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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신부인 Dec 20. 2023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이유

내곁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건, 가족

2023년 상반기 합계출산율은 0.76명

솔직히, 인구 위기가 하나도 와닿지 않고 공감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학원과 연구기관까지 가서 일·가정 양립, 경력단절, 저출생 등을 공부하고서도 말이다.

정책과 현실이 동떨어져 있는가? 부인할 수가 없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저출생이 발생했다.'

허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사회 현상의 원인을 단 하나로 단정할 수 있는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함에도 아이를 낳는 선진국 사례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솔직히 터놓고 얘기해보자. 

아이를 낳으면 개인의 삶은 보장되는가? 일시적으로 감소한 소득은 보전이 되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아동병원 등 인프라는 충분한가?

지역별 차이 없이 아이를 잘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인가?

노키즈존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철폐될 수 있는가? 

아무리 따져봐도 출산을 감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라는 인식이 싹틀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살면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들이 존재한다.

누구나 다양한 자아와 다양한 사회적 영향력과, 직장에서 위치가 있고,

직장인, 사회인, 동호회인, 누군가의 자녀, 친구 등의 역할을 한다. 


나도 그랬다. 

가방끈이 길어진만큼 욕심이 생겼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오래 버티기만 하면 

정년까지 일 할 수 있고, 지위가 높아져 정년퇴직을 하게되면 명예까지 높아지겠지? 라고-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솔직히,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커리어와 직장이 전부일 줄 알았다.

먼 직장에 있을 때 아빠가 뇌졸중이라는 병마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로인해 내 인생의 변곡점이 생기기 전까지는. 

든든한 편이 돼 줄것만 같았던 회사는 포상, 해외연수에서 누락시키는 등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더욱이, 원치않은 인사발령으로 주말근무까지 하게되면서 가족과 거리도 멀어졌다.


회사는 나와 가족의 안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공조직이건 사기업이건 사람을 쓸 때는 효율성, 효과성을 따져쓰기 마련이다. 

회사는 정부가 아니다. 사회보장제도처럼 가족과 삶을 기대기엔 무리가 있다. 

사내에선 정치와 평판, 판단이 존재한다. 줄을 잘 못 서면 배제되는 경우가 여즉 존재한다.


사회적으로는 비관적 인식이 싹텄다. 

열심히 월급쟁이로 돈 벌면,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언제 살 수 있는가?

이미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타고난 재력 등 경제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는 어렵거나,

청약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그렇게된들, 자기자본이라는 한계에 부딪히면 또 다른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와중에 'N잡, 평생직업'이라는 개념이 부상했다. 

직장인 월급만으로는 물가 등 감당이 안되니, 더 이상 직장 하나에만 올인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사회에서 회사는 개인한테 충성도를 강요할 수 있는가?

투자, N잡에 대해 공부하고 노력하면 근로소득 외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가 있는데.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인가?

10대 때 사귀었던 이들과, 대학에 와서 만난 이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이들이 모두 같던가?

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니, 이해관계와 관심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중에는 더 이상 코드가 맞지 않아 자연스럽게 인연을 종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원치 않게 사이가 끊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간 수없이 경조사에 참여했고, 나를 도운 이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꼭 도왔다.

허나, 내가 도움을 제공한들, 돌아오지 않은 경우들은 왕왕 있었다. '적당히'가 답인 듯 하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생로병사의 사회적 위기를 겪을 수 있다.  

하지만 더는 아빠에게 '친구'라는 인맥은 남아있질 않다.

8년째 투병 중인 그를 기억해주고 찾아주는 건 오로지 가족, 가까운 친척 뿐이다.

이미 나이드신 분들은 하나 둘씩 돌아가시기 시작했다.


외조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을 끝까지 지킨 이들은 당신의 자식들과 그 자손들이다.

농촌사회 분이라 대가족을 일궈서 그런지 이름도 잘 모르는 친척들과 인사했다.

평생 농사만 하셔서 그런가 일가친척 외 지인의 발걸음은 거의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깨달은 바 역시 비슷하다.

도시에서 가족을 일궜으나 임시직 외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 없음에도 찾는 이들이 많았다,

노환으로 별세했는지라 친구는 없었고 오로지 가족, 친척이었다. 


사회적으로 정년 연장 논의가 이뤄진대도 겨우 20~30년의 근로소득만 보전할 수 있다,

우정은 영원하지 않다, 세대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혹은 경조사에 따라 끊어질 수도 있다,

한 번 끊어진 연을 다시 잇기도 어렵다,

정부가 암만 복지국가를 표방해도 최소한의 지원 외에는 기댈 수 있는 바가 없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것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챙겨야겠지. 

그나마 오래 내게 남을 수 있는 건,

언젠가 내가 늙고 병들어도 어느 정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가족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의 병환으로 가족을 잃을 뻔하고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다,

나의 아이는 정부가 대신 낳아주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주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죽은 후에도 나의 흔적을 이어가는 건 오로지 내 자식 뿐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발로일 뿐이다. 

국가적 필요성, 당위성 이런 것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어쨌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정부는 일부만 보조하고, 회사는 책임져주지 않는...

이제는 안다,

인간관계에 과도한 애정과 관심을 쏟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를 잘 알아주지 않는 회사에서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렇다면, 온전히 내가 사랑과 관심과 열정을 쏟을 가치가 있는 대상에 더 집중해야겠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가족 #저출생 #저출산 #임신 #2세계획 #자녀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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