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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신부인 Jun 13. 2024

유도분만으로 순산하고 싶어

39주차, 입주자 무사 퇴거(?)를 위한 막바지 태교 중

시작부터 지금까지 예상을 속속들이 빗나가는 임신이었다. 

험난했던 시험관을 포기하고 아이 없이 복직해서 커리어나 키워볼까? 싶었더니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고,

무사히 아기집까지 확인하고 나서는 중기까지 입덧으로 고생했으며,

토하고 먹고를 반복한 입덧을 극복했더니 임신성 당뇨로 식사 제한이 걸렸고,

막달에 찾아온 소양증으로 흉부 아래 전신에 가려움증과 긁은 상처가 생겨 밤잠을 잘 못 이루다가

호전될 무렵엔 이제 출산해도 정상 분만으로 간주되는 시기가 왔다.

최후의 격통은 아마 출산의 고통이 되겠지? 


걸리지 않는 자연진통


솔직히 37~38주차 사이에 진통이 걸려서 자연분만으로 가면 좋았겠단 희망 회로를 돌렸으나, 

많이 걸어도, 요가를 해도, 쭈그려 앉아도, 스쿼트를 해도 뱃속에서만 꾸물거릴 뿐.

좀처럼 나올 생각을 않던 내 뱃속 첫 입주자는 어느새 3.4kg로 추정된다고 한다.  

주치의도 이 정도면 무거운 편이라고 했다. 

분명 나는 태어날 때 3키로 대 초반이었건만

임신성 당뇨가 있어서 유독 애가 크고 무거운가 싶다. 

실제로 똑바로 누워있기 어려울 정도로, 이제는 옆으로 누워도 한 자세로만 있으면 불편할 정도다. 


사람이 말이야, 큰 물에서 놀아야지! 작은 데서 웅크리고만 있으면 쓰나?

기껏 아기공간도 열심히 꾸며놓고, 맘마존도 조성했고, 출산 가방도 다 쌌는데 말이야!


막달에 태동이 줄어든다며?


애 by 애라는 걸 느꼈다.

37주 이상이 되면 골반저로 태아가 들어가면서 태동이 점차 감소한다고 알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웬걸! 우리 아이는 어째 위에서 논다. 너 왜 안 내려오니?!

그 큰 몸으로 배가 볼록볼록 튀어나올 정도로, 

외관 상 누가 봐도 아 얘가 어느 방향에 있구나- 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중반기 때처럼 발로 뻥뻥 차대지는 못해도

브레이크를 지긋이 밟듯 나의 손과 발이 여기 있소!를 몸소 체험하게 해준다.

아가야, 나와서 커야하지 않겠니?

이제는 나와서 손짓, 발길질 해도 괜찮은데...


어제 정기검진 하면서 막달 태동검사를 했는데 그 때도 꾸물꾸물 잘도 움직였다.

지금도 주변이 조용하면 두둠칫 리듬을 타듯 복부 안쪽을 튕기듯 팝핀을 춘다.

그래, 잘 놀면 됐지- 하고 말았다. 


첫 내진혈, 그리고 내진빨


맘카페를 비롯, SNS 분만 후기 글을 보면

내진빨(?) 받아서 자연진통이 걸렸다는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내진이란, 자궁(포궁) 경부 숙화도, 열림 정도, 아기 머리가 얼마나 내려왔는지를 파악하는 검사인데,

대개 산부인과 의사가 손가락 2~3개 정도를 안으로 넣는 촉진의 일종이다.

자연분만 3대 굴욕(내진, 관장, 제모) 중 하나라고 불리기도 하며, 

산모들이 피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다. 


한데, 어제 받았던 내진은 진심으로 아팠다. 

작정하고 쑤신 것 같았다.

힘을 빼고 있었길 망정이지 아아악!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혹시 몰라 팬티라이너를 차고 있던 게 다행이었다.

수납 후 퇴원하기 전 뭔가 왈칵! 하고 쏟아지는 느낌이 들어 화장실을 찾으니,

검붉은 피가 1/5 정도 묻어났다. 소위 말하는 '내진혈'이었다.

집에 와서도 나왔는데 솔직히 무서웠다.


다음날에도 혹여나 하는 마음에 소형 라이너를 덧대었는데,

고여있는 피가 나오는 건지 갈색혈이 비쳤다.

혹시라도 분만의 징조 중 하나인, 이슬인가 싶어서 화장실 갈 적마다 불안했다.

그러나 여즉 진통이 걸리기는 커녕, 

나는 내진빨도 잘 안받는가보다. 


유도분만을 앞두고


다음주면 임신확인서 상 출산 예정일, 40주차가 된다.

자연진통이 걸리지 않으면 최후의 방법은 제왕절개 아니면 유도분만이다.

노산에 초산이라 경산 대비 성공률은 다소 낮다지만 일단은 후자를 택했다. 


"빠르면 오늘 저녁도 입원 가능합니다."

생각보다 담담한 주치의 말투에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물리적으로 만반의 준비는 했지만, 당일은 좀 아닌 것 같아서 일정을 변경했다.

출산휴가 중인 나와 다르게, 보호자인 남편은 겨우 오전 반차만 쓴 상황이었다.  

일정 조율 후 내게 남은 일자는 이제 단 3일.


남은 기간동안 아이가 더 크지 않게, 조금만 먹어야하겠고,

골반 근육을 잘 풀어두어야지- 하는 생각이다.

긍정적으로 잘 풀리길 기도하면서,

뱃속에 가득찬 입주자에게 임대인된 권리로 퇴거 태교를 시도해본다. 

더는 무상거주, 무전취식은 안된다면서 부디 무사히 나오라 설득해본다.


"아가야 이제 방 빼야돼. 몸만 오면 돼."


진통을 짧게 했으면 좋겠다.

무통주사가 잘 들었으면 좋겠다.

경부가 빨리 10cm까지 다 열렸으면 좋겠다.

한 번에 쑥 나왔으면 좋겠다.

솔직히 아픈건 무서우니까. 



#초산모 #임신출산 #분만 #자연분만 #유도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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