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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l 28. 2022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미스 vs 미세스)

반가움과 어색함이 공존하였던, 초등학교 동창과의 만남.


결혼식 이후, 약 7년간 거의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우리 두 사람.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그 뒷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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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양은, 내가 이민 와서 처음 사귄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영어를 전혀 못했던 나는, 한국어를 거의 못했던 그녀와 온갖 바디랭귀지를 사용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다행히 그녀의 특유한 친화력 덕분에,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동네에 살았기에, 우리는 고등학교 때까지 쭉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대학교를 갔던 나와,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아무래도 학창 시절 때만큼 만날 수 없었다. 그래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만나려고 했기에, 4년의 대학생활 동안에도 계속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가 급격하게 멀어지게 된 건, 나의 결혼식 이후였다. 아무래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니, 더 이상 예전처럼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만날 시간이 없었다는 건,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었다. 엄마 집에 살며 편하게 지내던 시절이 끝나고, 주부로써 모든 집안일을 직접 하게 되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주중에는 풀타임 근무하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니,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게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 R양은 서서히 멀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와닿았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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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의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졌다. 우리 모두 이제 서른 살이 되었는데, 각자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며칠간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R양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SNS를 통해 그녀의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나고 싶었다.)


다행히 그녀도 흔쾌히 만남을 원했고, 그렇게 우리는 얼마 전 만나게 되었다. 신랑이 자리를 비워주었고, 우리 집에서 단둘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여전히 싱글인 그녀는, '미스'의 느낌이 많이 났다. 화려한 머리색, 밝은 옷, 뚜렷한 메이크업, 진한 향수 냄새까지. 반면에, 결혼생활을 일찍 시작한 나는, 아직 젊지만 왠지 모를 '미시즈'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도착하기 전까지 집안일을 마무리하던 중이었기에, 급하게 화장을 하였고, 향수는 뿌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의 두 손은, '딩동'하는 소리에 급하게 수건에 말렸기에, 아직 촉촉하게 물기가 남아있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 두 사람은 근황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다.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하는 일은 어떤지, 가족은 안녕하신지... 서로 업데이트를 해주고 나서는, 옛날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어려서 할 수 있었던 우리들의 철없는 행동들, 실수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분위기는 금방 무르익었다.


R양은, 그야말로 현대사회의 여성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해 사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치를 부리는 건 아니었지만, 본인이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싶은 시기에 구매하고,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싶을 때 사 먹고, 가고 싶은 곳들을 자유롭게 다니며 살고 있었다. 그녀의 화려했던 20대의 생활을 듣고 있다 보니, 결혼 이후 매우 보수적이게, 그리고 앞만 보며 달려온 나의 20대는 어땠는지 자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주 큰 고민이 있었다. 바로 금전적인 고민이었다. 그녀에게는 모아둔 돈이 거의 없다고 하였다.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도, 재정적으로 안정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은퇴를 앞두고 계신 상황이었다. 그녀의 20대를 후회하진 않지만, 그래도 몇 년째 제자리걸음 중인 본인의 은행계좌를 볼 때면,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녀는 나처럼 결혼도 하고, 집도 사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데, 과연 몇 년 후에 그게 가능해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그녀의 들으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조금 전, 나의 20대를 되돌아보던 생각은 없어지고, 다시 현재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시작하였다. 분명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상반된 점들이 많았다. 내가 쉽게 갖지 못하는 '자유'를 그녀는 온전히 만끽하고 있었고, 그녀가 갈망하는 '안정감'은 이제 나에겐 일상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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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내가 20대에 다른 결정들을 내렸다면, 내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여행도 더 자주 다니고, 스스로를 가꾸고 치장하는데 투자도 좀 하고, 이런저런 소비를 더 많이 했었을 것 같다. 딱히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어렸을 때 결혼하였기에,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랑과 서로 협력하며 열심히 살았더니, 지금은 꽤나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결혼 초반, 세 자릿수 (US $ 기준) 뿐이었던 우리 부부의 통장은, 더 이상 세 자릿수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열심히 돈을 모아, 두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집도 장만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렇게 되기까지, 우린 많은 것을 희생하였다. 커피는 집에서 내려마시고, 외식은 한 달에 한번 정도만 하고, 계획에 없는 지출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지만, 현재는 우리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다.


물론, 어느 방법이 맞는지는 다 기준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살아온 방식이 너무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20대를 너무 많이 희생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나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행복의 기준도 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이 쾌락에서 온다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행복은 만족감에 그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기준 역시, 살다 보면 계속 변하고 바뀌게 된다.


나는, R양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도 나에게 똑같이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다른 삶을 살게 될 것 같은 우리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게 그녀의 오랜 친구로서,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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