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함께 버티는 방법
기다림은 정직하지 않다. 기다림은 늘 우리에게 거짓말을 요구한다. “곧 끝날 거야.”, “조금만 더 견디면 돼.”, “기다린 만큼 보답받을 거야.” 우리는 이런 말들로 자신을 속이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나 그 거짓말 없이는 기다림을 견딜 수 없다. 기다림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고, 한없이 길게 늘어진 침묵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나는 부모님의 병실 소식을 기다리며 매일같이 전화기를 붙잡고 살았다.
“오늘은 조금 괜찮으세요.”, “며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듣는 동안, 나는 매번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다.
의사의 말 속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엉켜 있었다. “곧 나아지실 거야.”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희망은 점점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이 나를 삼키는 것을 버티는 일이었다.
희망은 기다림 속에서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장 연약한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희망을 품는 순간, 우리는 그 희망이 깨질 수 있다는 불안을 함께 끌어안는다.
그것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서 물을 기다리는 일과도 같다.
목마름이 극에 달할수록, 우리가 기대하는 물 한 모금은 점점 더 강렬한 환영이 된다.
희망은 우리를 살게 하지만, 희망이 무너질 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희망과, 그 희망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사이에서 스스로와 싸우는 과정이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기다림이란 결국,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고통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곧 끝날 거야," "이번엔 다를 거야," "이 기다림은 반드시 의미가 있을 거야."
이런 말들로 스스로를 속이는 순간이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거짓말은 완전한 허상이 아니었다.
희망이 나를 고문했지만, 그것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희망은 나에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만들었다.
기다림은 단지 끝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바람이 얼마나 간절한지, 그리고 그 바람을 위해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기다림이 보답받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모든 기다림은 의미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때로는 간절히 기다렸던 일이 허무하게 끝나기도 한다.
기다림의 끝이 내가 바랐던 결과와 다를 때, 그 허망함은 마치 무너진 탑 아래 깔리는 것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의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며,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배웠다.
기다림 속에서 희망은 고문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지탱한 유일한 줄기였다.
그것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나는 그 줄기를 놓지 않았다.
희망은 나를 속였지만, 그 거짓말은 고통을 견뎌내게하는 몰핀과 같았다.
그것은 내가 기다림의 고통을 온전히 마주하지 않도록, 나를 잠시나마 마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기다림은 결국 나를 깨우쳤다.
희망은 때로 잔인하고, 기다림은 불공평하며, 결과는 언제나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희망이 나를 고문할지라도, 나는 그 고문 속에서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기다림이란 단순히 결과를 향해 가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희망이 나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배우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희망이 고문이 될지라도, 그 끝에서 내가 만날 나를 위해, 나는 희망을 품고 기다린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희망과 고통 사이를 걷는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