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의 무대, 그 위의 남녀는 모두 배우일 뿐」박예진 편, 번역
이 책의 부제목은 「세상은 하나의 무대, 그 위의 남녀는 모두 배우일 뿐」이다. 박예진 작가는 고전 문학작품을 통한 인문학적 통찰과 자아 알아차림을 위한 세 번째 『~문장의 기억』 시리즈를 펴냈다.
작가는 “셰익스피어는 많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그의 희곡에 사용된 2만 단어 중 2천 가지가 새로운 단어였으며, 이 신조어들은 ‘셰익스피어의 신조어’로 명명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감탄하면서 한동안 그의 문장을 모아 일기 대신 적은 것이 책 한 권이 되었다.”라고 한다.
1932년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오오, 멋진 신세계여!”라는 문장에서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멋진 신세계란 어떤 곳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의 멋진 신세계? 그런 게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네 개의 Part로 구성되었다. 1. 마법 같은 사랑과 운명 속으로, 2. 로맨스 코미디의 서사, 3. 각자의 정의에 대한 딜레마, 4. 인간의 욕망과 권력에 대하여. 이다.
「십이야 Twelfth Night」. 살다 보니 세상일이 내 마음,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 이 희곡은 항해 도중 난파한 배에 바이올라와 세바스찬 쌍둥이 남매가 살아나 겪는 일이다. 여동생 바이올라는 낮선 이국땅에서 살기 위해 남장을 한다. 오르시노 공작의 몸종을 살아간다. 오르시노 공작은 올리비아에게 구혼하기 위해 바이올라를 보낸다. 올리비아는 남장을 한 바이올라에게 반한다.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연극에서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내가 원하는 사랑도 좋지만, 갈구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사랑은 더 좋아요. Love sought is but giv'n unsought is better.”
「템페스트 The Tempest」 옛날에는 마법사 이야기가 흔했다. 귀신 이야기는 할머니에게 듣는 옛날이야기 단골 주제다. 귀신, 마법사 이야기를 들으며 공포와 호기심을 느끼면서 자랐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복수와 화해를 다루는 마지막 희곡이다. 나이가 들어 얻은 성숙한 통찰을 기반으로 극작가로서의 역량을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 느낄 수 있다.
프로스페스는 밀라노의 공작이었지만, 형제인 안토니오의 배신으로 공작자리를 뺏겼다. 딸과 함께 바다에 던져지면서 섬에 살게 된다. 마법의 지식을 갖고 있던 프로스페로는 복수를 하기 위해 항해 중이던 알론소 왕과 페르디난드 왕자, 그의 동료가 탄 배를 심한 폭풍으로 좌초시킨다.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는 아버지에게 그들을 해치지 말라고 호소한다.
이 작품에서 복수보다는 용서와 화해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일상에서 미움보다 관용을 실천하는 것. 서로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때로 용서를 선택하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 용감한 새로운 세상이여, 이런 사람들을 가진 세상이여! How beauteous mankind is! O, brave new world, that has such people in 't!”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달에 맹세하지 마세요. 달은 계속 변하니까요. 그러면 당신의 사랑도 변할 거예요. Did my love now? Forswear it, sight! For I ne'er saw true beauty till this night.” 나에게도 이렇게 목숨 걸고 사랑을 갈구한 적이 있었나 궁금해진다.
서로 원수인 가문에서 태어나 서로 사랑에 빠지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렸기에 가능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가족에 반항하여 사랑을 택하는 것도 어쩌면 청소년기의 반항적 성향이 힘을 더했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그들을 죽이려는 운명 앞에도 순응한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을 보여준다.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 아테네의 테세우스 공작과 아마존의 히폴리테 여왕의 결혼식이 임박했다. 그 무렵, 헤르미아는 아버지 아이게우스로부터 명문가 자제 테메트리오스와 결혼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그녀는 이미 뤼산드로스와 사랑하는 사이였기에 아버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랑이 나의 마음대로 되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연스레 나를 사랑한다면 누구도 사랑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사랑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존재하는 것처럼.
한여름 밤의 꿈은 어렵기만 한 사랑을 자신의 사랑을 찾는 주인공들의 숨바꼭질로 잘 표현하고 있다. 삼각관계에서 시작해 요정의 마법으로 인해 얽혔다가 다시 다른 모양으로 변한다. 세상의 많은 사랑이 이런 것 아닐까. “진정한 사랑의 과정은 절대 순탄치 않다. The course if true love never did run smooth.”
「율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 관료들은 카이사르가 로마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위험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그때 카이사르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캐시어스가 사람들을 모은다. 그중에는 브루투스가 있었다. 정의롭고 정직하며 용감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브루투스가 도와준다면 카이사르의 암살에 성공할 것으로 여겼다. 캐시어스의 암살 계획을 제안받은 브루투스는 고민에 빠졌다. 카이사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암살 계획에 합류한다.
요즘 계엄령 선포와 관련한 정치 상황이 시끄럽다. 서로 정의를 주장하고 위법을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하는 사람 중 브루투스같이 고결한 성품이 있을까? 의문이 간다. 계엄이 위법이고 대통령이 내란죄 괴수라고 주장한다. 공금 법인카드로 쇠고기 사 먹고 일제 샴푸를 산 파렴치한 행위에 손톱만큼의 반성도 없다. 자기 자식을 위해 상장을 위조하고 미국대학에 입학시켜 대리시험을 본 지극히 사적인 인간이 정의를 부르짖는다. 기가 찰 노릇이다. 탄핵을 받아야 할 인간들이 탄핵을 주장한다. 비극이다.
“우리는 지금 만조 위에 떠 있소. 물살이 우리를 도울 때 그 물살을 타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을 잃게 될 것이오. On such a full sea are we now afloat, and we mest take the current when it server or lose our ventures.” 나는 이 문장을 ‘민심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다.’라고 의역한다.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ece」 유대인 샤일록은 베니스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며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가 사치스러운 생활로 파산했다. 급전이 필요했던 바사니오는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청한다. 안토니오는 샤일록을 찾아가 돈을 빌린다. 배가 물건을 싣고 베니스로 입항하면 빌린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는 조건이다.
세상은 각자의 원칙을 따르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채워져 있다. 그 규칙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하지만 자기만의 신념이 있듯 타인의 신념도 존중한다면 조금 더 평화로운 세계가 구현될 것이다. “자비는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부드러운 비처럼 땅 위에 떨어진다. 자비는 두 번 축복한다.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축복하는 것이다. The quality of mercy is strained. It droppeth as the gentle rain from heaven upon the place beneath, It is twice blessed: It blessed him that gives and him that takes.”
「심벨린 Cymbeline」 브리튼의 왕 심벨린은 딸 이모진 공주를 국외로 추방한다. 공주가 가난한 포스추머스와 몰래 결혼했기 때문이다. 「심벨린 Cymbeline」은 역사극이자 로맨스, 음모극이기도 한 작품이다. 이 극은 셰익스피어 희곡의 거의 모든 특징을 갖는다. 등장인물도 많고 다른 희곡보다 길이도 긴 편이다. 배신, 용서, 정체성 등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복합적으로 탐구하는 작품이다. 여성의 주체성과 인간 정체성의 탐구,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과 화해의 가능성을 다루며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햄릿 Hamlet」 갑자기 사망한 덴마크의 국왕, 왕의 동생 크로디어스는 왕위에 오르고 왕비 거트루드는 그와 재혼한다. 햄릿 왕자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사라지기도 전에 재혼한 어머니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난다. 아버지 유령은 햄릿에게 자기 동생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독살했다고 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본래 없다. 모든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각 인물의 죽음은 한 인간의 죽음 그 자체를 넘어 비극적인 정치와 의식 세계의 죽음을 뜻한다. 죽음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시대의 종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오롯이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자신 혹은 타인과 투쟁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리어왕 King Lear」 배신의 대가, 몰락한 왕의 최후. “지혜로워지기 전까지 늙지 말았어야 했다. Thou shouldst not have been old till thou hadst been wise.” 《리어왕》은 《햄릿》, 《오셀로》, 《맥베스》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불린다. 다른 작품은 인간적인 갈등 관계에서 몰락을 초래했다면, 《리어왕》은 매우 정치적이고 사회적 상황을 묘사한다. 《리어왕》 속의 인물들은 눈이 있으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신체적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놓친 것을 깨닫는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타인도, 자신을 둘러싼 상황도 인식할 수 있다.
사람은 가식과 아부, 아첨에 현혹될 수 있고 그것을 활용해 살아가기도 한다. 때로는 진실한 말을 해서 피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눈을 가린 채 살아갈 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반성하고, 고민한다면 삶이 더 충실할 것이다.
《오셀로 Othello》 무어인 오셀로는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워 신임받는 군위장 지위에 올랐다. 우연히 베니스 공국의 원로인 브러밴쇼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진다. 브러밴쇼는 오셀로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지만, 둘은 몰래 결혼한다. “분노에 찬 사람은 자신을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화풀이하기도 하지. Men in rage strike those that wish them best.”
셰익스피어가 추구하는 정의란 무엇이었나? 오셀로가 정의를 추구했다면 왜 비극적이니 결말로 이어졌을까? 그것은 그의 정의는 자신을 위한 정의였기 때문이다. 오셀로 진정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면,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한 증거와 모든 인물의 말을 들어본 후에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해에 빠져 자기중심적인 정의를 실현하려 했고, 그 결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채 모근 것을 파멸로 이끌어 갔다.
《맥베스 Macbeth》 스코틀랜드의 던컨 왕은 노르웨이와 결탁한 반란군 때문에 고민이다. 다행히 뛰어난 장군 맥베스와 뱅쿠오 덕분에 반란군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던컨 왕은 매우 기뻐하며 반역자의 영지였던 코더를 맥베스에게 하사한다. “슬픔을 말로 표현하라. 말하지 않는 슬픔은 과도하게 상처 입은 마음을 엮어버리고, 마음이 부서지게 만든다. Give sorrow The grief that does not speak whispers the o'erfraught heart and bids it break.”
맥베스는 내면에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욕망이 존재했고, 그 욕망을 조절하지 못한 건 그 자신이다. 결국 그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스스로의 욕망을 충족하다가 죄를 짓기에 이른다. 맥베스와 그의 부인은 죄를 지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사람은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꾐에 넘어가 욕망에 사로잡혀 살지 말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문장을 단편적이나마 원문과 함께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옆에 두고 자주 읽으면 삶이 더 풍요로울 듯하다.
책 소개.
『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 박예진 엮음 편역. 2024.12.01. 센텐스(Sentence). 223쪽. 19,400원.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1564.04.26.~1616.04.23.)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 1590년대 『헨리 6세』와 같은 역사극을 시리즈로 발표하는 등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영국 최고의 극작가” 지위에 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 인류사의 최고 고전을 남겼다.
박예진. 북 큐레이터, 고전문학 번역가. 저서. 『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등.
이 책은 센텐스(리텍콘텐츠 출판사 문학‧에세이 단행본 브랜드) 서평단으로 제공받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