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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ESG가 무엇이며 기업들이 이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를 함께 보았다.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는 기업의 경영은 흔하지만 그중에는 고민의 흔적이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환경을 위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소비자에게 충분히 납득될 만한 이유 없이 기존의 상품 구성을 바꿔버렸던 아이폰의 경우가 그러했다.
ESG가 제대로 실현되어 환경을 위한 실천에 다가가려면 소비자에게도 신선한 놀라움을 주는 고민의 흔적이 담겨있어야 한다. 환경을 위한다는 기업의 움직임은 곧 소비자에게 가치를 전해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인데, 소비자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은 사실 변화의 결과가 아니라 변화를 위해 고민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 드러난 예가 게임 회사 닌텐도다.
모두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기업인 닌텐도지만 그 시작이 1899년 화투 제작 회사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자기기가 늘어난 1970년대에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면서 닌텐도는 승승장구하였고 130년의 업력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고객 경험의 중요성을 터득했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섬세한 고객 관리에 앞장서던 닌텐도는 지난해 ESG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다.
닌텐도는 기본적으로 손에 쥐는 전자기기를 만드는 회사로, 환경에 부담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제품 설계 과정부터 에너지 효율을 고려하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게임 콘솔과 기기를 만들 때 유해 물질이 함유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해왔다. 또한, 포장용 상자를 포함한 패키지는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재질을 만들고, 인쇄물은 화학성 잉크가 아니라 식물성 잉크를 사용한다.
닌텐도의 골판지 조립 키트인 라보는, 닌텐도 스위치와 연동해 악기 연주와 낚시 등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소프트웨어다. 골판지를 주재료로 하여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고, 심지어 세계 곳곳의 아이들에게 교육자료로도 활용되고 있어 환경과 사회적 가치 모두를 유익한 방향으로 실천하고 있다.
라보는 그 자체가 게임인 것은 아니며, 색다르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돕는 구성 키트다. 닌텐도는 이를 자신을 표현하는 방안이자 교육 도구이며 엔지니어링, 디자인을 위한 샌드박스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이루고 있는 재료가 친환경적인 골판지라는 점이 핵심이다.
라보는 일본의 초등학생 대상의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보조교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라보의 움직임을 보고 게임용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수업이 이루어졌다. 이는 일본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도 이뤄졌는데, 이탈리아 전역에 있는 주요 박물관에서 닌텐도 라보를 이용한 워크숍이 개최되기도 했다.
라보는 평소 닌텐도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동심으로 돌아가 골판지 장난감을 조립하며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획기적인 아이디어이다. 즐거움, 놀라움, 신선함. 그리고 그 뒤에 환경에 대한 고려가 따라온다. 기업의 잘 벼른 ESG는 바로 이렇듯 소비자의 만족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서 ESG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리는 모두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으며 혼자 하는 노력의 작음이 눈에 보일 때면 때때로 무력감에 잠기기도 한다. 허나 사람들을 크게 움직이고 소비하게 만드는 기업이 친환경을 위한 변화를 시도하고 상품을 내놓는다면 이는 기존에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노력을 이어 나갈 원동력으로도 작용한다. 효과적인 원동력을 위해 기업이 갖춰야 할 것은 진심이 담긴 고민과, 그럼에도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아이디어다.
무턱대고 변화를 가져오면서 환경을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기업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그 어떤 감동이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과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모두 같은 마음으로 환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즐거운 ESG가 더 많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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