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상의 '김정희, 국가대표가 되다. '를 읽고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제주도 귀향 이야기

by 안서조

조선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 귀향 와서 대정읍에 위리안치되었다.

추사 적거지를 문화재로 관리하고 관련 행사를 하고 있지만, 추사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없어서 이 책을 읽게 됐다.


추사 김정희는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용산에서 출생했다.

24세인 1809년 10월 28일 父 김노경을 따라 중국 연경을 간다.

연경에서 옹방강, 완원 등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하고 1810년 3월 17일 귀국한다.

1819년 4월 30일 문과에 급제 벼슬길에 오른다. 55세인 1840년 10월 제주도 대정현 유배지에 도착한다.

63세인 1848년 12월 7일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다.

66세인 1851년 7월 22일 함경도 북청에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인 1852년 8월 13일에 풀려난다.

71세의 나이로 1856년 10월 10일 사망한다.


세한도가 그려진 이유는 제자 이상적이 “황조경세문편”이라는 책을 보내준 것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작가는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라는 구절을 인용해서 청나라 장경이 편찬한 “국조화징록(國朝畵徵錄)”에서 원나라 문인화가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갖은 노력을 했고 초묵법을 터득하여 세한도에 나타난 운필이 되었다.


세한도는 중국의 소동파와 그의 아들의 관계가 추사의 제자인 이상적의 우정으로 치환된 것으로 추사의 오랜 공부 끝에 본토인 중국에서 사라진 화법을 터득해 그려진 결정체라고 주장한다.

문인화를 공부한 세월이 10여 년이 넘었다.


개인전이라고 전시회도 했지만, 요즘 뚜렷한 이유 없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추사는 “그림이나 글씨는 종이와 붓만 있다고 그려지고 써지는 게 아니다.

글씨나 그림을 쓰고 그릴 수 있는 작가의 흥취가 있어야 가능하다.”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나라 형편을 보면 조선 후기를 보는 것 같다.

정조가 이룬 문화와 경제를 후대에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시대에 망국의 길을 걷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 같다.

그때도 임금이 무능하니 외척과 신하들이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어지럽고 위태롭게 만들면서 백성을 통제한다는 명목으로 관리를 늘렸다.

지금도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데 일자리 창출을 명목으로 공무원만 늘어나고 있다.


국가 부채가 1,000조 원에 이르렀다.

나라에 돈도 없는데 관리들만 늘려서 백성을 억눌렀던 그 시절하고 어찌 닮은꼴인지...

작가는 나라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들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학문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율곡 이이 선생이 임진왜란 이전에 왜적을 침략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것처럼 통찰력 있는 판단과 책임을 갖고 국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사태와 같은 불행한 상황을 끝나고 나서도 왜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변명하기 바쁜 국정 책임자들, 그러면서 책임회피만 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서 오늘을 되새겨 본다.



김정희, 국가대표가 되다. 박철상 저, 2021.05.10. 토토북. 160쪽 11,000원.

박철상 : 1967년 전북 완주에서 출생,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의 학예에 관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조선시대 금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헌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19세기 조선 시대의 학술과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세한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