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하고 어려워서다. 다시 이 책을 통해 장자에 관해 도전해 본다. 이 책의 저자가 남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나의 잘못된 선입견을 반성한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통해 “나만 그런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평생 나에게 구원이 되어준 것은 책이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책이 나의 유일한 벗이다. 책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이다. 다양한 세상과 다채로운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느끼고 깨닫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적인 다섯 명의 작가를 장자와 결부한다. 화학자이면서 작가인 프리모 레비, 초, 중등 교과서에서 만났던 알퐁스 도테,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 일본의 소설가 엔도 슈사쿠(1923~1996),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장자의 사상을 연결한다.
늘 앞일은 알 수 없는 것, 인연 따라 살면서, 다가오는 인연사는 ‘다만 겪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나에게 이 경험은 스스로 납득하기 힘든 오묘한 일로 다가왔다. 두고두고 되새겨 보아야 하는 그런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전등록 傳燈錄』이라는 책에 나온 구절
若因地倒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이는
還因地起 땅을 딛과 일어나야 한다.
離地求起 땅을 떠나 일어나려 하면
終無其理 끝끝내 일어설 수 없다.
땅에서 넘어진 자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바로 마음에서 넘어졌다는 말이 아닐까. 그러니 마음에서 넘어진 자, 마음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 그러게 마음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우리는 세상과 우리 삶에 대해 고뇌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언제나 빛과 그림자는 함께 다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유대계 이탈리아이니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이야기 『주기율표』를 소개한다. 레비는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였다. 이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수용소 생활을 회고한 『이것이 인간인가』를 썼다.
레비가 사람을 보는 눈은 장자에 등장하는 가공인물 ‘왕태’를 닮았다. 왕태는 발 하나를 잘린 불구인데 그 이유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왕태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지도 않고, 다정하게 어떤 문제를 상담해 주지도 않는데. 그를 따르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 공자는 기쁨이나 즐거움을 표현할 때 락樂 과 열悅을 구분한다. 락은 밖으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아 얻어지는 즐거움, 열은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어떤 깨달음에서 얻어지는 기쁨이다. 불가에서는 안에서 얻은 깨달음의 기쁨을 법열이라고 한다. 왕태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 거울과 같은 것, 장자가 권하는 ‘상호 소통의 연대’를 이룬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사이의 모순과 갈등, 그리고 옳고 그름의 가치와 기준이 사람 수만큼이나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애초부터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논어에 ‘덕불고필유린 德不孤必有隣’이란 구절이 있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들을 대하고 맞이하는 사람의 덕에서 기인한다. 장자는 지인至人은 마음을 거울같이 쓴다(用心若鏡)고 했다. 거울은 보내지도 맞이하지도 않으며, 응하되 저장하지 않는다. 거울 같은 마음은 모든 사태를 감당하지만,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는 대로 맞이하고 가는 대로 보내는 것이 거울 같은 마음이다.
장자의 ‘각득기의(各得其宜)’라는 말이 있다. 모든 존재에게는 각자에게 마땅한 어떤 길이 있다. 모든 생명은 실존을 위한 자기만의 습성을 지니고 있고, 제각기 독특한 삶의 길을 가지고 있다. 실존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인간들이 선악으로 구분 짓고 이해로 결단하며 이성으로 도덕을 규정하고 영성에 대한 끈첪는 갈증으로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명료하게 인정되는 것이 있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각자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것이 실존이라는것, 스스로가 의식하든 못하든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 불교식으로 말하면 업이요, 장자식을 말하면 각득기의인 것. 장자는 자신의 각득기의를 알고 그것을 온전히 하는 것을 재전才全이라고 한다.
『장자』 첫 장에 남녕을 향해 비행하는 ‘붕새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마지막 장에 ‘혼돈의 죽음’으로 전편이 마무리된다. 여기에 ‘나비의 꿈(胡蝶夢)’을 더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실은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꿈같은 것임을 말한다.
‘좌망座忘’이란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매이지 않는 마음인데,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것을 더 이상 지니지 않는 잊음忘을 통해 대상에 매이지도 개의하지도 않는 그런 상태로 세계와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장자는 이를 동어대통同於大通이라고 했다.
장자 전 권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미치지 못했다.
책 소개
『장자, 고뇌하는 인간과 대면하다』 정용선 지음. 2018.06.11. (주)빈빈책방. 287쪽. 16,000원.
정용선.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서 석사학위.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 『한국의 사상』, 『장자의 해체적 사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