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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경미 Nov 23. 2022

지하의 공기는 지상의 공기보다 무겁다

가난을 처음 알게 된 날

지하의 공기는 지상의 공기보다 무겁다

이 골목길을 마치 미친개가 따라오는 것처럼 겁에 질려 뛰었었지. 벌써 삼십오 년은 더 된 어린 시절 이야기다. 어린 나는 어린이 대공원 후문께 살았는데 그 동네엔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부잣집들이 많았다. 지금은 거의 빌라로 바뀌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으리으리한 단독주택은 어른인 내가 봐도 그 웅장함에 여전히 괴리감을 느낄 정도다. '이런 궁궐 같은 집들 사이에 우리 집이 있었지.' 결혼하며 이 곳 근처로 이사오게 된 나는 아픈 추억이 있는 그 골목길을 일부러 찾아 어린 나를 종종 만나곤 했다.

 

우리 집은 고급스러운 빨간 벽돌로 된 이층 집, 그 반대편에 있었다. 잔디 대신 시멘트 마당이 있는 3층 다세대 주택, 그 건물 지하였다. 좁아터진 지하에는 우리 집 말고도 미숙이네와 하나네 까지 두 집이 더 살았다. 가운데 수돗가를 중심으로 사방에 방문이 있었다. 방마다 주인이 달랐다. 그러니까 수돗가를 같이 쓰고 방만 따로 쓰는, 지금으로 말하면 셰어하우스 정도겠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있어 방 밖을 나오려면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이 방에서 다른 방으로 넘어가려면 신발을 신고 비좁은 계단을 몇 개 내려가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 안방은 지하 1.5층 정도 되었나 보다. 

어렸을 때는 그런 집이 많았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는 내가 살던 집에 비하면 고급이었다. 적어도 그 집에서는 화장실을 단독으로 사용하니까 말이다. 어린 내가 아침에 화장실을 쓰기 위해서는 미숙이네 아빠가 먼저 일을 보고 나와야 하고, 미숙이네 큰언니, 하나네 엄마, 하나 동생 등 열네 명이 들락날락하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가운데 수돗가에서는 우리 엄마와 미숙이 엄마가 자주 손빨래를 했다. 지하 살이 몇 년 후에 겨우 세탁기란 것을 들여놓았지만 기쁨도 잠깐, 겨울이 되면 쥐들이 추위를 피해 세탁기 뒤로 들어갔다가 감전되어 죽기 다반사였다. 그 시절,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아저씨들은 수리 외에 다른 서비스를 해야 했다. 세탁기에 끼어 죽은 쥐를 처리하는 것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에 참 쉬운 일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집엔 주방이랄 것도 없었다. 한 평 정도 되는 시멘트 바닥에 달랑 곤로뿐이었으니까. 일일이 성냥으로 불을 넣어 흔드는 고철 전기 화로라고 해야 하나. 그것 하나로 엄마는 밥도 하고 국도 하고 반찬도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나는 가난이라는 말을 몰랐다. 밥을 굶지 않았고 옷도 입고 다녔으니 말이다. 가끔 친구들의 금발머리 마루인형이 부럽긴 했지만 같이 사는 미숙이도 하나도 없었으니 다들 그렇게 사는지 알았다. 재미있는 건 제아무리 좋은 장난감이 있는 친구들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골목에 울려 퍼지면 하나둘씩 대문을 열고 뛰어나왔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아이들도 쉽게 친구가 되어 골목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골목 사이사이 된장찌개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하면. “이제 들어와 밥 먹어라.” 하며 누구 엄마인지 모를 소리가 연이어 들리기 시작한다. 그럼 누구 하나 투정 부리지 않고 뿔뿔이 집으로 돌아갔다. 들어가는 대문이 바오바브나무같이 거대하든 가느다란 쪽파 같든 어린 나의 눈에는 매한가지처럼 보였다. 대문 크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랬던 나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내가 가난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뜨거웠던 여름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골목 구석에서 함께 놀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해진 친구는 없었다. 오면 같이 놀고, 가면 잘 가, 인사하고 헤어지면 그만인 사이들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외롭게 친구를 기다리는데 우리 동네에서 가장 키가 큰 남자아이가 자기 동생과 함께 골목길에 들어섰다. 키가 큰 남자아이는 요즘 말로 치면 인싸인 아이였지만 내 눈엔 잘난 척하는 재수 없는 아이였다. 우리 셋은 어색하게 다른 친구들이 올 때까지 서성댔다. "야, 그냥 우리 집에서 놀래?" 어색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키 큰 아이는 더웠는지 집에서 놀자고 날 꼬드겼다. 키 큰 아이의 집은 등굣길에 매일 보는 검정 대문 집이었다. 집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집이 궁금한 적은 없었다. 호의를 무시할 못된 성격이 아니었던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 그곳에 가는 게 아니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야 있는 검정 대문이 ‘떼엑’ 하는 소리와 함께 철컹 문이 열렸다. 나는 처음으로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나 같은 아이가 들어갈 곳이 아니라는 직감 때문이었으리라. 몸이 뻣뻣해져서 걸음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여기저기 둘러보면 촌스러워 보일 거야.’라는 생각에 땅을 보고 걸었지만, 뒤통수에도 눈이 있다는 게 이런 건지 그 집 마당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잔디가 마당에 펼쳐져 있었고, 현관문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계천에서나 볼 법한 큰 돌들을 징검다리 삼아 걸어야 했다. 나는 짧은 다리로 성큼성큼 돌을 밟았다. 마치 공원에서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본 듯이 말이다. 그렇게 드넓은 마당에는 우리 집 화장실보다 큰 개집이 두 개나 놓여있었다. 개들이 나에게 한없이 사납게 짖어댔던 걸 보면 나의 면면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냄새로 파악한 것 같았다. 

사실 대문을 여는 순간부터 개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게 있었다. 나를 초대한 집주인, 키 큰 아이의 ‘눈’이었다. 키 큰 아이의 눈은 CCTV 렌즈처럼 내 얼굴을 실시간 포착하려 애썼다. 놀라워하는 내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걸까. 사실 나는 반쯤은 넋이 나가 있긴 했었다. 이런 집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기에…….

궁궐 같은 넓은 거실에는 티브이에 나올 법한, 안정감 있고 포근한 천연가죽 소파 두 개가 양쪽에 버티고 있었다. 소파 가운데를 차지한 긴 탁자에는 자수 장식이 고급스러운 천이 깔렸었고, 그 위에는 금색으로 칠한 고풍스러운 다이얼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천장이었다. 상상할 수 없이 높은 천장에 찬란한 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더없이 눈부셨다. 그것이 샹들리에라는 것은 다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다른 세상에 온 듯 충격적인 집안의 구석구석은 선명한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국적인 집 풍경에 나는 얼이 빠져 있는 내가 우스웠는지 키 큰 아이는 호의를 베풀 듯 소파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그리고는 회장이 앉을만한 가운데 소파에 거만하게 자리를 잡고 앉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껌을 쩝쩝 씹으며 말했다. 

"이런 데 첨 오지?" 

연이어 키 큰 아이의 동생이 따라 말했다. 

"이런 거 첨 봤지?"

한 대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을 만큼 얄미웠지만 처음으로 느껴지는 초라함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주위에 맴돌고 있던 가난의 의미가 천천히 나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 자기 방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 가정부가 있는 집과 없는 집. 불편함. 초라함. 알 수 없는 슬픔들…….


아이가 세상 물정을 알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다름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을 부정한다. 그리고 비밀이 많아진다. 키 큰 아이 집을 다녀온 며칠 후. 같은 반 남자애 두 명이 우리 집에서 놀자고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평소 같으면 뭘 하고 놀지 궁리하며 즐거웠을지 모르지만 키 큰 아이 집을 다녀온 후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따라오지 말라고 매몰차게 소리 질렀지만 남자애들은 내 반응에 호기심이 났는지 더욱 신나서 따라왔다. 내가 못 사는 걸 아는 걸까. 오래되고 허름한 내 옷가지와 책가방, 너덜한 신발주머니, 금이 간 운동화. 초라한 나를 보고 내 가난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나는 수만 가지 생각을 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우리 집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남자애들을 따돌려야 했다. 그때 번쩍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우리 집 바로 건너편 빨간 벽돌집. 그 집 대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이었다. ‘그래. 저기야.’ 아마도 나는 필사의 각오로 빨간 벽돌집을 향해 뛰었던 것 같다. 그 집이 우리 집인 양 쏙 들어가면 남자애들이 '우와. 경미네 집 잘 산다!'라고 탄성을 지를 것만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문 손잡이를 탁 잡았다.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그 집에는 도베르만 두 마리가 있었는데 개들이 짖어서 주인에게 발각될까 무서웠다. 대문 옆 기둥 사이로 남자애들을 빠끔히 훔쳐봤다. 남자애들은 내가 그 집에 사는 줄 알고 눈이 휘둥그레져 내 쪽으로 뛰어오는 중이었다. 이제 손잡이만 아주 조금 열면 되었다. 말라깽이 나 하나 들어가기에 이십 센티 공간이면 충분했다. 잡은 손이 덜덜덜 떨렸다. 다리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들이 거의 다 왔어. 대문 안으로 들어가야 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나에겐 거짓된 행동을 할 용기가 없었다. 그저 빨간 벽돌에 바짝 기대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

집 앞까지 헐레벌떡 뛰어온 남자애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모든 시간이 정지되었다. 경멸하는 눈빛을 한 남자애들의 얼굴이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내 눈앞을 지나갔다. 조롱 끼 어린 음률이 기분 나쁘게 가슴에 남았다. 나는 그렇게 남의 집 손잡이를 잡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치욕스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런 앙큼한 생각을 했을까 싶다가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처연함에 가슴이 아리다. 참 쨍쨍했던 그날, 터덜 터널 진짜 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큰 대가를 치르고 배운 가난은 평생 감추고 싶은 비밀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처럼 가난하더라도 서로 아끼는 가족이었다면 원망이 덜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걸핏하면 밥상을 엎었다. 갈색 밥상이 하늘 높이 올라가고 몇 안 되는 마른반찬들이 팝콘처럼 후드득 튀겨져 떨어질 때면 검은 저주가 나를 덮칠까 두려워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김칫국물이 오래된 벽지에 타탁, 하고 튀면 그제야 엄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아빠는 거칠게 집을 나갔다. 남는 건 무거운 공기뿐이었다. 지하의 공기는 지상의 공기보다 늘 무겁다는 사실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 나는 그 무게에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크기 시작했다. 가난을 증오하면서 그리고 나를 부끄러워하면서……. 


햇빛이 쨍쨍했던 그날. 만약 키 큰 아이의 집을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상처받은 아이를 꼭 안아줄 누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이 골목길에서 삼십오 년 전 나를 만난다면 온몸으로 흐느껴 우는 어린 날 감싸줄 텐데. 이 골목길을 산책하듯 걷는 날이 온다고 눈물 닦아주며 말해줄 텐데……. 세월이 이렇게나 지났지만 어린 나는 아직도 이 골목길을 겁에 질려 도망치듯 달리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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