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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Dec 18. 2024

11. 잠들지 못하는 밤

고요한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




밤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숨죽이며 잠들어가지만, 내 마음은 그 적막 속에서 오히려 더 요동친다. 
창밖에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고,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조차도 나를 흔든다.
하지만 이 적막 속에서 정작 가장 시끄러운 것은 나 자신이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이, 내가 잠들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루 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 모든 감정이 밤이 되자 나를 찾아온다.
나는 그 감정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어둠 속에 잠긴 방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느껴진다.


밤이 되면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지나온 날들로 돌아가, 아직 끝내지 못한 장면들을 되감아 본다.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그리운 얼굴과 나눴던 마지막 대화가 떠오른다.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채 헤어졌던 순간, 혹은 그 사람의 마지막 표정.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그 순간은 내게서 결코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그날 더 따뜻한 말을 했더라면, 그 사람의 손을 잡았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하지만 아무리 되돌려본들, 답은 없다. 밤은 늘 이렇게 지난 시간의 그림자를 불러오고, 나는 그 그림자 속에서 나 자신을 되묻는다.

어쩌면 당신도 그런 밤을 겪어봤을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갇혀, 무언가를 놓아버리지 못한 채 밤을 보내던 순간들.
그 순간들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 속에서 때로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내가 더 이상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이 고요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단순한 외로움일까, 아니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막연한 공허감일까?
그 공허감은 단순히 누군가 곁에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스스로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고개를 드는 질문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 길이 정말 나의 길인가?"
이 질문들은 밤의 적막 속에서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낮 동안에는 그저 잊고 지내던 문제들이지만, 밤이 되면 도망칠 곳이 없다.
나는 그 질문들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아주 서서히 나 자신과 마주한다.


하지만 잠들지 못하는 밤은 늘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닫는다. 이 긴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낮 동안의 분주함과 소음 속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내 안의 목소리가, 이 고요 속에서 선명하게 들려온다.

한밤중, 침대에 누운 채로 창밖을 바라보던 날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달빛이 희미하게 흔들리며 내 방 안에 스며들었다. 

그때 나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평화를 느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괜찮을 것만 같았다.
잠들지 못한 그 밤이 내게 준 것은 바로 그런 깨달음이었다. 

모든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실.


어쩌면 이 밤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질문들과,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애쓰는 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밤은 때로는 우리를 가장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낮 동안에는 애써 외면했던 감정들,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두려움들과 마주하게 한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그렇게 나를 나 자신에게 데려다주는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 밤도 나는 깨어 있을 것이다.
그 긴 시간 속에서 내게 남아 있는 것들, 그리고 내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이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언젠가 새벽은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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