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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Dec 06. 2022

굴, 샤블리, 그리고 미네랄의 삼각관계에 대하여

바야흐로 굴의 계절이다. 굴은 회부터 시작해서 찜, 구이, 국밥 등 다양한 요리법으로 즐길 수 있는 겨울철 대표 보양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굴을 이렇게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이야기로, 사실 외국에서 굴은 개당 몇 천원부터 만원 대까지도 하는 고급 식재료다. 시장에서 아주머니들이 굴을 쌓아놓고 먹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외국인들의 소감을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마치 캐비어를 숟가락으로 퍼먹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굴은 샤블리 와인과 함께 먹는 것을 정석으로 친다. 프랑스 부르고뉴 북부에 해당하는 샤블리 지역에는 쓰항(Serein)이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는데, 이 강이 샤도네이 품종을 재배하는 데 완벽한 기후를 만들어내고 있다. 산미가 강하고 달지 않으며 풍부한 미네랄감을 보여주는 샤블리 와인의 대표적인 특징들은 바로 이 지역의 시원한 날씨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샤블리 와인은 상쾌한 바다의 향을 내뿜는 동시에 약간의 느끼함을 가진 굴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가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와인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종종 등장하는 ‘미네랄'이란 단어가 있다. 아마 와인에 대한 표현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또 전달하기 힘든 느낌이지 않을까 한다. 젖은 돌을 핥았을 때의 맛이라는 설명도 있는데, 살면서 돌을 핥아볼 일이 보통 사람들에게 얼마나 있겠는가.


‘광물'을 의미하는 미네랄은 글자 그대로 땅의 어떤 속성이 와인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설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포도 뿐만 아니라 모든 농작물에는 그것이 자란 땅의 특징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미네랄'이란 미묘한 단어를 쓰며 어렵게 표현하는 데는 와인이 그만큼 복합적인 요소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단 와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커피나 차를 마니아적으로 즐길 때에도 흙 맛이 난다느니 하는 (대체 흙 맛을 어떻게 아는건데?) 비슷한 현상들이 목격된다. 아마도 미각의 섬세함을 극한으로 몰아부치며 쾌락을 얻는 변태같은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로 하자.




하지만 와인 전문가들 중에서도 한번도 이 ‘미네랄감'이란 것에 대해 만족할만큼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s of Wine)들도 자신있게 정의하지 못했다는 후일담도 있으니, 나만 이해 못하는건 아닐까라며 주눅들진 않아도 될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맛이라고, 또 어떤 이들은 향이라고 하며, 결국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느낌'이라 결론내린 MW도 있다. 유튜버 ‘와인킹'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MW 피터 코프(Peter Koff)는 미네랄감을 와인의 구조와 그립감, 그리고 광물 성분의 조합이라 정의했다. 좋은 샤블리에서 나타나는 산미는 미네랄감을 형성하는 구조 중 하나이며, 그립감이란 것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보다 역동적인 임팩트를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미네랄감'에 대한 완벽한 결론은 아니라고, 치사하게(?) 열린 결말을 시사했다.


캘리포니아에 보니 둔(Bonny Doon)이란 포도 농장을 설립한 랜달 그레이엄(Randall Grahm)은 성분과 맛이 어떤 잠재적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해져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는 와인통에 일부러 돌멩이들을 집어넣었는데, 그러자 와인의 산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어떻게 흙으로부터 포도로 그 미네랄들이 흡수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광물(미네랄)과 접하는 것이 ‘미네랄감'을 만들어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레이엄은 이 미네랄감을 굉장히 짜증나고 모호한 느낌이라며 숨겨진 진심을 드러냈다.


다시 샤블리로 돌아와보자. 아무튼 이 ‘미네랄’은 샤블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샤블리와 굴이 왜 최상의 마리아주를 자랑하는지 설명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샤블리 지역은 선사시대에 열대바다였던 곳으로 많은 화석과 조개껍질의 성분이 토양 속에 남아 있다. 바다의 역사를 가진 땅에서 서늘한 날씨를 맞으며 자란 포도가 해산물과 잘 어울리는 맛과 향을 낸다는 논리다.


그러나 너무 좋은 샤블리는 오히려 굴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샤블리는 얼마나 좋은 포도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그랑 크뤼(Grand Cru), 프르미에 크뤼(Premier Cru), 샤블리(Chablis), 그리고 쁘띠 샤블리(Petit Chablis)로 구분되는데, 굴과 페어링을 할 때는 보통 기본 샤블리를 선택한다. 프르미에 크뤼 이상의 샤블리들은 오크통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서 특유의 산미가 약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신에 더 풍부한 과일향과 탄탄한 구조를 갖게 되지만, 굴과 함께할 ‘미네랄감'은 부족해지는 셈. 미네랄이 반드시 땅의 어떤 광물적인 특징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지점이다.




결론은, 마트에서 널어놓고 파는 봉지굴에 가장 기본적인 샤블리만으로도 훌륭한 겨울의 미식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며, 뭐라고 콕 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 내 입 안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조합이 ‘미네랄감'인가보다 하면 된다는 것이다. 굴을 좋아하고 화이트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샤블리 못지 않은 축복의 땅이나 다름없다. 어려운 용어나 비싼 가격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굴의 계절을 역사적인 마리아주와 함께 즐겨보시면 어떨지.


2020년 기본 샤블리와 2018년 프르미에 크뤼 샤블리의 대결. 굴과의 마리아주는 기본 샤블리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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