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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tis Dec 07. 2024

Clean(3)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스카보로 장에 가시나요)?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 그리고 타임).” 


계피와 향신료, 허브 향으로 가득 찬 늦가을의 축제장.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녀만이 살아 움직였다.  


- 아름다운 눈동자네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녀가 나를 찾아내었다.  


- 마치 눈이 그치고 난 겨울 하늘처럼.  


그날 나는 운명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그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내 안부를 전해줘요).” 


그녀를 안으면 내 삶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녀에게 나 또한 그러하리라고, 숙명처럼 그녀를 좀먹고 있던 그 공허를, 비어있는 반쪽을 내가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그녀는 한때 내 진실한 사랑이었죠).”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다.  


쌀쌀한 바람이 겨울을 예고하던 때 내게 온 그녀는 눈이 녹아 사라질 무렵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어째서였을까.  


- 당신은 정말 상냥한 사람이야. 같이 있으면 너무 편안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 그게 불편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Tell him to find me an acre of land(그에게 1 에이커 넓이의 땅을 내게 달라고 해주세요),

Between the salt water and the sea strands(바다와 바닷가 사이의 땅을요).

Then he'll be a true love of mine(그러면 그는 내 진실한 사랑이 될 거예요).” 


바다와 바닷가 사이의 땅처럼,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진실한 사랑이라는 환영에 눈이 멀어 평생 허상을 쫓아 내달리는, 가련한 큐피드의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날 떠난 것 자체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어. 떠나면서 모든 흔적을 지운 것만큼은.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이 다 꿈이었던 것처럼.  

버려진 사랑의 감정과 기억, 난 그 무게에 짓눌려 질식할 것만 같은데. 그런 나를 비웃 듯 너무나 깔끔하고 가볍게 사라진 그녀를, 나는 절대... 


“부탁할게. 내 흔적 같은 건 이 세상에 하나도 남기지 말아 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텅 비었던 눈동자에 이것저것 섞인 탁한 색이 서려 있다.  

 

“가능한 깔끔하게 처리해 줘.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고, 머리카락은 불태우고, 뼈는 될 수 있는 대로 잘게 부숴서 어디 숲 깊숙한 곳에 여기저기 뿌리고.” 


저런 끔찍한 소리를 무슨 작전 설명하는 것처럼 저렇게 무미건조하게 늘어놓다니.  


“어차피 지난 4년간 내가 어디 있었는지 아무도 몰라. 그리고 그날 내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걸 불태웠어.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사람을 후회와 미련의 구렁텅이 속에 남겨둔 채 혼자만 깨끗이 사라지려고 하다니. 

어쩜 이렇게나 닮았을까. 정말 싫은 일이다.  


“싫어.” 


“... 왜?” 


“왜냐니. 너 같으면 ‘그래, 그러자’ 하겠어? 뭐, 엉덩이 근육? 미쳤냐? 더럽게 내가 네 엉덩이 살을 왜 먹어. 게다가 너 비쩍 말라서 먹을 것도 없거든? 고작 고기 조금 먹으려고 귀찮게 그런 짓을 왜 해?” 


“... 하아. 애초에 부탁할 상대가 글러 먹었네.” 


“글러 먹은 건 네 정신이야. 사이코야?” 


“... 아니라고 장담은 못하지.” 


그가 피식 웃는다. 그걸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된다.  


“그리고 너 하나 아주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는데.” 


“뭘?” 


“사람이 남기는 흔적은 육신이나 기록이 전부가 아니야. 누군가가 널 기억하는 한 너의 흔적은 세상에 남아 있는 거야. 네 가족과 친구, 그들의 기억 안에서 넌 계속 존재하는 거라고.” 


“... 잘 됐네. 진짜 날 기억하는 사람 따위, 이 세상에는 없으니까.” 


“왜 없어? 네 눈앞에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사장님이?”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비스듬히 벌어진 입에서 나와 고개를 쳐든다.  


“우린 그저 서로의 이기가 맞아서 함께 다녔던 거뿐이야. 딱 그 정도, 필요한 정도만 터치하고 지낸 사이잖아?” 


그런 네가 뭘 알아서 라며, 태양왕의 권위처럼 하늘을 찌르는 그의 자존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나 오만한 그는 모른다. 자기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그가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 달걀형 얼굴에 검은 눈, 자주 다듬어 주지 않아서 자꾸만 눈을 찌르는 검은 머리카락... 


내 볼에 화석처럼 남아 있는 그 쓰라림만큼이나, 나는 그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  


“확인해 볼래? 내가 너에 대해 잘 아는지 모르는지.” 


“뭐?” 


“크흠. I believe~ 그댕 겨태 업취마안~ 초이는 말이죠, 겉으로는 재수 없게 굴어도 속은 은근히 따뜻해요.” 


“뭐야 지금? 뭔 짓을 하는 거야?” 


“이.대.로우~ 이비여르운 아니게쵸~ 그리고 요리를 참 잘해요. 뭐 해달라고 하면 투덜대면서도 어떻게든 레시피 찾아서 해주거든요? 은근히 부려먹는 재미가 있어요.” 


“... 그런 거였어.” 


“I believe~ 나에케 오능 키르응~ 그런데, 착한데, 정작 자기는 착한 걸 몰라요. 바보 같죠.” 


“... 나 goose bumps(닭살) 돋아서 죽을 거 같으니까 그만해 줄래?” 


“어! 거위(goose)가 되면 잡아먹는 거 한번 생각해 볼게. 아, 소스는 만들어 놓고 가.” 


“......” 


“요리 말고도 의외로 잘하는 거 많은데... 아, 맞다! 노래, 노래 잘 부르지?” 


“아닌데.” 


“정색하는 거 보니까 맞는데?” 


“아니라고.” 


“그래? 그럼 지금 해봐.” 


“뭐를..?” 


“노래. 아무 거나 너 좋아하는 걸로.”  





<11년 전>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신 뒤, 집에 ‘일상’이 돌아왔다.

짤각. 탁. 탁.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앉은 저녁상. 이미 죽어 식탁에 오른 음식과 그 위를 아무 말 없이 오가는 젓가락.  


[오늘 새벽 서울 한 주택에서 일어난 화재로 일가족 중 세 명이 숨지고 한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OOO 기자가...] 


거실 텔레비전은 이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배경음을 틀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함께 먹는 사람과 속도를 맞추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미덕은 우리 집에서 버려진 지 오래다. 

먼저 식사를 마친 나는 빈 밥그릇과 국그릇을 포개어 수저와 함께 싱크대로 들고 가서 찌꺼기가 눌어붙지 않도록 꼼꼼하게 물을 묻혔다. 그다음 물을 마시러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고기 조각은 거의 없고 간장만 흥건히 남은 반찬통이 눈에 띄었다.  


“......” 


나는 컵에 물을 따른 뒤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애써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면서 식사만 계속하시는, 마치 의식을 치르는 듯한 그 광경에서 벗어났다.   





개학하고 2주가 다 되어가지만 학교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금방 바뀔 줄 알았던 자리도 아직 그대로. 옆자리의 그녀와는 여전히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있다.  


“와, 오늘도 따로 싸와 준거야?” 


김다윗은 지겹지도 않은지 3일 내리 내가 싸 온 장조림을 얻어먹었다.  


“근데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 거 같아.” 


“어? 장조림 다 떨어졌어?” 


“응.” 


“그렇구나... 너희 어머니 장조림 되게 맛있는데, 아쉽다.” 


“......” 


“어머니... 많이 바쁘실까?” 


그는 옆구리를 찔러대는 염치가 따가운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비추었다.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없이 무력한 표정으로 앉아 계시거나 누워 계시는 엄마, 가끔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저으시는 엄마, 슬픈 얼굴로 몰래 흐느끼시는 엄마, 그리고 겨울날 바위같이 무표정한 얼굴의 엄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온몸이 경직된 채 내면의 괴로움과 싸우시던 그 모습. 

엄마는 가만히 계셔도 바쁜 사람이었다.  


“응. 좀.” 


“그렇구나.” 


“그렇게 좋아하는데 너희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어때? 좀 만들어 주시라고.” 


“아, 안돼. 우리 엄마 완전 요리꽝이시거든.” 


“아.” 


“그나저나 정말 좋겠다.” 


“응?” 


“요리 잘하시는 어머니 계셔서.” 


“......” 


장조림 때문에 저런 평가를 내린 거라면 그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나여야 했다. 장조림을 만든 건 나니까. 

원체 집안일 자체에 흥미가 없으신 탓인지, 엄마의 요리는 맛있다고 하기엔 힘들었다.  

 

‘하지만 내 요리도 그다지 맛있는 편은 아닌데.’ 


나는 고기가 떠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조림 국물을 내려다보며 잠시 김다윗의 미각에 의구심을 가졌다. 그가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엄마의 요리는 도무지 사랑할 수가 없어.” 


“... 우와.” 


“왜 그렇게 놀라?” 


“우리 나이 남자애치고는 어머니랑 사이가 좋구나 싶어서.” 


“그런가? 너는 안 그래?” 


“... 아니.” 


김다윗은 애매한 내 대답을 듣고 얼핏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는지 씩 웃어 보였다. 


“암튼 지금까지 잘 먹었어.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나는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장조림 만드는 것 정도야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신 지금은 괜히 부엌에서 얼쩡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뭐 매점에서 필요한 거 없어?” 


“없어.” 


“왜? 데자와도?” 


“응.” 


이 이상 이 녀석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김다윗이 떠난 뒤, 나는 오늘도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교실을 나섰다. 왁자지껄. 아이들로 붐비는 복도는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장애물을 피해 이리저리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공중정원으로 향하는 문에 이르렀다. 

학교는 4층짜리 건물 두 개가 앞뒤로 나란히 서있는 구조로, 두 건물 사이 2층 높이에 공중정원이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었다. 정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렇게 잘 관리가 되어 있는 건 아니어서, 여기저기 잡초가 무성하고 벤치도 낡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아주 궂은 날씨만 아니면 많은 학생들이 그곳을 찾았다. 풀만 가득한 지금도 저런데, 나중에 본격적으로 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게 분명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곳을 지나쳤다.  


‘역시 없나.’ 


별 소득 없이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려는데, 누군가 앞문에서 소리를 질렀다.  


“30번! 30번 누구야?” 


“난데?” 


한창 친구들과 잡담을 하고 있던 옆자리 그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일어서며 대답했다.  


“선생님이 면담하러 오래.” 


“어? 내 차례 아닌데?” 


그녀는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분명 저 아이는 내 앞 번호, 그러니 다음은 내 차례여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두 명이나 건너뛰다니. 

내 앞 번호인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몰라. 담임이 30번 오라고 하던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교실을 나간 지 수 분 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그녀가 돌아왔다. 이윽고 점심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고, 내가 막 귀에서 이어폰을 뺀 그때 그녀가 자기 책상을 향해 중얼거렸다.  


“다음에 28번 오래.”  




 

5교시 후 쉬는 시간, 나는 교무실로 향했다. 

널따란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자 이전 학교에서 봤던 교무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떳떳한 이유로 찾아왔어도 교무실은 교무실인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교무실을 죽 둘러보았다. 멀리서 갈색 곱슬머리와 반듯한 하얀 이마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는 웬 여학생 두 명이 서서 깔깔 웃고 있었다.  


‘누구랑 말씀 중이신가?’ 


다음 쉬는 시간에 올까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기왕 왔으니 일단 얼굴이라도 비추기로 했다. 나중에 선생님한테 기다렸는데 왜 안 왔냐고 핀잔을 듣는 것보단 나을 거 같았다. 

담임 선생님 자리로 가면서 나는 괜스레 다른 선생님들의 책상을 힐끔거렸다. 디자인은 천편일률적이지만 주인이 가르치는 과목 및 그들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물건들로 책상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윽고 담임 선생님 자리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저...” 


“어, 왔구나. 얘들아 미안. 나 학생이랑 면담이 있어서 지금은 좀 어려울 거 같네.” 


“아, 네. 나중에 다시 올게요. 감사합니다!” 


“그래, 수고해.” 


나는 선생님께 깍듯이 인사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그들을 곁눈으로 슬쩍 보았다. 그들의 손에는 작은 수첩과 펜이 들려 있었다.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아서 몇 학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에 제법 여유가 있는 걸로 보아 1학년은 아닌 듯했다. 

그들이 충분히 멀어지자 선생님은 내게 자리를 권하셨다.  


“여기 의자에 앉아.” 


나는 의자에 앉으면서 가능한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책상 위를 훑어보았다. 영어 선생님이신 만큼 영어 서적이 대부분인 책꽂이에 왠지 눈에 띄는 책 한 권이 있었다. 파스텔 톤 색상의 물방울무늬 포장지로 싸여 있어 무슨 책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교육 관련 서적이나 소설책이라고 하기에는 두께가 너무 얇았다. 


‘시집인가?’


책상 위에는 내 중학교 때 사진과 함께 구간구간 반듯한 손글씨가 적힌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아마도 중학교에서 건너온 내 학생기록부 사본인 듯했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면담을 시작하셨다. 


“그래, 학교생활은 어때?” 


“좋습니다.” 


“어? 정말?” 


마치 내 대답이 의외라는 것처럼, 선생님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물으셨다. 그 바람에 순간 나는 당황했다.   


“네... 에..?” 


“그렇구나. 그거 다행이네. 반 친구들과는 별문제 없고?” 


“네.” 


내 대답을 끝으로 선생님과 나 사이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서 그저 말없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만 계셨다. 어색한 시간이 길어지고, 내 가슴속엔 마치 화재현장을 채우는 연기와도 같은 불편함이 차올랐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불편함이 불안감으로 바뀔 무렵, 드디어 선생님이 입을 여셨다.  


“깨끗하네.” 


“예?” 


“네 얼굴. 무슨 사춘기 남자애 얼굴이 여드름 하나 없이 깨끗하니?”  


“아, 네... 그냥 원래 그런데요...” 


너무 얼이 빠져서 멍청하게 대답을 한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얼른 어른들이 좋아하는 순진한 미소를 장착하고서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말을 생각해 냈다.  


“그러시는 선생님이야말로 피부가 굉장히 좋으세요. 꼭 백옥 같아요.” 


“어머, 그래?” 


소녀처럼 기뻐하시는 선생님을 보며 나는 내가 말을 잘 골랐구나 하고 안심했다. 선생님과 나는 반달눈을 하고 서로에게 웃어 보였다. 다 잘 돌아가고 있다고 확신한 그때였다.  


“너 일부러 안 하는 거지?” 


“... 네?” 


“지금 보니까 어떻게 하면 상대가 좋아할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내가 한 마디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데, 선생님이 책상 위에 놓인 내 학생기록부를 한 장 한 장 넘기시며 말씀하셨다.  


“성적도 우수하고, 전 담임 선생님들의 평가도 다 좋고. 딱 하나 아쉬운 교우관계도 딱히 문제가 될 건 아니었고... 으음~ 뭔가 너무 깨끗하달까?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잘하는 것도, 아쉬운 점도.” 


“......” 


선생님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이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가 잘못되었단 건가? 대체 뭐가 잘못되었단 거지?’  


“혹시 고민 있니?” 


마치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득한 목소리. 그러나 답은 뻔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래?” 


또다시 찾아온 짧은 정적.   


“수업 시작하겠다. 그만 가봐. 다음에 29번 와달라고 좀 전해주고.” 


나는 말없이 고개만 숙여 인사를 하고, 선생님의 미소를 뒤로하며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필름을 하나하나 확인하듯이 아까 면담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뭔가 잘못된 거 같긴 한데, 도무지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일부러 안 하는 거지? 


‘뭐를..?’  


입술 안쪽 살이 초조한 송곳니에 깨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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