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의 기억 1,2

– 전생은 있는 것일까?

by 안서조

베르베르의 소설은 딱 내 취향이다.

놀라운 추리력과 전문지식, 특히 뇌과학과 관련한 지식에 늘 감탄한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 자꾸 읽게 된다.

서가에서 베르베르의 이름을 보고 제목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지만 선택했다.

책의 시작은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르네가 전생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작된다.


전생에 관한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로 존재한다.

소설의 주인공 르네는 112번째 삶을 살고 있다.

첫 번째 삶은 기원전 1만 2천 년에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대서양 바닷속으로 사라진 도시 ‘아틀란티스’에서 ‘게브’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최면술사의 도움으로 과거로 퇴행이 가능했는데, 몇 번의 퇴행으로 스스로 최면을 걸어 과거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한 주인공 르네는 과거 퇴행을 통해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

현실에서 노숙자를 죽여서 세느강에 유기한 사실이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고 친구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어 탈출한다.라는 줄거리다.


기억은 무엇일까? 동아 새 국어사전 제5판에는 “기억-지난 일을 잊지 않고 외어 둠, 또는 그 내용.”

또 다른 국어사전에는

“기억 (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이라고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기억’은 “생명이 육신을 떠난 뒤에 영혼은 죗값을 치르고 오점을 정화시켜야 한다. 망각이 강인 레테 강에서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고 나면, 죽은 자들의 영혼은 새로운 몸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게 된다.”라고 한다.

기억력이 좋아서 공부를 잘하고 출세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은 시험을 통과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는 아내의 기억은 시시콜콜한 세부적인 내용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나에게 기억은 무엇인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사람을 만나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 당황한다.

꼭 지켜야 할 약속을 잊고 지키지 못한 경우 등 기억의 부재를 탓해야 할 일만 생각난다.

책 속의 주인공처럼 전생의 나를 찾아 현재의 내가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러나 작가는 “살아 있는 한, 우리에게 닥치는 불행은 그저 삶의 항해에서 만나는 잔파도에 불과하다.

그게 없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만물은 부단히 변화한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도 예외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망각의 강 레테의 상징이 뱀이었던 것은 이 동물이 놀라운 허물 벗기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허물 벗기가 일어나는 동안 뱀은 앞을 보지 못한다.”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다. 위험의 원천은 바로 두려움이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과거는 후회의 원천이고 미래는 두려움의 원천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은 ‘기억’보다는 ‘전생’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111번의 전생이 현생의 주인공은 도와 일을 해결하는 과정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이다.

현생은 직전의 삶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소망이라고 한다.

최초의 삶은 “계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으로 더 이상의 것은 ‘알 수 없음.’이다.


“모든 역사에는 세 가지 관점이 있다. 나의 관점, 타인의 관점, 그리고 진실.”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렇게 바퀴는 돌고 또 도는 거야. 때로는 시간이 약이야. 시간이 가면 상황은 변하게 돼 있으니까. 밑에 있던 건 올라가고 위에 있던 건 내려오지.”라고 작가는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심각한 일도 엄청난 사건도 다 그러려니 한다.

기억이든, 전생이든 모든 것은 시간의 축에서 움직일 뿐이다.

“옛날이 좋았다.”는 과거를 이상화시키며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뱉는 말이다.

하지만 옛날이 좋았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안다.


주인공은 111번의 전생에서 다양한 삶을 산다.

일본의 사무라이, 매춘부, 인도의 귀부인, 앉은뱅이, 알코올 중독자, 노예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다양한 구성을 겪은 다음 현생의 역사 교사가 된다.

직전 삶에서 캄보디아 승려는 영혼이 다시 환생하지 않고 영원히 해방되는 것을 ‘니르바나’라고 한다.

카르마가 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존재가 지극한 공(空)에 도달하는 경지, 더 이상 육신으로 거듭날 필요가 없게 되고 물질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영혼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우주의 시원, 가장 순수한 본질로 돌아가 빛과 에너지가 되는 마지막 현현(顯現)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죽음과 전생, 그리고 저승에 관한 관심이 많아진다. 이 소설처럼 전생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저승은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기억 1,2.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전미연 옮김. 2020.05.30. 주식회사 열린책들. 14,800원,


베르나르 베르베르 :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다.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남,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1991년 개미를 출간,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전미연 :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 파리 제3대학 통번역대학원 번역 과정과 오타와 통번역대학원 번역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전문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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