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10년』

고사카 류카 小坂 流加 소설

by 안서조

이 책은 일본 소설이다. 2017년 2월 불치병으로 사망한 작가의 유작이다. 영화로 만들어져서 225만 명이 관람하였다. 내용은 불치의 유전병으로 10년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다.

주인공 마쓰리(여자)는 스무 살 여름, 청천벽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지금껏 자기 인생이 맑은 하늘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큰비도 없었던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에 불치병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의사는 진료 기록 차트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저도 알아요. 제게 남은 시간은 10년, 더 오래 산 사람은 없잖아요.” 마쓰리는 그렇게 말하며 병원 컴퓨터로 조사한 자료를 의사에게 내밀었다.


앞으로 10년밖에 살 수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며 느긋하게 지낼까? 아니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며 내달릴까? 살날이 10년밖에 안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이 순간 무엇을 할까.


나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본다. 답이 없다. 어제와 같이 오늘과 같이 삶을 이어갈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해” 때로는 누가 내게 말해 줬으면 좋겠다. 그 말만 들어도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할 테니까. 여자에게 들어도 좋을 거 같다. “사랑해” 얼마나 기분 좋은 말인지. 그 한마디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말해볼까.


마쓰리는 그때를 회상했다. 오늘 하루가 즐거웠고, 내일은 반드시 찾아오던 때. 돈이 없어도 여기 이 놀이기구들만 있으면 온종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신기한 지혜 있었고, 언제나 무한한 세계가 거기 펼쳐져 있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었다. 누가 더 행복할까. 죽을 날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간다.


항상 지금, 이 순간,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매 순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건 수많은 아픔과 그때 입은 상처로 깨달아 알지만, 그런데도 마음은 늘 개운하지가 않다. 모든 걸 가진 사람의 눈에는 뭐가 보일까.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아, 시간인가. 제일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맨 먼저 떠올랐다. 목숨에 연연하지 말자. 죽음이 두려워지면 더는 웃지 못할 테니까.


대체 며칠 밤이나 누군가의 목소리에 매질을 당해야 하는 걸까.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내가 좀 더 강하고 건강해서 계속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달려가서 무너질 듯 위태로운 너를 안아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은데. 그렇지만 지금 내 두 손은 너무나도 미덥지 못하고 불안정해서 너를 안아줄 수도 없다. 나는 부족하다. 너에게는 너무 부족하다.


나는 늘 실패만 하면서 살었어. 꼬이고 끊어지고 막혀서 돌아가야만 하는 인생이었다고. 매번 지면서도 속상하다는 말도 한번 못 해봤어. 그렇지만, 인생은 원래 그런 거 아냐? 삶은 대부분 실수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뭔가가 있고,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순간에도 빛 하나쯤은 존재하고, 불행 속에서도 가끔 행복이 찾아오고, 그럼 된 거 아냐? 어쩌다 좋은 일 도 있으니까, 보람을 느끼며 사는 거 아냐? 이리저리 도망만 치면 아무것도 못 찾아!


휴일 오후에 거실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건 참 행복한 일이구나. 꿈같은 현실이 가슴속에 감춰둔 진실을 한층 더 무겁게 만들었다. 행복이라는 빛이 강해질수록 그 아래에 있는 불행이라는 그림자도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다.


생명이 사랑스럽고 시간이 애달파서 미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야말로 죽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여운 나 자신과 이별하는 일도 죽음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길걸.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좀 더 일찍 이런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미련은 남지 않았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그 말을 전부 전할 수 있었다. 죽는 일도, 사는 일도 더는 두렵지 않았다.


죽을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내 마음이 모두 담긴 이 노트를 버리는 일뿐. 남은 시간 3년도 치열하게 살아보자. 삶이 이토록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죽을 준비는 끝났다. 지금부터는 온 힘을 다해 살아보는 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는 단어에는 추운 겨울날 끌어안은 보온 물주머니처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행복이 가득 담겨 있다. 사람이 죽는 건 뺄셈이지만, 사람이 태어나는 건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다.


10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생각도 못 한 채 강하고 편안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나와 같은 병인데 퇴원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일은 못 해도 최소한의 생활은 즐길 수 있다. 내가 그랫듯,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너무너무 외롭다. 혼자는 역시 외롭다. 손을 잡아줬으면 하는 밤도 있고, 불안해서 안아주길 바랄 때도 있고, 행복에 둘러싸인 채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순간도 있다. 솔직히 죽고 싶지 않다. 달아날 수 있다면 달아나고 싶다. 다시 한번 바깥에 나가 걸어보고 싶다. 하늘을 바라보며 내 두 다리로 자유롭고 경쾌하게 걷고, 뭐든 할 수 있는 내가 되어 계절의 숨결을 마음껏 들이마시고 싶다. 벚꽃 잎을 쫓아다니고,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올려다보고, 낙엽이 만든 융단 위를 바스락바스락 소리 내며 걷고, 새하얀 눈을 두 손에 담고 싶다.


소설을 읽으며 두 번 울었다. 창피했지만, 이 나이에 눈물을 흘릴 감성이 남아 있음에 감사했다. 죽음과 인간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책 소개.

『남은 인생 10년』 고사카 루카 지음. 김지연 옮김. 2024.03.26. (주)바이포엠 스튜디오. 356쪽. 17,000원.

고사카 류카 小坂 流加.(~2017. 2.)

시즈오카현 미시마시 출생. 대학 졸업 후 불치병에 걸려 『남은 인생 10년』을 집필하고 증세가 악화하여 세상을 떠났다. 제3회 고단샤 틴즈 하트 대상에서 기대상을 받았다. 『남은 인생 10년』은 제6회 시즈오카 서점 대상 ‘영상화하고 싶은 문고 부문’ 대상을 받았고 2021년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225만 명의 관객을 울린 2022년 상반기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김지연. 경북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일본어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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