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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l 10. 2024

클럽마와 자마(自馬) 사이

새벽 4시 45분.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사실 4시에 일어나고 싶었는데 울려대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잠깐 눈 감았다 떴더니 4시 반이다. 인스턴트 커피를 끓였다. 소중한 새벽시간에 딴짓을 하고 싶은 마음을 급히 추스르고 노트북을 잡고 앉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글쓸 시간이 안나는 요즘이다.


1년 전 여름, 처음으로 '말을 사고 싶다'란 생각을 언뜻 했다. 코치님 따라 승마장을 옮기기로 하면서 그동안 정들었던 휴스턴, 모듈러와 헤어지게 됐을 때다. 그 생각은 잠깐의 바람처럼 그냥 스쳐 지나갔었다. 말을 가지게 되면 짊어져야 하는 무거운 책임 앞에서 단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말을 입양하는 건 너무 철없는 생각 같았다. 미저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짓 같달까. (넌 영원히 내꺼야..)


그리고 휴스턴, 모듈러는 왠지 그곳에 있는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번씩 단체손님이 오면 좀 힘들긴 하지만 가끔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는 너른 잔디밭도 있고, 여기는 시설이 쾌적하니까...


그렇게 생각한지 1년, 지금은 약간 후회를 하는 중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첫 시합을 다녀온 후 '내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 그때 나의 파트너는 '잭'이라는 더러브렛이었는데, 잭은 동호회에서 가는 승마장 클럽마(*개인 소유의 자마가 아닌 승마장에 소속된 말)였다.


첫 시합에서 잭은 나 말고도 다른 동호회 회원 2명까지 모두 3명의 인간과 짝이 돼 출전했다. 이건 시합마다, 혹은 장애물 높이마다 규정이 다 다른데 그때는 '1인 3마'까지 가능하다고 해서 그렇게 했었다. 잭은 동호회가 다니던 승마장에서 점핑을 가장 잘, 또 초보가 아무렇게나 갖다대도 다 뛰어넘어주는 장애물 우등생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합 규정에서 허용해주는 건데 뭐가 문제겠냐고들 했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경험삼아 재미삼아 시합 나가는 초보들이 장애물 잘 뛰는 클럽마 한 마리를 돌아가며 타는 상황이 뭔가 우스웠다. 승마는 언제나 말과의 'bond(연대)'와 'trust(신뢰)'가 중요하다고, 전 세계 승마인들이 요즘 내 인스타 피드에서 그토록 부르짖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말 한마리가 세 명의 인간과 어떻게 연대며 신뢰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일주일에 고작 한두번 같이 연습하는데.

 

그럼에도 '시합한번 나가보고 싶다'는 그 바람이 더 커서, 결국 그렇게 잭과 함께 첫 시합을 뛰게 됐던 거다.




클럽마는 이름 그대로 승마장(클럽)에서 가지고 있는 말이고, 자마(自馬)는 개인 소유 말이다. 당연하게도 자마는 말 주인과 담당코치 하고만 운동을 한다. 하루에 정해진 시간, 정해진 일정대로 운동을 하고 나머지는 마방에서 쉬거나 건초를 먹거나 주인과 노닥거리는게 일이다. 상 팔자가 따로 없다.


하지만 클럽마는 다르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레슨을 뛰어야 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하루에 몇 차례나 사람을 태워야 하는 일이 생긴다. 지금까지 내가 탔던 말들은 모두 이 클럽마였다. 모듈러도, 휴스턴도, 어느날 갑자기 무지개 다리를 건넜던 해피도. 말들은 이렇게 하루에도 몇번씩 뜀박질을 해도 괜찮은줄 알았다. 잘 타는 선수들도 아닌, 자세와 습관이 엉망진창인 초보들이 온종일 돌아가면서 타도 그게 무슨 문제일까 했다.


'레이'라는 말이 있었다. 어느 목장에서 소들과 함께 지내던 말이라고 했다. 검은 코트에 체격이 빵빵한 더러브렛이었는데 뭐랄까, 부드럽고 묵직한 느낌이 마치 그랜저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때 어느 코치님이 말했다. 지금 좋을 때 많이 타두라고. 망가지기 전에.


...망가지기 전에?


승마를 하면서 말이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말을 좋게 만드는데는 3년이 걸리지만 말을 망가뜨리는건 3초면 충분하다는 무시무시한 속담(?)도 있다. 그만큼 말은 생각보다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뜻이고, 또 망가지지 않고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단 뜻이기도 하다.


코치님 말은 사실이었다. 레이는 눈에 띄게 달라져갔다. 거지같은 나의 사인에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고 구보는 커녕 속보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더이상 레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다른 곳에 보냈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 물어도 승마장에서는 모른다는 대답 뿐이었다. (어떻게 모를수가 있지) 지금 레이는 어디로 갔는지,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는지, 살아는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작년 코치님과 승마장을 떠나올 때, 모듈러를 데려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모듈러는 코치님이 오기 전까지 거의(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방치돼 있던 아이였다. 코치님은 그런 모듈러를 마방에서 데리고 나와 장애물을 가르치고 나를 태우기까지 했다. 나는 매주 모듈러와 운동을 했고, 모듈러의 성격이나 버릇에 익숙해져 갔으며, 모듈러와 함께 새로운 것들을 잔뜩 배웠다. 그리고 모듈러는 승마장 천덕꾸러기에서 장애물 레슨을 할 수 있는 어엿한 클럽마가 됐다. 전부 다 코치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그래서 코치님이 승마장을 떠나게 됐을 때, 모듈러를 이만큼 훈련시키고 능력을 계속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었다. 그게 바로 첫번째 이유이자 가장 큰 이유였다. 코치님도 많이 아쉬워했다. '나 없이도 잘 지낼거다'며 쿨한척 하면서도 코치님 카톡 프사는 아직도 모듈러와 높은 장애물을 뛰어넘던 사진으로 돼 있다.


그리고 이제는 데려오고 싶어도 여러가지 타이밍이나 상황들이 맞지 않았다. 이게 두번째 이유. 후회를 한다지만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해도 모듈러를 데려올 방법은 딱히 없었다. 일단은 승마장 사장님이 말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매달 들어가는 마방비과 코칭비를 감당할 능력도 되지 않았다.


능력과 기질에 맞춰 트레이닝 해주지도 못할거면서 그렇게 수십마리씩 데리고 있는 이유가 뭘까. 처음 승마를 시작했을 땐 말 한마리 한마리에 이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줄 미처 몰랐다. 그랬기 때문에 승마장에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저 좋은거라 생각했다.




내가 요즘 글쓸 시간이 안 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전에 쓴 '제 취미는 승마입니다' 시리즈와, 이것이 정말 꿈 같게도 책으로 출간된 <마음 탄다, 말을 탄다>의 원고는 거의 대부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쓴 글들이다.


지금 나는 새벽5시에 일어나서 승마장에 갈 준비를 한다.


나의 첫번째 자마, '칸타파'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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