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이 필요해.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데 뭐. 나 쓰고 싶은 거나 실컷 쓰자.'
더 이상 이런 자세는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읽게 만들려면 작전이 필요했습니다.
(주의: 이하는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약은 약사에게, 진단은 의사에게, 흥행 비법은 다른 네임드 작가님들에게'.
여기 태그에 '실패'가 괜히 있겠어요?)
1. 이야기의 주제와 그에 맞는 스토리라인
주제는 이미 정해졌죠. 그 주제 때문에 시작한 일이니까요.
'저처럼 살지 마세요.'
문제는 이놈의 주관적이고 애매한 주제를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나갈 것인가였습니다.
저는 '나의 삶'이라는 흙탕물에서 몇 가지 키워드를 건져내었습니다.
우울증, 낮은 자존감, 착한 아이 증후군, 허구의 독립, 불신, 완벽주의자, 회피, 비관론자, 가면, 연극...
"... 이거 너무 무겁고 어둡지 않아?"
지금껏 겪은 조회수 가뭄의 가장 큰 원인은 무거운 주제("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인류가 과연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넘겨도 되는가?" 같은)라고 여겼던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상대는 웹소설을 찾아온 독자, 그들이 원하는 건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니까요.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가만, 주제가 무겁다고 해서 재미가 없으란 법은 없잖아?'
그렇습니다. 제가 실패만 거듭한 이유는 웹소설 시장에 만연한 도파민 만능주의를 탓하며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무거운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내는 작품이 얼마나 많습니까? 낄낄 웃으며 보게 만들어 놓고 가끔 훅! 진지한 주제를 한방 날려 독자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명작이요. 사실 대부분의 개그만화는 이런 방법으로 밸런스 조절을 하고 있답니다.
초콜릿에 박힌 소금덩어리처럼, 바보 같은 놈의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딥한 철학처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그만). 대비 효과로 인해 이는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히려 개그보다 이런 장면들이 더 많이 회자되기도 하지요.
또한 정반대의 길도 있습니다. 진지하게 나가다가 갑자기 꽈당!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나 개그를 보여주며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요.
작품 전반에서 어떤 문제를 다루는 경우에는 작가가 그에 대한 의견이나 생각을 더 많이 표현할 수 있기에 좋긴 하지만, 자칫 너무 어렵고 현학적으로 흘러가거나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장치로 기분전환을 시키는 것입니다.
선생님들께서 수업 시간에 많이 쓰시는 그 방법과 비슷합니다. 이 경우엔 주로 실패합니다만.
게다가, 재미가 어디 웃긴 것만 재미겠습니까? 스릴과 감동도 재미지요.
참신하고 기괴한 소재와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들이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거나(이토 준지 시리즈가 대표적), 절망 속에서도 잔잔히 빛나는 휴머니즘을 보여 독자들로 하여금 '제발 꺼트리지 말아 줘' 하고 엔딩까지 확인하게 만드는 것(요새는 독자들의 뒤통수를 박살 내는 경우가 많지만요) 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 사람을 홀릴 만큼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에, 가벼움과 무거움 두 가지로 단순히 생각했습니다.
어느 것을 주(main)로 할 것이냐에 따라 글이 완전히 달라질 상황.
선택의 기로에서 저는 후자를 골랐습니다. 재미있게 쓸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독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우울증이나 마음의 병 같은 문제들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라서였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무겁게 쓰고, 중간에 외전식으로 정신 나간 개그를 집어넣자.'
이것이 제가 처음에 세운 작전이었습니다.
2. 타깃 독자층과 이를 반영한 캐릭터
그럼 이제 누구를 위해, 누구에 대해 쓸 것인지를 생각해야겠죠.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생각나는 건 자식과 부모였습니다.
부모님들, 또는 (나이 상관없이) 앞으로 부모가 되실 분들께는 "기질에 따라 자녀분이 저처럼 될 수도 있으니 부디 자녀분 앞에서는 한 번 더 생각하시고 말과 행동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하고 싶었고,
자녀 입장에 계신 분들께는 "혹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최악으로 가지 마시고 주변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 외 주변에 비슷한 케이스가 있는 분들께는 "여기 주인공 같은 사람이 있다면 잘 지켜봐 주시고 관심 좀 가져주세요"라고 하고 싶었어요.
아직 미성년인 캐릭터 쪽이 서사적으로도 더 쉽고 미성숙함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주인공은 학생이 되었습니다. 연령은 그나마 제가 가장 즐거웠던, 지금의 베프를 만난 고등학교 1학년, 17세(만 16세)로 정했어요.
너무 '미성숙한 부모 vs 정신적으로 힘든 자식' 구도로 가면 이야기가 딱딱해지고 한정될 거 같아서, 이야기의 초점은 주인공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변화하는 과정에 맞추었습니다. 이를 계절의 변화로 표현하고자 했고, 그래서 '사계'가 되었죠.
이는 초기 작품의 설정으로, 리메이크를 거친 지금은 청년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도 평행선처럼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란 게 함정...)
3. 그 외의 요소
(1) 관련 사회문제
- 아동학대: 제가 직접 겪은 건 주로 정서적 방임입니다만, 다른 종류의 아동학대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평가된 정서적 방임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그걸 메인으로 삼긴 했으나, 육체적/성적 학대를 안 다룰 수는 없지요. 따라서 주인공은 정서적 학대의 피해자, 다른 주요 인물 두 사람은 육체적, 성적 학대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 집단 따돌림: 사회 분위기가 성과지향적으로 흘러가면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문제이지요. 아이들이 공생보다는 남을 짓밟고서라도 올라가야 하는 압박 속에서 자라니... 이 사안에 대해 어른들이 보이는 태도에도 문제가 많고요.
해당 등장인물들(가해자, 피해자, 부모, 학교)이 이 문제 안에서 각자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그 장기적인 영향이 어떠한지, 단편적 에피소드와 이어진 인연들을 통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 부모의 과잉기대: '우리 아이는 특별해!... 특별한 거 맞지? 아니면 어쩌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영재 신드롬이란 것이 있다죠. 부모가 자녀의 성적에 집착하는 것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한번 얘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여름 이야기에서 다루었는데, 리메이크버전은 아직 여름까지 가지 못했죠...)
(2) 조회수 상승을 노리고 추가한 매력(?) 요소들
- 임포스터 신드롬(Impostor Syndrome; 가면 증후군): '임포스터 신드롬'은 실제로 뛰어난 실력과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과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사기꾼(임포스터)이라 생각하며, 사람들이 이걸 알게 될까 봐 늘 불안해합니다.
임포스터 신드롬 자체보다는, 주인공이 다방면에서 재능(공부, 그림, 노래, 요리 등)을 보이는 주제에 낮은 자존감 때문에 그에 대해 시큰둥하다는 설정을 붙였습니다. 아무리 절 모델로 만들어졌다지만, 저를 닮아서야 어디 인기가 있겠습니까! 안 그래도 음울한 놈인데 좀 잘나야 사랑을 받지요. (흐무흐무) 그리고 여기에 '너드(nerd)남' 설정도 한 스푼 끼얹고... (므하하하)
- 미형 캐릭터: 몇몇 등장인물들은 제 주변인들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요, 실제론 봄의 그녀인 아랑이의 모델을 빼면 다 미인은 아닙니다. (얘들아, 미안하다, 사실이다.)
하. 지. 만! 허구는 허구일 뿐. 인기를 위해선 미형 캐릭터가 필수인 법이죠. (에반게리온에 레이와 아스카, 카오루가 없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양심에 찔려서 주인공은 차마 미남이라 못하겠더라고요. 대신 성별을 저와 다른 남자로 정했죠. 이편이 아슬아슬한 러브라인도 탈 수 있고 여러모로 쓸모가...
- 초능력자: 이상입니다.
4. 마지막, 장르
올 게 왔습니다. 그놈의 장르...
다음 시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