 집에 가면 늘 식사 후에 과일을 또 한 접시 그득하게 잘라주시곤 했다. 혼자 살며 과일을 잘 챙겨먹지 못했던 나에게 그 과일의 산을 순삭시키는건 일도 아니었다. 칼로리만 따지면 밥을 한끼 더 먹은거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물론, 과일도 탄수화물이다.


그렇다. 탄수화물은 특별히 신경쓰지 않아도 공기처럼 먹을 수 있는 영양소였다. 굳이 고구마니 단호박이니 바나나니 이런 것들을 식단 관리한답시고 먹는 이유는 가뜩이나 맛 없는 다이어트 음식들 사이에서 탄수화물조차 평소에도 흔하게 먹는 쌀밥을 먹기가 억울해서다.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분은 연락주시면 제가 고구마 한 박스 사드리겠다. 고구마나 바나나가 결코 쌀밥에 비해 칼로리가 낮은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탄수화물에서나마 위로를 받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결국에는 그냥 현미밥으로 안착했다. 무엇보다 가성비 면에서 밥을 따라올자가 없었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열량도 많이 내는 주제에 여기저기 많이 들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과하게 먹기 딱 좋은 것이 지방이었다. 일단 볶거나 튀겨진 음식에는 모두 어느 정도 이상의 지방을 머금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지방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 먹는 음식에도 대개 같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굳이 '지방도 챙겨 먹어야지~' 했다간 지방반 따따불로 먹기 딱 좋았다. 단백질로 닭가슴살만 주구장창 먹을게 아니라면.




문제는 단백질이었다. 세상에 단백질 챙겨먹기가 그렇게 힘들줄은 몰랐다. 단백질 쉐이크니, 단백질바니, 오직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런 제품들이 왜 불티나게 팔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콩이나, 그런 콩으로 만들어진 두부 같은 음식들도 하루 단백질 섭취량을 채우기엔 2프로가 아니라 한 10프로 부족했다. 단백질을 충분히 먹기 위해선 고기나 생선이 필수였다. 우리 조상님들이 복날을 정해놓고 각종 육해공을 보양식으로 챙겨드신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렇게 샐러드 하나에 오만가지 세상이치를 다 깨닫고 있다.


우리집은 베란다에서 마트의 야외 매대에 내놓은 과일이 얼마인지 가격표까지 보이는 '마트뷰'이고, 바로 옆 골목이 시장이어서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들면 시장 한가운데를 온갖 민폐를 끼치며 헤쳐나와야 하는, 먹거리 상권의 한 가운데에 있다. 전쟁이 나도 굶어죽을 걱정은 안해도 될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집 식량창고는 주로 마켓컬리의 상품들로 채워진다.


내가 1분(은 좀 오바인 것 같고 한 3분)만에 갈 수 있는 마트를 이용하지 않고 마켓컬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일반 마트에는 없는 신박한 제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을 칭송할 때 나는 여기서 주기적으로 소개되는 각종 신제품의 향연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탄수화물보다 단백질이 더 많이 들어있는 '단백질면', 통호밀로 만든 핀란드식 빵, 진짜 그리스에서 생산된 무지방 그릭 요거트, 진한 콩국수 국물 같은 두유 등등. 신기한 간편식이나 밀키트도 많았지만 나의 건강 집착증을 불사지르는 데 훌륭한 땔깜이 될 이런 건강식들의 라인업이 더 인상적이었다.


마켓컬리 애용자가 된 것은 새벽배송보다 사실 이 이유가 더 컸다. 오히려 새벽배송은 '굳이 그렇게까지 아침일찍 갖다주지 않아도 되는데' 싶은 심정이었달까. 아침에 출근하느라 정신없는데 배송 온 물건들까지 정리하려면 잠시 마켓컬리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짜증이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아무튼, 마켓컬리에서 발견한 단백질 공급원의 초기 타자는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되는 냉동 닭가슴살이었다. 샐러드용 야채에 단백질면을 올리고 오리엔탈 소스를 뿌려 먹는 '단백질 비빔 야채국수'도 추천하고 싶은 조합이다. 그런데 이 레시피(?)들은 단백질을 얻기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했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집 식탁 위에서 축출 당하고 말았다. 단백질면은 가격 때문에, 그리고 닭가슴살은 나의 어설픈 채식 마인드 때문에.


동물복지도 챙기고 싶고 가공식품도 피하고 싶고 그렇다고 하루종일 집에서 요리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 탄단지 중 단백질이 가장 먹기가 힘들었다. 정말이지 단백질은 대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이기심을 성찰하게 하는(?) 궁극의 영양소였다.




지금은 식물재배기에서 수확한 야채와 밥, 그리고 까다로운 기준 통과에 성공한 몇 가지 단백질 공급원으로 안정적인 돌려 막기를 하며 탄단지 식단을 완성하고 있다. 마켓컬리에서 찾은 '동물복지 반숙 계란장'과 비건 미트볼인 '베지볼', 전자레인지 2분 완성 순살 고등어구이, 손질이 다 된 채 나오는 냉동새우, 마지막으로 숨은 단백질 강자 '참치캔'이 그것이다.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세상이지만, 탄단지의 위대한 법칙 앞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음식들이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음식의 유혹을 이겨내는건 결국 '먹는 것'에 대한 가치관이 아닐까. 오늘 하루도 멍청한 뇌와의 눈치게임 한판 승부를 벌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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