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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Jan 08. 2025

14.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의 끝에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




어느 늦은 오후, 문득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시간이 저물어 간다는 것을 아는 건데도, 어쩐지 그 순간은 늘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늘을 뒤덮는 노을의 빛 속에서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너무 멀리 떠나버린 날들처럼, 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죠.

그 빛은 따뜻하면서도 이상하게 쓸쓸합니다. 

마치 오래전 안녕을 고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요. 

저물어 가는 태양 아래, 하늘에 번져가는 빛들은 멀리서도 선명한데, 정작 손을 뻗어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그 속에는 오래된 기억들이 가만히 떠오릅니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혹은 애써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빛 속에서 조용히 되살아납니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햇볕에 반짝이던 들판, 그리고 그 곁을 함께 지나가던 사람들.

그 기억들은 따스하지만, 동시에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문득 가슴을 찌릅니다. 

그래서일까요? 노을을 바라볼 때면,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더 애잔하게 느껴지죠.


하늘빛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우리는 더욱 조용히 멈춰 서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죠. 

노을은 그렇게 우리에게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합니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가고, 손에 쥐었던 것들은 언젠가 흩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그 흩어짐 속에서도 우리는 어쩐지 그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곤 합니다. 

마치 지나간 시간들이 전부 빛 속에 스며들어,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요.


그 붉은 하늘은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손끝에 닿지 않는 사람들, 이제는 희미해져 가는 꿈들,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하루들. 노을은 그 모든 것을 품고,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바라봅니다. 

어쩌면 그것은 시간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붙잡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늘빛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오늘 하루가 충분히 흘러갔음을, 그리고 내일이 다시 올 것임을. 

붉은 하늘은 그렇게 오늘의 마지막 숨을 고르게 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향한 미묘한 희망도 함께 건넵니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면, 붉은 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하지만 그 사라짐은 반드시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조용한 위로와, 내일을 준비하라는 다정한 권유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노을은 그렇게 하루의 끝자락에서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지나온 시간의 아름다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마주합니다. 

멀어지는 빛 속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흐름을 깨닫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합니다.

노을빛이 사라지면, 우리는 오늘이라는 한 장의 책장을 덮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여는 준비를 하죠. 

언젠가는 이 하루조차 먼 기억이 될 테지만, 오늘의 하늘빛만큼은 오랫동안 우리 마음에 남아 있을 겁니다. 

아득하고도 찬란했던 노을의 빛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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