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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tis Dec 04. 2024

Clean(2)

아련한 꿈이 부르는 것처럼 몽환적인 피아노 음색. 알람음으로 설정해 둔 ‘사카모토 류이치’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5시 정각을 알렸다.

밤새 더 부었는지 아둔해진 눈을 슬며시 뜨고서, 나는 어둠 속을 더듬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일어나지 않고, 망가진 태엽처럼 반복되는 음악의 단편(斷片)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눈을 뜨고 듣는 꿈의 노래. 아무리 좋아하는 노래라도 알람으로 정하는 순간 싫어진다던데,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인가 보다.

나는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태아같이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게으름은 사치일 텐데?]


그런 내게 나는 아직 삶의 언저리에 있다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채찍질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나는 벌떡 일어나 알람을 껐다. 조용히 눈을 감은 전화기. 어둠과 적막 속에서 또 하루가 시작되고 말았다.

어슴푸레 보이는 내 손과 팔. 빛을 통과시키지 않는 질량의 역겨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지지 못하는 존재의 무거움, 탁함, 더러움. 그 죄가 참을 수 없이 싫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목에 붙어 있는 반창고를 어루만졌다. 플라스틱 마네킹의 표면처럼 균일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혹 부모님께 들킬까 봐 불안해했었는데, 이제는 안정감마저 든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딩동댕동-

개학하고 엿새째,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제 대략 무리를 이룬 아이들은 같이 도시락을 먹거나 매점으로 향했다. 나처럼 아직 혼자 지내는 이들은 그 나름대로 시간을 보낼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줄곧 그래왔듯이, 먼저 귀에 이어폰을 꽂은 다음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시끌벅적한 교실 안 소음이 간간이 음악소리를 뚫고 들어왔다.  


“오호!? 웬일이야? 우리 엄마 오늘 신경 좀 쓰셨는데?”


“악... 오늘도 이거야? 지겨워라. 차라리 매점 갈까?”


내겐 저런 놀라움이나 실망이 필요 없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과 아침에 만든 계란말이, 전부 내 손으로 직접 싼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감흥 없이 꾸역꾸역 밥과 반찬을 차례로 입에 넣었다. 입에 넣은 음식을 씹고, 삼키고, 다시 음식을 입에 넣고, 마치 차에 기름을 넣는 것 같은 행위가 반복된다.

내가 진짜 기계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자리에 앉았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 집중하며 비어 가는 도시락통만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어~이~”


앞에 앉은 그가 내 얼굴 앞에 손을 저어 보였다. 나는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


“불렀는데 못 들었나 봐.”


조금 무안해진 나는 다른 쪽 이어폰도 뺀 다음 그에게 사과했다.  


“미안, 음악을 듣고 있어서 못 들었어.”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너 밥 되게 조금 먹는다. 초등학생인 내 여동생도 이거보다 많이 먹을 거 같은데.”


“어... 그래?”


“이렇게 먹으니까 그렇게 말랐지. 배 안 고파?”


그는 내 얼굴과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괜찮은데.”


이 세상에 남길 흔적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 음식을 적게 먹어 왔다. 그래서 이젠 속이 비어 있는 느낌에 익숙했다.

그나저나 갑자기 나타나 난데없이 남의 식사량에 관심을 보이다니. 나는 그의 명찰을 힐끔 쳐다보았다.  


‘김다윗.’


그는 날렵하고 힘이 넘치는 움직임으로 작은 체구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수며 첫 체육시간부터 반 모두에게 큰 인상을 남긴 아이였다. 누가 입어도 거기서 거기인 나일론 체육복 안에 가려진 그의 몸은 분명 꽤 단단할 것이었다. 

두툼한 눈썹 밑 큼직한 갈색 눈과 시원한 입매, 투블록 스타일로 다듬은 곱슬 진 갈색 머리카락. 땀을 흘리며 활짝 웃던 그 모습은 딱 스포츠 만화 주인공의 정석처럼 보였다. 얼굴도 호감형인 데다 성격도 쾌활한 그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인기인이었다.  


‘그런 녀석이 왜 나 같은 아웃사이더한테?’


김다윗은 어쩐지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서 내 도시락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의아해하는 내 눈빛을 눈치채고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기, 안 그래도 양이 적은데 이런 부탁하기 정말 미안하지만... 나 장조림 하나만 먹어도 돼?”


“어?”


“장조림, 나 되게 좋아해서...”


갈수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시선이 장조림으로 향했다. 뜻밖의 전개에 잠시 당황했던 나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에게 젓가락을 내밀었다.  


“어, 그래. 자.”


“고마워!”


꼭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강아지가 간식에 달려드는 것처럼, 그는 민첩한 젓가락질로 제일 작은 장조림 조각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천천히 고기를 씹었다.  


“으음~ 맛있다 하...”


최대한 오래 맛을 느끼려는 건지 김다윗의 씹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저렇게 감동하며 음식을 먹는 모습이 신기해서, 나는 그에게 남은 장조림을 모두 양보하기로 했다.   


“더 먹고 싶으면 다 먹어도 돼.”


“정말?!”


“메추리알도.”


“진짜... 그래도 돼?”


“응. 사실 나 별로 배가 안 고파서.”


“정말? 그럼 잘 먹을게!”


김다윗은 눈을 빛내며 장조림 조각을 하나하나 입에 쑤셔 넣더니, 고기 조각으로 가득 찬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었다.  


“너 정말 좋은 녀석이구나.”


‘정말 단순한 녀석이구나.’


더 이상 그에게 흥미가 없어진 나는 그가 돌려준 젓가락을 받아 들고 말없이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김다윗은 우물우물 씹던 고기를 꿀꺽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내게 물었다.    


“너 뭐 좋아해? 매점에서 파는 거 중에서.”


“어?”


“얻어먹었으니 보답을 해야지.”


‘유혹에는 약하지만 나름 양심적인 타입인가 보네.’

 

좋아하는 거. 좋아하는 거라.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대충 언젠가 마셨던 음료 이름을 댔다.  


“데자와.”


김다윗은 그걸 듣고 입을 떡 벌렸다.

 

“으억. 너 취향 되게 특이하다. 난 저번에 그거 마시다가 토할 뻔...”


“아님 아무거나. 사실 안 줘도 상관없어.”


슬슬 대화를 끝내고 싶었던 나는 도시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김다윗이 살짝 당황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그대로 잠시 서있다가 아무 말 없이 떠났다.  


“아하하하하.”


나는 눈을 들어 웃음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다른 여자아이 세명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녀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서로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있었다.  


남은 밥을 마저 입에 쑤셔 넣은 나는 빈 도시락통을 포개어 가방에 넣었다.

다 정리해 놓고 보니 책상 위쪽에 간장 국물이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김다윗이 먹다가 흘린 모양이었다.  


“......”


나는 가방에서 물통과 휴대용 티슈를 꺼내어 책상을 닦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섰다.   





나는 잠시 복도에 서서 어딜 먼저 가볼까 하고 고민했다.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인적이 없는 조용한 곳을 찾고 싶었다.

  

‘혹시 옥상이 있으려나?’


느긋하게 하나하나 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맨 위층인 4층에 이르렀고, 거기서 더 올라가자 굳게 닫힌 철문이 보였다.  


‘저게 옥상으로 통하는 문인가?’


문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계단을 올라가는데, 밑에서 웬 어른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학생? 지금 어딜 가려고?”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나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가슴까지 오는 검은 생머리를 늘어뜨린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저... 옥상이 있나 궁금해서요.”


“옥상? 옥상에 가서 뭐 하게? 혹시 너..?”


여자치고는 중저음에 속하는 목소리 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안 그래도 살짝 눈꼬리가 올라간 눈이 더욱 매서워 보였다.  


“아니요. 이상한 거 하려던 건 아니에요. 그냥 조용한 곳이 있나 해서요...”


“흐음~?”


그녀는 팔짱을 끼고 나를 위아래로 뜯어보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왔다. 건조하고 깔끔한 향기가 은은히 풍겨왔다. 회색빛이 감도는 파란 블라우스와 군청색 H 라인 스커트가 다소 날카로운 인상에 전문적인 느낌을 더하고 있었다.

바로 내 앞까지 온 그녀는 장신이었다. 그리 굽이 높아 보이지도 않는 데다 한 계단 아래에 있는데, 남학생들 중에서도 꽤 키가 큰 편인 나와 눈높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녀가 내 명찰을 보며 물었다.  


“신입생이구나?”


“아, 네.”


우리 학교는 학년별로 명찰 색깔이 다른데, 현재 1학년은 노란색, 2학년은 하늘색, 3학년은 분홍색 명찰을 쓰고 있었다. 그걸 알아본 걸로 봐서 이 사람은 우리 학교 직원일 확률이 높았다.  


‘선생님인 거 같은데, 무슨 과목이지?’


“담임 선생님은 누구야?”


“아...”


“훗, 걱정 마. 꼰지르려는 거 아니니까. 딱히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녀는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웃으니 한결 부드러워진 인상, 거기에 털털하고 격의 없는 말투가 경계심을 조금 풀게 만들었다.  


“강혜정 선생님이요.”


“아, 혜정이 반 애구나.”


그녀는 담임 선생님 이름을 마치 친구 부르듯이 불렀다. 그러고 보니 담임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대였다.  


“옥상 문은 잠겨 있어. 하도 ‘문제아’들이 들락거려서 말이지.”


문제아라는 말을 할 때 그녀의 입에서 피식하고 비웃음 비슷한 것이 새어 나왔다.   


“아, 네... 그거 유감이네요.”


“어지간히 혼자 있고 싶은가 보네?”


“네, 뭐. 가끔은.”


그녀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면서 대뜸 농담을 했다.  


“조심해. 여기는 유령이 나오니까. 13년 전에 죽은 여자아이 유령.”


“예?”


“까딱 잘못하면 너도 그 애한테 홀려서 여기에 붙박이고 말 걸.”


후훗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의 뒷모습이 멀어져 갔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건 좀 곤란한걸요.”


그 이후로도 마땅히 혼자 있기 좋은 장소를 찾지 못한 채, 점심시간이 끝날 때 즈음 나는 하릴없이 교실로 돌아왔다.  


“어..?”


책상 위에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데자와 캔 하나가 놓여 있었다.  





<11년 후>


눈에 갇힌 지 6일째 아침, 두 남자는 파란 침낭 속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이제 익숙할 때도 됐건만, 풍요로웠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자 푸른 눈동자의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식량을 너무 낭비했나...”


“그러게 내가 뭐랬어.”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눈을 감은 채 남자에게 핀잔을 주었다.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이렇게 눈이 오래 내릴 거라고 생각 못 했지.”


“무모할 정도의 낙천성과 안이함, 사장님은 늘 그게 문제야.”


“그러니까 든든한 파트너인 네가 있잖아.”


“내가 없으면 어쩔 건데?”


“음...”


남자는 눈을 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침 해마저 삼킨 눈보라가 카라반 속 정적을 음산한 음색으로 칠하고 있는 가운데, 청년이 스르륵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


“어?”


“장조림 먹어본 적 있어?”


“장... 뭐?”


“장조림. 소고기 중 기름이 적은 부위를 간장에 조려서 만드는 건데, 한국에서는 꽤 인기 있는 반찬이야. 달콤 짭짜름해서 특히 애들이 좋아해. 아마 사장님도 좋아할걸.”


“오~ 본 적은 없지만 한번 먹어보고 싶다.”


“먹어 볼래?”


“어?”


남자는 고개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어슴푸레한 푸른 눈을 텅 빈 검은 눈동자가 맞이했다.  


“사람 엉덩이 근육이 딱 그거처럼 생겼어.”


“뭐, 뭐야. 왜 갑자기 호러로 빠지는 건데. 혹시 배고파서 그래?”


당황한 남자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청년의 말을 농담으로 받았다. 그러나 청년은 변함없이 공허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만약 먹을 게 다 떨어졌는데도 눈이 안 녹으면,”


“야, 잠시만. 안 그래도 추워서 몸이 떨리는데 너 때문에 더...”


먹어.”


순간 남자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가셨다.

청년은 고개를 돌려 천장에 대고 유언을 남기듯이 말했다.


“부탁할게. 내 흔적 같은 건 이 세상에 하나도 남기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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