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인문학, 사주명리를 만나다

by 안서조

♣ 이 책의 차례

입구; 농담 혹은 아이러니

1부; 몸과 우주, 그리고 운명의 비전을 찾아서

2부; 사주와 팔자 : 8개의 ‘카드’에 담긴 비밀

3부; 육친법과 ‘오이디푸스’

4부; 케이스 스터디 ; 팔자의 정치경제학

출구; ‘팔자타령’에서 ‘운명애’(Amor fati)로!

길흉은 없다, 개운법, 운명애-고전에서 배우는 ‘창조의 기예’

부록- 사주명리 왕조보교실

1, 천간 탐구생활- 음양 오행, 그리고 충과 합

2. 지지 탐구생활- 현실세계에서 지지의 모습


음양오행이란 인생과 사회, 그리고 우주의 이치를 하나로 관통하는 앎의 체계다. 주역 ‘계사전’에 “역은 하늘과 땅에 준한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를 망라한다. 우러러서는 천운을 보고 굽어서는 땅의 이치를 살핀다. 그러므로 유명의 근원을 안다. 시초를 찾아서 종말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이치를 안다.” 그러므로 “심법과 천법이 다르지 않고 천법과 자연법이 다르지 않으며, 자연법과 창조법이 다르지 않다.”


관계의 배치를 바꾸지 않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운명에 대한 사랑이다. 어떤 조건, 어떤 열악한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잃지 않을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저항과 투쟁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운명애’야 말로 구원과 혁명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사주명리학, 사주란 네 개의 간지(생년/월/일/시), 명리란 운명이 이치라는 뜻이다. 네 개의 기둥을 통해 내 운명의 지도를 그린다는 의미인 것.


오행 이전에 음양이 먼저다. 음양이 오행으로 분화되고, 이 오행에 음양이 결부되면 모두 열 개가 된다. 예컨대, 목화토금수에 음양이 덧붙여지면 양목/음목, 양화/음화, 양토/음토,/ 양금/음금, 양수/음수, 이렇게 나누어진다. 음양오행론은 이 사이의 갈등과 조화, 대립과 융합을 중심으로 존재와 삶의 흐름을 파악하는 패러다임이다.


팽창을 하며 물질과 에너지가 흩어지는 과정이 양의 과정이며 물질과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이 음의 과정이다. 여기 팽창의 과정에서 처음에 한 방향으로 뚫고 나오는 힘이 목(木)이며, 목을 통해 한 방향으로 뚫고 나온 힘이 사방팔방으로 무질서하게 흩어지는 과정이 화(火)이다. 또한 수축의 과정에서 한없이 흩어져 더 이상 흩어질 수 없는 상태까지 분열된 화를 거두어 수렴시키는 과정이 금(金)이며, 금을 통해 수렴되면서 외부만 굳어진 것을 그 속까지 단단하게 응고시켜 한 점으로 통일시키는 과정이 수(水)다. 팽창하는 목과 화, 수축하는 금과 수는 제각기 자기의 운동 상태를 고수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런 목화금수를 부드럽게 달래 주며 중재하는 것이 토(土)다.


‘甲乙’은 木이다. 앞의 것은 양, 뒤에 것은 음이다. 갑목, 을목이라고도 부른다. ‘丙丁’은 火다. 丙火는 태양의 이글거림, 丁火는 촛불의 그윽함 정도, ‘戊己’는 土 다. 戊土는 화기를 머금은 산, 己土는 습지, 평야를 의미한다. ‘庚申’은 金이다. 경금은 바윗돌이다. 신금은 칼과 보석에 해당한다. 정교하고 세심한 일에 능하다. ‘壬癸’는 물이다. 임수는 바닷물처럼 크고 힘찬 물이고, 계수는 계곡물이나 옹달샘처럼 작지만 투명한 물이다.


시간이 형상으로 펼쳐진 것이 공간이다. 즉, 시·공간은 하나인 셈이다.

일간이라는 축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앞에서 짧게 언급했듯이 자평명리학으로 부터다. 자평명리학은 대략 10세기 무렵의 인물 서자평이 화산에서 도를 터득하여 정립한 것이다. 그가 출현하기 전에는 당사주가 통용되고 있었다.


팔자는 내 안의 우주다. 고로 팔자의 운동 역시 우주의 원리를 고스란히 따른다. 리듬과 강밀도를 중심으로 재배열되는 것이다. 리듬, 곧 차서가 먼저다. 일간을 중심으로 오행의 상생운동이 동그라미를 그린다. 예컨대 일간이 을목을 중심으로 목생화-화생토-토생금-금생수-수생목의 방식으로 동그라미를 그린다.


목은 간/담(분노), 화는 심/소장(기쁨), 토는 비/위(생각), 금은 폐/대장(슬픔), 수는 신/방광(두려움) 등으로 연동되어 있다.

하늘은 어디에 의존하는가? 땅에 의존한다. 땅은 어디에 의존하는가? 하늘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은 어디에 의존하는가? 자연에 의존한다. 하늘은 형에 의지하고 땅은 기에 의지하는데, 형은 끝이 있으나 기는 끝이 없다.

이른바 천지 감응이 바로 이것이다. 땅에 비추어진 하늘의 기운은 땅이 소중하게 감추어 둔다. 그것이 곧 지장간(地藏干)이다.


대운이란 한 사람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지배하는 운세다. 팔자가 ‘평생을 함께하는 원형’이라면 대운은 그 원형이 걸어가는 ‘시절 인연’이다. 사람마다 대운의 숫자는 같지 않다. 만세력에서 사주를 뽑으면 그 일간에 대운 숫자가 나온다. 3이면 3세, 13세, 23세... 그리고 이 기준은 원국 사주로부터 추출 된다.

대운의 흐름은 순행과 역행이 있는데, 순행은 육십갑자의 순서를 따라가는 것이고, 역행은 갑자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운이 최악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 재물과 명예, 그리고 사람, 죽을 운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해당한다. 죽음은 이 모든 것과의 결별에 다름 아니다. 죽음 자체가 꼭 흉인가는 제쳐두고 그럴 때라도 정녕 살고자 한다면 길은 있다. 두 가지 중의 하나다. 일단 자신이 미리 버리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활인 업을 하는 것이다.

자기를 구하는 건 결국 자기밖에 없다.


팔자는 오행의 배치이다. 오행은 상행으로, 상극으로 연결되어 있다. 길흉이란 순환의 여부에 달려 있다. 매끄럽게 순환하고 있으면 ‘吉’, 어딘가에 고착되거나 리듬이 정체되면 ‘凶’이다.


十神 팔자와 ‘표상’의 마주침

여덟 개의 카드로 읽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호는 오장육부의 생리적 배치다. 이 배속은 칠정, 곧 ‘憙怒憂思悲驚恐’의 흐름이기도 하다. 이 칠정의 관계와 구성은 마음의 행로를 결정한다. 생리와 심리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존재성의 서로 다른 표현이자 이름이라고 보면 된다. 이 존재성이 사회적 조건과 마주치는 기운의 배치를 십신(十神)이라고 한다. 팔자의 생극적 흐름에 부여된 ‘사회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일간을 중심으로 모두 열 가지의 힘이 형성되기 때문에 ‘십신十神’이라고 한다.


比劫(比肩과 劫財)은 일간과 동일한 오행을 뜻한다. 일간이 을목이 라면 목기를 지닌 카드들이 비겁이 된다. 비견은 음양도 같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나와 나란히 어깨를 겨루는 기운이다. 나의 확대 혹은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겁재는 말 그대로 ‘나의 재산을 겁탈한다.’는 의미인데,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食傷(食神과 傷官)은 일간이 낳는 오행이다. 내가 외부를 향해 생하는 기운이다. 밥, 말, 끼, 자식 등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간과 음양이 같으면 식신이다. 평생의 먹거리다. 식신이 있으면 어디를 가도 굶지는 않는다. 일간과 음양이 다르면 상관이다. 식신(食神)이 자연스러운 스텝이라면 상관(傷官)은 일종의 엇박이다.

식상(食傷)이 낳는 기운이 財性(正財와 偏財)이다. 일간과 음양이 같으면 편재, 다르면 정재다. 편재는 불규칙한 재성, 정재는 규칙적인 재성, 전자는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의 활동에 가깝고, 후자는 정규직이나 안정된 사업에 가깝다. 일단 식신과 재성까지는 내가 주도하는 세계다.

재성 다음이 官性(正官과 偏官), 곧 나를 극하는 기운이다. 일간과 같으면 편관, 다르면 정관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관성을 써야만 변화의 마디를 넘어갈 수 있다.


관성이 낳은 기운이 印性(正印과 偏印)이다. 인성은 일간인 나를 낳아 주는 기운이다. 나의 존재감을 높여 주는 무형의 베이스라 생각하면 된다. 인성의 印은 도장이라는 의미다. 대지, 문서, 명예 등을 의미한다. 인간은 아는 만큼 살아 내고, 사는 만큼 알 수 있다. 인생의 행로에서 무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죽음이 왜 두려운가? 모르기 때문이다. 부처와 공자, 예수 등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죽음의 공포로부터의 자유 혹은 해방, 예나 이제나 인류의 위대한 지혜는 모두 여기로 수렴된다.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우주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의 지혜가 없다면 삶의 비전 또한 무력하다. 죽음이 배제된 삶, 그것은 반쪽 이하에 불과하다. 그래서 삶도 늘 위태롭다. 무지는 모든 번뇌의 원천이다. 하여, 공부는 선택이 아니다. 존재의 근원적 토대다.-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성은 바로 이 공부의 존재론을 말해 준다. 일간과 음양이 같으면 편인, 다르면 정인이다.(안도균, ‘운명의 열쇠를 찾아서’)


비겁, 식상, 재성, 관겅, 인성-이 열 개의 배치는 존재의 리듬이 ‘사회체’와 마주칠 때 각인되는 기본 코드에 해당한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든 인생에는 이 열 개의 힘들이 각축한다. 누구든 자신의 힘과 재능을 발휘하여 밥벌이를 하고(식상→재성), 사회적 조건 안에서 관계를 만드는 훈련을 하고(관성), 그 과정에서 매 순간 배움을 닦아야 한다(인성), 이 과정을 밟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있는가? 없다. 누구는 오직 밥벌이만 하고 누구는 오직 공부만 해야 한다면 그게 바로 신분사회다. 식상이 재성으로, 재성에서 관성으로, 관성에서 인성으로 이어지는 이 리듬을 제대로 밟아야 일간인 내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매끄러운 순환을 거치고 나면 그 힘으로 또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끊임없이 내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임금이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이것이 가능하다면 누구든 최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두 개의 기본 리듬- ‘식상생재’와 ‘관인상생’

일간이 나의 명주고 비겁이 나의 수평적 확장이라고 했다. 가장 결정적 마디는 재성에서 관성으로 가는 길목이다.


육친법-필자의 오이디푸스화

비겁은 형제와 동료, 라이벌 남편의 여자 등

식신은 여성에게는 자식이고 남성에게는 처가 식구들 혹은 할머니 등

재성은 일단 아버지다. 남성한테는 거기에 부인 혹은 애인이 첨가된다. 아버지-여자-재물, 이것이 하나의 계열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관성은 여성한테는 남편이나 애인이다. 남성에게는 자식이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모양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기본적으로 상극이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를 이겨 먹기 위해 세상에 나온 존재다.


인성은 남녀 모두에게 엄마가 된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의미에서 유추된 것이다. 재성은 돈, 관성은 관직, 인성이 공부운, 문서운이라는 데 공부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충전이고, 문서는 만물을 낳아 주는 대지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복이 있다는 것은 공부운이 좋다는 뜻이 된다. 맹모삼천, 엄마가 잘 살면 자식의 공부운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아버지는 엄마와 상극이다. 결국 부부는 상극이라는 뜻, 남근은 재물(자본)이고, 아버지다. 엄마는 토지(기계)고 자연이다. 아들은 노동력, 아버지를 죽이고(극), 아비는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관성이 센 여성은 아이를 낳는 것보다 여러 남자를 거느리고 그걸 통해 자신의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한다.


국가와 자본, 자본과 가족, 자본과 사랑은 이제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모두가 자본의 속성을 닮아 가는 까닭이다. 증식되지 않으면 자본이 아니듯, 평온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추석과 명절은 최악이다. 가족 삼각형을 벗어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질적인 촌수들을 만나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핵가족의 사랑은 자유와 행복의 원천이기보다 차라리 결핍과 상처의 원천이 되었다. 자의식과 트라우마는 동시적이다.


음양오행은 내 존재의 리듬이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시공간적 축이 바로 운명이다. 시공간은 어떤 사회체와 마주치느냐에 다라 달라진다. 사주명리는 철저히 관계와 배치의 철학이다.


명리학이란 오행에서 육친으로 이어지는 해석학이다. 이 해석의 기제는 오행에서 십신으로, 십신에서 다시 육친으로 나아간다. 팔자타령은 선천의 리듬 자체가 아니라 많은 경우 시대적 표상과 통념을 고스란히 ‘내면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돈에는 무수한 인연들이 들러붙어 있다. 다들 돈을 인생의 유일한 가치로 삼고 있다. 재성을 ‘존재의 축’으로 삼는 시대인 것이다. 존재의 축은 일간이다. 일간이 극하는 것이 재성이다. 식상이라는 상생의 운동을 거친 다음 재성이라는 유형의 자산이 구축된다.


재성은 성욕과 깊이 연동되어 있다. 특히 남성에게는 재성이 활성화되면 당연히 성욕도 항진된다. 평생 재물을 일구었지만 그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는 바가 없다. 배움이 없으면 상생이 없다. 지혜와 유머, 우애와 효성 등은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해주는 상행의 기운이다.


에로스는 결코 순수하지 않다. 지각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종의 ‘카오스’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만물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카오스와 마주하는 것이 사춘기이다. 이때 자기 조절의 기술을 닦지 않으면 성에 대해선 영원히 소외된 주체로 남을 수 있다. 금지는 억압을 낳고 억압은 폭력을 낳는다. 그리고 폭력보다 더 무서운 건 순결에 대한 강박 중이다. 여성들의 삶의 공간을 극도로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성폭행을 당했을 때, 그 여성(혹은 남성)을 괴롭히는 것이 바로 이 순결이라는 망상이다.


에로스를 공동체적 관계와 활동으로 연동해야 한다. 그것 자체도 매혹적이지만 더 중요한 관건은 그 과정에서 터득되는 지적 능력이다. 공동체적 관계와 활동은 그 자체로 배움터이기 때문이다. 지성이 얼마나 강렬한 파토스를 내뿜는지를 모른다면 그건 참 슬픈 일이다.

*로고스(logos) -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신학의 기본 용어, 인간의 ‘분별’, ‘이성’을 뜻한다.

-파토스(pathos) - 욕정, 기쁨, 슬픔, 노여움 등 일시적인 정념의 작용, 특별히 인간의 마음이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상황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받는 기분·정서를 총괄하여 표현한 말이다.

-에토스(ethos) - 인간의 습관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생긴 지속적인 성상, 또는 성격 어떤 사회 집단이 특유한 관습 ↔ 파토스


핵가족의 일상화로 노년은 청년을 만나지 못하고, 청년은 노년과 교감할 기회가 없다. 비슷한 세대와 비슷한 계층들끼리 만남은 동일성의 증식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명의 전략상 매우 불리하다. 생명은 다양성과 이질성을 훨씬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제 혈연을 넘어 사회적으로 노년과 청년이 만날 수 있는 활발한 네트워킹이 이루어져야 한다. 재물과 관련하여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려 하기보다 혈연을 넘어 다른 청년들에게 돈이 흘러갈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노후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우정과 배움이다. 핵심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돈의 달인이란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돈에 먹히지 않고 돈을 통하여 삶을 창조하는 걸 의미한다. 요컨대, 돈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또 사람과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재성 과다와 관성 고립의 팔자를 넘어서는 비결이다. 넘치는 재성은 관성으로 흘러가야 하고 고립된 관성은 자신을 충만하게 채워야 한다.


‘운명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 니체 ‘팔자타령’에서 ‘아모르파티!(운명애, 運命愛, Amor fati)’로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 돈과 정규직이다. 생각할 권리가 아니라 평생 하나의 직업에 묶여 있고자 하는 노예의 권리, 원하는 상품을 마음껏 탐할 수 있는 중독자의 권리만을 추구한다. 삶의 축은 오직 연애와 가족뿐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가족을 위해서라면 삶을 바치겠다는 망상을 멈추지 않는다.


개운법은 운을 ‘트는’ 명리학적 방편이다. 운을 트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오행을 용신이라고 한다. 거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내가 어떤 생을 원하는 가이다.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내 운명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 위해서’라는 욕망의 전이가 선행되어야 한다. 용신은 그 순간부터 작동하기 시작한다. 용신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스스로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는가? 자승자박, 자업자득! 즉, 길이든 흉이든 결국은 자신이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도 자신의 내부에 단서나 원인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운명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가 마주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팔자를 고치려면 자기 안에 있는 단서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상극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라. 팔자가 좋기는 커녕 억수로 험해야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차피 좌충우돌, 파란만장의 리듬을 타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번뇌를 자양 삼아 살아간다. 산다는 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평생 재화를 일구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생의 문턱을 넘어야 하고 애증의 갈림길에 서야 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대충 피해 간 존재가 있다면 그런 경우 중년 이후나 노년에 반드시 그 마디를 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젊어 고생 사서 하라’고 하는 것이다.


여덟 개의 카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판에 끼려면 일단 이 주어진 패를 받아 들어야 한다. 그 패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차서로 내놓을 것인가는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 용신도 그런 원리다.


사주명리 왕초보 교실


천간탐구생활

천간이열 글자는 양과 음으로 나눌 수 있다.

-양은 갑, 병, 무, 경, 임이고, ; 위로 올라가는 가볍고 맑은 기운

음은 을, 정, 기, 신, 계이다. ; 아래로 가라앉는 무겁고 탁한 기운


지지탐구생활

-子는 방향은 정북방, 오행상 水에 해당, 도화살, 밤 11시 30분~오전 1시 30분 까지, 子月은 음력 11월,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는 씨앗, 물(子水)의 차가운 성질 예민하고 음적인 기운 은밀하고 감추는 것이 많으며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노력하는 성향

-丑은 오행으로 土에 해당, 명예살, 우직하고 고집스럽다.

-寅은 봄의 시작, 입춘이 인일에 들어있다. 오행상 木, 역마살

-卯는 정동, 도화살, 봄의 절정,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의심하는 경향, 오행상 木,

-辰은 오행으로 土에 해당, 청명과 곡우가 있는 辰월에는 봄비가 내려서 곡식을 자라게 하고, 아침 7:30~9:30에 해당, 명예살, 자존심이 강하고 원리원칙을 중시,

-巳은 오행으로 火에 해당, 역마살, 양기의 상징, 자유분방하며, 남의 간섭을 받는 걸 싫어한다. 9:30~11:30,

-午은 오행으로 火에 해당, 도화살, 11:30~13:30, 음력 5월, 단오는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 다혈질적인 성격, 활동적, 자신감에 넘침, 정도 많고 예의도 바르다.

-未는 오행으로 土에 해당, 음력 6월, 소서와 대서, 지장간은 기토, 정화, 을목 음간으로 이루어진다, 온순, 대인관계가 무난하다.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표현이 서툴다.

-申은 오행으로 金에 해당, 가을로 들어서는 시기, 입추와 처서, 15:30~17:30, 처세에 강하다, 역마살,

-酉은 오행으로 金에 해당, 도화살, 보석을 상징,

-戌은 오행으로 土에 해당, 9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냉정하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亥은 오행상 水에 해당, 도화살, 음력 10월, 먹을 것이 풍족해서 上달이라고 한다. 영적 능력이 뛰어나고, 자유로운 사유를 한다.

열두 개의 지지가 우리 팔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려 20,736가지, 천간까지 합쳐 계산해 보면 팔자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12,960,000가지다.


♣ 읽고 나서

사주팔자, 운명,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저 우주의 별이 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명리학!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우주 만물의 리듬을 깨트리지 말고, 자연에 순응하라. 그리고 부단히 베풀고 공부하라는 데 동의한다. 결국 운명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인문학, 사주명리를 만나다.) 2012. 9. 21.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13,000원.


고미숙 -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 김이당(WWW. kungfus.net)에서 활동 중, 김이당은 ‘몸, 삶, 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 역학을 탐구하는 ‘밴드형 코뮤니타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